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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 서양화가 이인성의 호 이야기(2)- '아소(我笑)'라는 호의 부당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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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인성의 호에 대한 논란

한 예술가의 '호(號)'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호를 부르는 행위 속에는 예술가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인정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이나 이황을 '율곡'이나 '퇴계'로 부르는 이유는 직접 이름 부르는 것을 꺼리는 것도 있지만, 호가 그 사람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정희의 대표적인 호를 '추사'로 쓰느냐 '완당'으로 하느냐 고민하는 것도 나이에 따라 김정희의 세계관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에 맞추고자 함이다. 그만치 호를 어떤 것을 쓰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한동안 이인성은 이여성의 호 '청정(靑汀)'이 빙의되어 '청정 이인성'이라 잘못 불려 왔다. 두 사람의 지역 연고, 유사한 이름, 화가라는 같은 직업, 역사적 상황 등이 이런 혼란을 만들어내었다. 이여성의 호 '청정'이 이인성의 호로 잘못 쓰였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이여성이 월북하며 세상에서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사람들 속에서 점차 잊혀져 이여성이 이인성으로 수렴되어 혼동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인성이 화가로서 활동한 시절인 일제강점기 동안 이인성이 별다른 호를 쓴 적이 없기 때문에 '청정'이란 이여성의 호가 진입해 들어와도 별다른 저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쓰지 않던 호를 이름에 붙여 새로 쓰는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사실 이인성은 자신의 출세 무대이자 주 활동지였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단 한 번도 이름자 외에 호를 사용한 적이 없다. 만일 규정상 호가 필요하면 호를 쓰는 자리에 이름자인 '인성(仁星)'을 써넣었다. 그의 생각에 자신의 이름 한자인 '인성'이 문자 모양이나 어감, 의미로 보아서 이미 어떤 호보다도 더 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어진 별(仁星)'이란 단어처럼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낱말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또한 이인성이 이미 17세란 어린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화명을 날린 후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기 때문에 이미 '이인성'이란 이름만으로 화가를 상징할 정도가 되어 ‘이인성’이란 이름이 호처럼 쓰이기도 하였다. 실제 일제강점기 아이들이 그림을 잘 그리면 "너도 커서 이인성 같은 화가가 되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이미 그의 이름은 화가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니 굳이 호를 쓸 필요가 없었다.

2. '아소(我笑)'라는 호의 등장

그동안 이인성의 호로 잘못 쓰이던 ‘청정(靑汀)’이란 말은 다행히 여러 사람들의 지적에 따라 이여성의 복권과 함께 그의 호로 되돌아갔다. 많은 미술인들이 이인성이 다시 '화가 이인성'으로만 남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어느 날부터 이인성의 이름 앞에 다시 정체불명의 호가 붙기 시작하였다. 마치 '청정'이란 호가 사라지게 되어 이에 대신할 다른 호를 찾아 붙여야겠다는 듯이 갑작스레 나타났다. 그 호가 ‘아소(我笑)’란 것이다. 필자는 이 ‘아소’라는 호가 왜, 무슨 이유로 등장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껏 어떤 사람도 이인성을 지칭할 때 '아소'라 한 적이 없는데, 뜬금없이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아소'가 등장한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마치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새로 고치고 새로운 세상을 살려는 세속의 보통 사람들처럼 이인성의 호를 작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 바꾸어 붙여 버린 것이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우리 미술사는 이인성 살아생전에 한 번 불러 본 적 없는 '아소'라는 호를 이인성의 이름 앞에 붙여 부르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인성 주변의 미술 관계자들에게 물어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동안 이인성이 너무도 유명하여 호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었는데, 이제 일부 사람들은 '청정' 대신 다른 호인 '아소'를 붙여 부르는 것이 무슨 지적인 행위인양 부르기도 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인성은 생전에 스스로 호를 쓰고자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호라는 것이 전통적인 동양화를 하는 이들의 구습이라 생각하여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당시 동양화가들은 대부분 호를 썼지만, 서양화가들은 호가 있어도 잘 쓰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서양화가들은 호를 쓰는 것을 보수적인 사고로 생각하여 새로운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꺼려한 경향도 있었다. 그러니 만일 이인성이 스스로 호를 쓰기를 원치 않았다면 굳이 호를 붙일 이유가 없다. '도상봉'은 '도상봉'이고, '이중섭'은 '이중섭'이다. '도천(陶泉)'이나 '대향(大鄕)'이라 굳이 부를 이유가 없다. 김환기가 '수화(樹話)'라는 호를 자주 쓴 것은 근원 김용준과 너무 가까워 서로 호를 부르며 둘 사이에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다보니 다른 이들도 그렇게 부른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당시에도 '환기'는 '환기'였다. 나는 '아소 이인성'이라 부르면 마치 상투에 망건을 쓰고 서양화를 그리는 얼치기 근대 화가가 생각나 입이 붙지 않는다. 그래서 이 어색한 호 '아소'란 말의 쓰임의 정당성에 대해 따져보고자 한다.

