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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입생 과제에서 발견한 정교함 - 이한복 <맨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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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맨드라미
필자 : 이한복(1897-1944)
연대 : 1918년
재질과 크기 : 종이에 채색 45 x 34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이홍근 기증)
전시: 근대서화전(국립중앙박물관 2019.4.16-6.2)


무더위가 한결 일찍 찾아와 문득 여름 생각이 날 정도다. 쨍쨍 내리쪼이는 햇빛, 매미 소리, 수면 가득한 연꽃 그리고 아무도 없는 화단에 홀로 서있는 맨드라미 등.

크게 내세울 게 없는 꽃이지만 맨드라미가 그림에 들어온 것은 아주 일찍부터다. 계관화(鷄冠花)란 한자 이름 때문에 관직이나 출세를 상징하며 길상화의 소재로 쓰였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중에도 쇠똥구리와 함께 맨드라미를 그린 게 있다.

이 그림은 근대 초입인 1918년 이한복이 그린 맨드라미이다. 감상용이나 주문화이라기보다 학교과제 같은 성격의 그림이다. 하지만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맨드라미 말고 모란, 창포 등도 같이 그렸는데 뒤에 대정칠년 54일 이한복이라고 사인을 했다.

대정 칠년은 1918년이다. 이 해 봄 그는 동경미술학교 일본화과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일본에 건너가기 전 그는 이미 10년 가까이 그림 수업을 마친 신진급이었다. 안중식, 조석진 문하에서 배웠고 이어서 경성서화미술원도 제1기로 졸업했다.

신사임당의 그림과 달리 그의 맨드라미는 치밀한 관찰 위에 정교한 필치를 구사된 당당한 근대 그림이다. 사생을 강조했던 일본미술교육의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5년여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그는 무호(無號)라는 호를 쓰면서 반직업 화가처럼 활동했다.(정식직업은 미술교사로 휘문, 보성, 진명여고 등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그의 그림은 초기 일부는 제외하고 대부분 기명절지도, 화조화, 산수화 등이다. 화풍 역시 관찰과 사생에 기초한 사실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먼 전통적인 스타일을 반복했다. 그의 주변이 근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때문인가. 아무튼 강을 건넌 귤이 탱자가 된 듯 한 아쉬움이 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0.02.1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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