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파리가 사랑한 동양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1-3. 오른쪽은 프랑스, 왼쪽은 이탈리아 회화
  • 357      

오말 공은 컬렉션의 대부분을 런던에서 수집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귀족 장군으로 알제리에 파견됐을 때부터 그림을 샀다. 그가 산 첫 번째 그림인 들라크로아의 <모로코의 병사 집합소>이다.     
그림 수집 역시 콩데 집안의 기록정리 작업과 관련이 깊다. 명문 콩데 집안에는 대대로 많은 그림 컬렉션이 있었다. 이 그림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뒤 공화정부에 압수됐다. 왕정이 복고된 뒤에 그중 일부만 반환됐다. 오말 공의 고모부이자 콩데 집안의 마지막 귀족인 루이6세 앙리 조셉이 정부와 교섭해 120점을 반환받았다.  


상티이성 콩데미술관의 회화실


콩데 미술관에는 이를 포함해 오늘날 830점의 회화가 있다. 그림 속에는 16세기 후반에 활동한 화가 프랑스와 클루에(Francois Clouet, 1515경-1572)가 그린 프랑스 왕가의 왕과 왕비 초상화 90여점도 들어있다. 그 외에 판화, 드로잉이 2,500여점에 이르며 조각도 250점을 소장하고 있다. 또 별도로 콩데 집안에서 대대로 사용하던 가구, 공예품도 2,500여점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오말 공이 유언에 따라 외부 전시가 금지돼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림의 경우는 전시 위치도 바꿀 수 없도록 해놓았다. 그 덕분에 콩데 미술관은 오늘날에도 19세기후반의 귀족 살롱과 같은 분위기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이들 그림은 현관의 오른쪽 건물, 즉 대성관에 대부분 전시돼있다.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회랑의 첫 번째 방은 사슴갤러리다. 이곳에는 사냥을 주제로 한 대형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다. 이름만 이렇지만 원래는 다이닝룸이다. 성을 개수할 때 건축가 오노레 도메(Honoré Daumet, 1826-1911)에게 부탁해 대형 태피스트리가 있는 특색 있는 방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곳에 파리 문화예술계의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사슴갤러리에서 옆으로 이어진 방이 회화실이다. 방에 들어서면 천정에 이르기까지 2,3단으로 그림이 꽉 차게 걸려있다. 높이 걸린 그림은 감상이 쉽지 않을 정도이다. 사슴갤러리 쪽 문에서 보아 오른쪽 벽에는 프랑스 회화가 걸려있고 왼쪽 벽은 이탈리아 그림들이다. 그 위쪽으로는 자연 광선이 들어오는 유리 천장이 있다.
유리 천장이 있는 건축은 당시 유럽에 크게 유행했다. 1851년 런던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 때 크리스탈 팰리스, 즉 수정궁(水晶宮)이 세워져 큰 화제가 됐다. 유리 천장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림을 모은 것에도 다분히 영국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왼쪽부터 장 푸케의 <에티엔느 슈발리에의 날들> 삽화, 라파엘 <마돈나>, 필리포 리피의 <에스더와 아하수에로>,
라파엘 <미의 세여신>


