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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기억하다] 권옥연의 <달밤>(1958)

글/ 고금관

작가 : 권옥연(1923-2011)
함흥 출생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 권옥연의 화면 전반을 장식하는 회색빛 채색 스타일의 정립은 언제 이루어졌을까. 
화가의 작품 성향이 탈바꿈되는 때인 1957년부터 1960년까지의 파리 시기로 볼 수 있다. 

그 중, 화면 전체를 회색 톤 채색으로 아우르는 시초 격의 작품으로 1958년작 <달밤>을 꼽아 본다. 


권옥연 <달밤> 1958년, 캔버스에 유채, 83×72cm, 개인


작가 자신이 생전에 애정을 쏟았던 소장품으로, 짙은 회색 바탕에 두 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흑과 백 두 개의 원 형태가 겹쳐진 위에 몇몇 분절된 형상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달이 연상되는 원, 그와 상반되는 날카로운 획선과 면이 거슬리는 부분 없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다. 

권옥연의 작품 가운데는 짧은 시기에 그려낸 것이 아닌, 3~4년에 걸쳐서 또는 10년까지도 시간을 두고 제작한 것들이 꽤 많은 데 비해, 이 작품은 1958년 단기간 안에 완성했다. 그 당시 작가의 심연으로부터 나온 영감으로 몰아치듯 완성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이다. 

체불기간 그려진 대표작이며 파리 시기 화가 권옥연의 새로운 도약과 변모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달밤>이 보여주는 미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화면의 구성, 배치, 기울어짐 없는 균형잡힌 조형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보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회색톤 채색의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찌해서 ‘권옥연 그레이’라는 말을 하는지 알 듯하다.




권옥연의 작품 중에는 당 작품 외에도 풍경화, 비구상 등을 막론하고 달이 소재로 사용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달’이라는 제재가 화가 내면에 자리잡은 향수, 고유의 전통적 미로 이끄는 근원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작품 <달밤>이 지닌 또 다른 묘미는 화면을 감싸 안고 있는 액자인데, 넝쿨에 중간 중간 열매가 있는 문양을 조각으로 새겨낸 서양식 장식의 액자로 이 역시 원목 조각에 은회색 빛을 입혀 작품과 조화를 이루며 그림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한다. 

2023년 11월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을 보고 나와 그 감성이 사라지기 전에 선생의 <달밤>을 직접 맞이할 수 있었는데,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권옥연의 도록을 다시금 들추어보며 그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오늘이다. 

업데이트 2024.04.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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