3. '아소(我笑)'라는 호의 정체의 당위성

이인성은 동, 서양화를 아우른 김용준, 이여성 등의 영향을 받아 서양화를 주로 그리면서도 여러 점의 수묵화를 남겼다. 이는 당시 대구의 문인화 전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묵화에는 서양화와는 달리 낙관이라 하여 돌로 된 인장을 찍는 풍습이 있는 있는데, 이인성도 호와 이름을 새긴 인장을 찍은 작품이 몇 점 남아 있다. 그 중 일부는 작가가 생전에는 찍지 않았는데, 누군가 후대인이 몰래 찍은 것도 여러 점 있다. 그러니 실제 이인성이 이러한 인장 방식을 한 것은 몇 점 되지 않는다. 이인성은 수묵화에도 주로 ‘인성(仁星)’이라 서명하고 이름 인장 찍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호를 쓰는 경우가 없었다. 이는 그가 스스로 호를 ‘인성’이라 생각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 새겨준 호 인장이 있었음에도 자신의 작품에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인성 <피리 부는 소년>                                     낙관 부분


그런데 그의 사후 일부 서명과 인장이 없었던 작품에 호 인장과 이름 인장이 어느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러 점에 추가된다. 엄격히 말하자면 사회 통념상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는 불법행위이다. 이때부터 이인성의 호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들먹여진다. 여하튼 이인성의 수묵화나 위조된 드로잉 등에 보통 두 개의 인장이 찍혀있다. 그 중 하나는 '이인성인(李仁星印)'이란 이름 인장이고, 다른 하나는 '소아(笑我)'라 각한 호 인장이다. 이 두 인장은 크기와 전각 각법으로 보아 한 쌍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러니 인장 글자를 읽을 때에도 같은 순서로 읽어야 한다. 이름 인장은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각해져 있어 '이인성인(李仁星印)'이라 해야 하고, 호 인장은 같은 방식으로 읽어 '소아(笑我)'라 해야 한다. 당시의 전각 풍습도 인장은 주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새기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그런데 이 인장을 누가 읽기 시작하였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아'라 읽지 않고 ‘아소’라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아소’라는 호를 당연한 듯이 사용하고 있다. 도대체 근거를 어디에 두고 이렇게 읽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래쪽 인장에 笑我라고 쓰여 있다.


한 쌍의 인장은 관습에 따라 새겨지고, 그 읽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 이 두 개의 인장을 전통적인 인장 읽는 법에 따라 읽으면 그의 호는 도저히 '아소'라고 읽을 수 없다. 만일 호를 억지로라도 불러야 한다면 이인성의 호 인장은 ‘아소’가 아니라 ‘소아(笑我)’로 읽어야 한다. 문법적으로도 ‘아소’보다는 ‘소아’가 자연스럽다. 대개 호는 '수식어 + 명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어+서술어'의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춘곡(春谷), 동우(東愚), 청전(靑田), 이당(以堂) 모두 마찬가지이다. 물론 전각하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새기기도 하지만 당시의 풍습으로는 그리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더구나 한 쌍을 새기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새기는 일은 더욱 없다. 보는 이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아소 이인성’이라 부르는지 생뚱맞기 그지없다. 본인이 사용하던 것도 아니고, 형식도 잘못되었고, 이인성의 이미지에도 어울리지도 않는다. 차라리 어울리지도 않고, 본인이 사용하지도 않았던 것이라면, 굳이 호를 붙여 부를 이유가 없다. 

4. 마무리

이인성 본인은 특별한 별호를 쓰지 않았는데, 억지로 호를 쓰려다 문제가 된 ‘청정’의 경우처럼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호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시대에 맞지 않는 호를 억지로 붙여 사용하게 하기 보다는 본래 자신이 사용하던 방식대로 이름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화단의 대명사였던 '기린아 이인성'은 이름 자체가 자신의 예술의 대명사가 되어 더 이상의 호가 필요 없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러니 이인성의 호는 '이인성'이다. 우리는 화가 이인성을 ‘청정’도 ‘아소’도 또한 '소아'도 아닌 ‘이인성’이라 부르면 될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마지막 해인 2014년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소개에 이인성을 검색하면 '청정 이인성은...'이라는 설명이 그대로 있었다. 분명히 새로이 홈페이지를 개편할 때까지 그랬을 것이다. 개편된 지금은 '아소 이인성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정체불명의 '아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술관은 한 번 잘못된 지식을 구축하면, 이 지식이 수정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8.09.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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