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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토의 남화가 카이 코잔의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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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화가 카이 코잔

카이 코잔(甲斐虎山, 1867-1961)은 오이타현 출신으로, 교토 화단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이다. 본명은 간(簡)이고, 자는 후보(厚甫)이며, 호는 코잔(虎山)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남화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산수화를 좋아하였다. 어려서 카노 우호(加納雨篷, 1866-1933)와 함께 남화가 호아시 쿄우(帆足杏雨, 1810-1884)에게 배웠는데, 그의 문하생 중에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호아시 쿄우 역시 교토화단의 거물인 다노무라 지쿠텐(田能村竹田, 1777-1835)의 제자이니 교토 화단의 적통을 잇고 있는 셈이다. 이 때 그림을 배우며 무라카미 코난(村上姑南), 히로세 고우덴(広瀬濠田) 등 한학자들을 찾아다니며 한학을 배우며 서예에도 힘을 기울인다. 이때의 학습으로 그의 글씨는 그림 못지않게 수준 높은 경지를 보인다.


카이 코잔과 카이 유리코


메이지 30년에 오이타에서 교토로 이주하여 계속해서 남화의 솜씨를 가다듬으며 활동한다. 1906년에 시라스 신카(白須心華, 1870-1939)가 도쿄에 남화를 가르치는 화숙을 열자 카노 우호와 함께 찬조 회원으로 참여한다. 카이 코잔은 옛 사람들이 말한 "한 번 더 읽고, 한 번 더 여행하면 자신의 예술이 더욱 좋아진다."는 말을 이행하려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일찌기 한국과 중국 북부를 여행하며 많은 경험을 쌓는다. 여행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산수화에 깊이가 더해지며 독특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간다. 평자들은 그를 고급스러운 풍모를 지닌 모더니스트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그림은 세련된 면이 많았다. 말년에는 오이타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며 지낸다.

카이 코잔은 33세 되던 해 그의 부인인 카이 유리코(甲斐和里子, 1868-1962)와 함께 교토에 사립 문중원(文中園)여학교를 설립한다. 이 학교는 문중여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후에 본원사의 도움으로 교토여자대학이 되는 학교이다. 카이 유리코는 후쿠야마 태생으로 정토종 본원사에 관계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불교적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도시샤(同志社)여학교를 졸업하고 카이 코잔과 결혼한다. 특이하게 그녀는 카이 코잔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나고 한 해 늦게 세상을 떠난다. 마치 그를 따라 왔다가 다시 그를 따라 가듯이 떠난다.


2. 남화가 카이 코잔의 <금강산>

카이 코잔은 교토화단의 정통의 맥을 이은 철저한 남화가이지만 단순히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감각의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 화가이다. 그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대상을 감각적으로 신선하게 그리려 하였고, 대상을 단순화하여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를 그리려 애썼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시각적이며 현대적이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주로 산수화인데 먹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푸른 색조의 색감을 많이 사용하는데, 남화 특유의 방식으로 물감을 남발하지 않고 아끼듯 요소 요소에만 사용한다. 그래서 화면이 새롭고 신선하며 감각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카이 코잔의 <금강산>


이 작품 <금강산>은 세로 14.8cm, 가로 14.4cm의 매우 작은 규모의 그림이다. 카이 코잔이 그림의 세계를 넓히고자 한국 여행을 결심하고 왔을 때 그린 작품이다. 금강산의 최고 절경인 만물상을 그렸다. 일반적으로 일본인 남화가가 금강산을 그리면 그 절경에 압도되어 절경을 하나도 놓치기 싫은 듯 구체적인 묘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카이 코잔은 화려한 금강산의 모습을 단순하게 생략하여 대략의 외형적 묘사만으로 금강산의 모습을 구현하였다. 대담하면서도 시야가 넓은 예술가의 해석 방식이다. 손바닥만 한 화면에 복잡다단한 금강산의 줄기를 담기엔 가장 유리한 방법이다. 그의 대상을 다루는 솜씨를 느끼게 하는 매우 수준 높은 작품이다. 대상의 정신성을 화면에 담고자 하는 남화의 정신이 잘 드러난 실경산수이다. 

후대 평론가들이 그를 감각적인 모더니스트라고 한 까닭이 이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금강산을 해석한 그림 중에 신선한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보는 즐거움이 강하기도 하다. 카이 코잔은 비교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인 화가이다. 그가 그림을 연구하려 한국을 방문한 만큼 한국 풍경을 그린 다른 작품이 더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많다. 다른 작품이 더 많이 발견되어 카이 코잔의 미술세계가 더욱 알려지고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의 행적이 더 많이 한국근대미술사에 첨가되기를 기대한다.






글/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8.09.22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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