제1회 만국박람회가 끝나고 몇 년 뒤 영국에서 중요한 미술전람회가 열렸다. 1857년에 맨체스터에서 열린 미술명품 만국박람회이다. 아이러니컬하게 이는 영국이 1855년에 열린 파리만국박람회를 본 뜬 것이다.
파리만국박람회는 런던과 달리 미술전시관이 별도로 마련됐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영국왕립미술협회가 ‘예술을 통해 영혼을 일깨우자’는 캐치프레이즈로 미술명품 만국박람회를 공업도시 맨체스터에 개최했다.*
여기에는 영국의 이름난 컬렉션들이 모두 동원됐다. 17세기에 수집된 찰스 1세의 컬렉션부터 버킹검 공작 컬렉션, 앨런 딜 백작 컬렉션 등 왕후, 귀족들의 컬렉션은 물론 18세기 들어 부를 일군 신흥부르주아들의 컬렉션까지 한 자리에 모았다. 
이때 출품된 그림 수는 무려 1만6,276점에 이르렀다. 르네상스 그림에서 당시의 근현대 회화, 수채화 그리고 판화까지 망라됐다. 그 중에 고전거장회화만 1,073점이 출품됐다. 거기에는 라파엘 33점, 티치아노 20점, 루벤스 39점, 렘브란트 28점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때 소개된 라파엘 그림의 영향을 받아 영국에 라파엘 전파가 등장했을 정도이다.*
오말 공도 이 전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때부터 콩데 공의 집안자료 외에 프랑스 회화 그리고 이탈리아 회화의 수집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르네상스 그림은 루브르 다음으로 많다는 찬사를 듣게 됐다. 
우선 라파엘 그림만 3점이 있다. 그리고 프라 안젤리코 3점, 필리포 리피가 1점이 있다. 특히 이들 3사람의 그림은 르네상스 그림은 상투아리오(Santuario)라고 이름 붙인 방에 별도로 전시되고 있다. 상투아리오는 ‘거룩한 곳’을 가리키는 이탈리아 말이다.


피에로 디 코시모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1480년경  


회화관 끝에 있는 원형홀인 로톤도에도 그가 특별히 아낀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중 하나가 콩데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인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이다. 이 역시 르네상스의 화가 피에로 디 코시모(Piero di Cosimo 1462경-1521)가 그린 것이다.
모델은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혔던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 1453-1476)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코시모 외에 라파엘이 그린 것도 있다.(이는 루브르에 있다)
코시모 그림은 특이하게 그녀가 죽은 뒤에 그려진 이른바 유상(遺像)이다. 이는 루브르에서 회화드로잉 파트의 큐레이터이자 본인 스스로 컬렉터였던 프레데릭 라이제(Frédéric Reiset 1815-1891) 소장품이었다. 오말 공은 이 그림 외에 그가 모은 다빈치 등의 드로잉도 일괄 구입했다.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는 옆모습을 그린 것도 이색적이지만 그림 속의 기묘한 묘사가 콩데 집안의 운명을 상상케 한다고 해 더욱 유명하다. 즉 그림 왼쪽은 오른쪽과 달리 고목과 검은 구름이 그려져 있다. 또 목에는 목걸이를 감싸고 있는 뱀도 있다. 모두 죽음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피렌체의 상인 마르코 베스푸치의 아내였던 그녀는 23살의 젊은 나이에 결핵에 걸려 죽었다. 그런데 그림 속 죽음의 상징을 그녀뿐만 아니라 오말 공 집안의 죽음과도 연관시켜 해석한 것이다.
오말 공은 시칠리아 왕의 손녀와 결혼해 여섯 아들을 두었다. 하지만 넷은 일찍 죽고 두 아들만 장성했다. 그런데 영국 망명중에 부인과 큰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때 큰 아들은 21살이었다. 그리고 1871년 귀국한 다음해에 마지막 남은 둘째 아들마저 잃었다. 그가 병으로 죽은 날은 프랑스의 대학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 당일이었다. 당시 아들 나이는 18살이었다.  
오말 공은 이 죽음에 인해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 남은 가족마저 그를 떠난 것이다. 이 큰 슬픔이 계기가 돼 그는 자신의 전 재산과 컬렉션을 프랑스학사원에 기증하게 됐다. 그리고 소장품의 대외 전시를 금하는 것은 물론 전시위치도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유언장을 써서 남겼다.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를 두고 오말 공의 불행한 가정사를 곁들여 해석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콩테 미술관은 그 일이 계기가 돼 탄생했다는 사실이다.(y) 

*松村昌家 『大英帝国博覧会の歴史―ロンドン・マンチェスター二都物語』 ミネルヴァ書房、2014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8.11.13 15:51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