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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남화가 나가타 슌스이의 수묵화 <조선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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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즐거움

남들이 관심을 덜 갖는 미술 분야의 공부를 하다 보면 보통의 삶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을 하게 경우가 있다. 생각치 않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생생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불모지이기에 생기는 것인데 때로는 하늘에서 내린 행운처럼 느껴져 선민 의식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요즘 필자가 주로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분야는 일제강점기 한일 미술 교류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책들을 많이 보게 되고, 당시에 한국에 와서 그린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일제강점이라는 부정적인 현실과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며 많은 자료가 산실되어 책도 흔치 않고 작품도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도 책은 학문적인 면에서 수집되거나 수집가들에 의해서 모여져 볼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일본인 화가들이 한국에서 거주하며 그린 그림은 식민시대의 가해자라는 명목으로 사장되어 버린 것이 대부분이다. 일부는 한국인의 그림으로 둔갑하여 전하는 것도 있을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화가들과 한국인 화가들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제는 만일 산실되어 전하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발굴되는 한 점 한 점이 모두 중요한 자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명한 작가의 현전하는 작품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 책에 실린 작품이라도 발견된다면 이 작품은 실물 작품과 미술사적으로는 가치가 같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다시 보는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일본 미술 잡지 《塔影》 1939년 9월호를 보다가 나가타 슌스이(永田春水, 1889-1970)의 <조선의 사원>이란 작품을 보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우선 사진을 찍고 보니 어디선가 안면이 있는 작품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소장품 중의 어느 한 점과 유난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품의 사진 자료를 찾아보니 지금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에 대여해준 나가타 슌스케의 작품과 동일한 도상이었다. 내용을 추적해보니 잡지에 발표한 작품의 하도(下圖), 즉 밑그림이 내 소유의 작품이었다. 때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세상엔 무수히 존재한다.

2. 철도국의 관광 진흥 정책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의 무단정치는 끝을 맺고 일제는 문화정치를 실행한다. 조선미술전람회가 생기고 일본의 유명화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일본 화가들 사이에 식민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다. 많은 일본인 화가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명승지를 여행한다. 철도국에서는 이러한 분위기를 이용하여 부산에서 경성, 평양, 원산을 잇는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일본인들을 끌어들인다. 특히 평양과 금강산은 홍보의 중심에 있는 주요 명승지였다. 유명한 인사들에게는 특혜를 주어 철도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하였다. 특히 화가들은 철도국의 주요한 손님들이었다.

1939년에는 일본의 저명한 화가 다섯 명이 철도국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는다. 일본 화단의 원로인 이케가미 슈호(池上秀畝, 1874-1944)를 위시하여 나가타 슌스이(永田春水, 1889-1970), 야자와 겐게스(矢澤弦月, 1886-1952), 가와세 하스이(川瀨巴水, 1883-1957), 야마카와 슈호(山川秀峰, 1898-1944) 등 다섯 명이다. 이들은 모두 일본 화단의 유명한 화가들로 한국을 찾은 화가들로서는 최고 수준에 있는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부산에 도착하여 경주를 거쳐 지리산 천은사, 내장산의 백양사ㆍ내장사, 부여, 수원, 경성을 거쳐 평양, 금강산을 한 달간 여행한다. 이들은 명승을 여행하며 명승지의 절경이나 유적을 그리고, 때로는 거리의 사람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화폭에 담기도 하였다. 이들은 일본에 돌아가 한국에서 스케치한 것들을 초본으로 삼아 각각의 완성된 작품으로 제작한다. 이 작품들은 화가로서의 그들에게 훗날 대표작으로 자리잡는다.

3. 나가타 슌스이의 <조선의 사원>

나가타 슌스이는 이바라키현 출신의 일본 화가로 본명은 요시아키(良亮)이다. 아라키 간포(荒木寛畝, 1872-1944)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1913년 국화사에 들어가 미술잡지 《국화(国華)》의 편집을 담당하였다. 문전, 제전 등 관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제전에서 특선한 후 추천작가가 되고 심사위원까지 지냈다. 여춘회(如春会)를 주재하기도 한 일본의 저명한 화가이다. 그는 이 여행 후에 많은 여운을 느끼고 후에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을 좌장으로 하는 남화가 일행과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작품을 남기기도 한다.


잡지 《탑영塔影》에 실린 나가타 슌스케의 <조선의 사원> 1939년

《탑영塔影》9월호에 실린 나가타 슈스이의 <조선의 사원>이란 작품은 한국의 전통적인 부엌을 그린 것이다.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절의 부엌이다. 이 작품은 나가타 슈스이가 1939년에 철도국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스케치 한 것을 재구성하여 그린 것이다. 그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하여 경주를 거쳐 지리산 천은사를 돌아 내장산 백양사에 들리는데, 이때 스케치 한 것 중의 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백양사의 부엌을 그린 것이다. 화가의 눈에는 아름다운 사찰 건물보다도 자신들의 부엌과는 다른 한국 사찰의 부엌이 더욱 새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행한 때가 1939년 6월이었으니 3개월이 지난 후에 정리하여 잡지에 실은 것이다. 잡지에는 식민지 한국의 풍경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의 사원>이라 제목을 붙였지만, 그림 속 화제를 보면 본래 제목은 '사원 주방'이라 하는 것이 옳다.


나가타 슌스케 <백양사 주방> 1939년

당시 일본인 화가들은 한국에 오면 한국의 독특하면서도 일본과는 다른 풍속에 관심이 많았다. 고궁, 한복, 여인들의 생활 등에 눈길이 갔다. 주방의 모습도 자신들의 것과는 달라 많은 관심이 되었을 것이다. 여러 화가들이 주방의 모습을 인상 깊게 생각하였다. 도쿄미술학교를 나온 일류화가답게 먹의 운용이나 대상의 묘사가 자연스럽다. 본래 주방의 모습은 좁고 답답한데 다시 작품으로 그리며 한쪽의 기둥을 생략하고 주요 사물만 남겨 여유로운 화면이 되었다. 일본인 특유의 간결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당시 한국의 화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일상적인 것,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근대적인 느낌이 든다. 또한 서구 미술의 영향을 일찍 수용하여 서구적 데생과 수채화 같은 맑은 화면을 다루는 데서 일본 신남화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일본에 유학하여 남화를 배웠던 허림, 정운면 등의 남화가에게서 이러한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글/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8.09.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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