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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 스페인 이슬람풍 도기에서 시작된 서양 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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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러스터 채색 계통의 도기


동양 도자기를 살펴보기에 앞서  세브르의 자랑인 서양도자기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동양에서 온 관람객에게 세브르의 서양도자기 감상은 쉽지 않다. 지역도 넓을 뿐 아니라 기법도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그 엄청난 양과 기법의 시작은 멀리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래도 열쇠가 없지 않다. 동양과 연관이 하나의 열쇠가 된다. 유럽은 고대 토기의 시대를 지나 중세의 도기(陶器) 시대가 되면서부터 간접적으로 동양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어느 시기를 지나면서는 동양을 직접적으로 의식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유럽은 오랫동안 중동을 오리엔트라고 불렀다. 유럽 도기는 이 중동의 이슬람 도기에서 먼저 영향을 받았다.
 
중국은 서성 왕희지가 활동한 4세기에 이미 강남지역에서 초기 형태의 청자를 구웠다. 백자는 이보다 늦지만 당나라 초인 7세기가 되면 등장한다. 당나라는 서역까지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었다. 이 시대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까지 이어지는 교역로가 한(漢)제국 이래 다시 열리며 활발한 무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집트 최초의 수도인 이집트 카이로 근교의 푸스타트(Fustat) 유적에서 당나라 도자기 파편이 발굴된 기록이 있다.*


[참고] 백자 봉수(鳳首)병, 당초 7세기, 일본 개인

반대로 당나라 문화에도 곳곳에 중동 문화의 흔적이 보인다. 정교한 세공이 가해진 은잔(銀盞)은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도자기도 영향을 받았다. 당나라 백자에 보이는 봉황 머리처럼 생긴 병뚜껑은 다분히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다. 또 봉황 두 마리가 물병을 물고 있는 것 같은 병의 손잡이 역시 중동의 금속제 용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나라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슬람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우선 이들은 당 문화에 보이는 흰 백자에 매료됐다. 하지만 이들 역시 자기 제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백토의 존재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고대부터 전해오던 기법을 써서 독자적으로 백자 대용품을 만들었다. 즉 납 유약에 주석을 섞어 흰색을 낸 것이다. 이것이 석백유(錫白釉) 도기이다.
 


러스터 석백유 도기접시, 1420-1428, 스페인 발랑스제작
이베리코 모레스크 1450년

이 석백유 도기에 러스터(luster)란 채색기법을 더해 사용했다. 러스터는 광택이란 말이다. 금속용기 사용에 익숙한 이슬람 문화였던 만큼 도자기에 번쩍이는 광택을 넣은 것이다. 은이나 동 같은 금속산화물을 섞은 안료를 발라 도기를 구우면 이렇게 번쩍이는 효과가 난다.
  
이 러스터 채색의 석백유 도기는 8세기 들어 이슬람의 이베리아반도 점령과 함께 유럽에 전해졌다. 스페인남부에서 이 기법으로 구워진 도기는 이스파노-모레스크 도기(Hispano-Moresque ware)라고 불렸다. 무어인들이 전해준 도기라는 뜻이다.
이들 도기는 당시 지중해 무역의 최대 중계기지였던 마요르카 섬을 통해 유럽 각지로 수출됐다. 이탈리아 중부의 움브리아(Umbria) 지방에 전해진 것도 이때였다. 이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전한 것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마요르카(mallorca) 도기이다.
 
마요르카 도기와 이슬람 석백유 도기와의 차이는 채색 문양에 있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계율이 있다. 그래서 도자기 문양에도 식물 문양이나 기하학 문양만을 사용했다. 그러나 로마시대부터 뛰어난 인체묘사 전통이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화려한 채색으로 그려 넣었다. 그림이 들어있는 이탈리아의 이스토리아토(Istoriato) 마요르카 도기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이때가 16세기 초이다. 특히 움부리아 지방의 데루타(Deruta)에서 만든, 그림 그려진 도기는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와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곧장 이탈리아 전체로 펴져나갔다. 또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네덜란드에도 전해지게 됐다.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도공 산토 아벨리의 파이앙스 도기, 1540년

움브리아의 마요르카 도기를 받아들인 파엔차(Faenza)에는 조금 색다른 문양 기법을 고안해냈다.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문양을 꽉 채우지 않고 접시 주변에만 두른 것이다. 이렇게 흰 여백이 많은 파엔차는 비앙코 디 파엔차(Bianco di faenza)라고 한다.


이스토리아토 도기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서 제작된 파이앙스 

이 비앙코 디 파엔차 역시 알프스를 넘었다. 그리고 그 무렵 처음으로 석백유 도자를 만들고 있던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영향을 미쳤다. 이 비앙코 디 파엔차는 문양의 신선함으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이 영향 아래 만들어진 도기를 통털어 프랑스에서는 파이앙스(faïence)라고 부르게 됐다.


16세기 터키에서 제작된 이즈니크 도기

이탈리아 파엔차 도기는 알프스만 넘은 게 아니라 아드리아 해를 따라 흑해 연안에도 전해져  터키의 이즈니크(Izunik)에서는 인물 대신 식물문양을 화려하게 채운 이즈니크 도기로 탄생했다.
   
이들 마요르카 도기와 파이앙스 도기는 중국의 청자와 백자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유럽 도자기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들이다. 이들은 세브르에서 1층의 동양도자 전시실 바로 앞방에 나란히 전시돼 있다.(y)

*미카미 쓰기오(三上次男) 『도자의 길-동서문명의 접점을 찾아서(陶磁の道-東西文明の接点をたずねて』 이와나미신서(岩波新書), 1989년   


 




이스토리아토 도기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서 제작된 파이앙스 

이 비앙코 디 파엔차 역시 알프스를 넘었다. 그리고 그 무렵 처음으로 석백유 도자를 만들고 있던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영향을 미쳤다. 이 비앙코 디 파엔차는 문양의 신선함으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이 영향 아래 만들어진 도기를 통털어 프랑스에서는 파이앙스(faïence)라고 부르게 됐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8.11.1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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