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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근대 회화사 또는 근대 경제사,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전

-사람을 향해 움직인 거장의 시선, 거장을 만들어낸 부의 흐름 500년

전시명 :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 간 : 2023.6.2-2023.10.9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과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공동 주최하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10.9)이 열리고 있다.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소장품이 걸린 전시장에는 피에로 델 폴라이우올로의 <아폴로와 다프네>(1470-c1480)부터 클로드 모네의 <붓꽃>(1914-c1917)까지, 서양이 르네상스를 통해 각성하고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제3세계 식민지 경영, 제국주의 확산을 통해 문명과 부를 축적하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제동이 걸리기 전까지 일직선으로 팽창하던 시기를 미술품으로 증명했던 대가의 작품이 걸려있다. 한국인이 알고 있는 미술(=서양 미술사)의 유명한 이름은 거의 다 등장한다고 보면 된다.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틴토레토, 카라바조, 푸생,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렘브란트, 고야, 터너,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반 고흐 등 50명의 화가가 그린 52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전시장에 걸린 ‘거장이 머무른 곳’이란 이름의 지도(전시 보조 자료)는 르네상스(14-16세기) 이전 종교화의 전통만 있던 서양 미술의 역사가 왜 ‘사람과 일상’을 그리는 시대로 진입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지도에는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지중해 무역의 중심 도시 베니스와 르네상스라는 서양문화사의 거대한 혁신을 후원했던 금융업자 메디치 가문의 도시의 피렌체, 대항해시대를 열면서 은과 향신료 무역의 수혜를 입은 스페인, 스페인과 싸우며 동인도회사를 경영한 플랑드르 지역의 흥기,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변방에서 중심지로 진입한 영국이 ‘거장이 머문 지역’으로 등장한다. 이는 15세기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의 부의 이동과 정확히 맞물린다. 또 이 과정에서 그림을 주문할만한 부를 가진 고객이 왕과 교회에서 무역권리를 독점한 새로운 그룹이 등장하고 미술에 새로운 권력의 일상과 취향, 얼굴, 당대의 풍경이 담기게 된다. 그런 과정을 전시에 통시적으로 담았기에 이번 전시의 제목이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총 4부로 이뤄져있다. 1부는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이란 제목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 관객을 맞이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보티첼리, 라파엘로의 작품은 물론 국내에는 지명도가 작지만 르네상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벨리니 3부자 중 한명인 조반니 벨리니나 메시나 등 르네상스 전반기의 작가, 베니스파를 대표하는 티치아노나 틴토레토의 작품이 등장해 르네상스 미술사를 복기하게 만든다.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1594-95년경, 캔버스에 유채, 66x49.5cm


2부의 제목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영광은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항로 개척(1498)으로 상징되는 대항해시대(15-17세기)의 개막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1517)으로 막을 내린다. 새로이 부를 축적한 북해 연안의 플랑드르 지역이나 독일지역에서 메디치 가문 같은 세속의 이해관계에 동기화된 기존 교회(카톨릭)의 패권에 반기를 들고 정신적, 경제적 독립선언을 했다. 카라바조처럼 마음이 요동치는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잡아내는 미술이 바로크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했고, 빛을 이용해 드라마틱한 단체 조상화 <야간순찰>(1642)을 그린 렘브란트의 성공은 달라진 시대를 증명하는 샘플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설립(1602)-에스파냐 왕국과 네덜란드공화국의 80년 전쟁을 끝내는 베스트팔렌 조약(1648)은 대항해시대의 개막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고, 그 수혜자 중 하나는 플랑드르 지역의 화가였다. 전시장에는 요아힘 베케라르(1530-1574)가 그때 네덜란드 시장의 어물과 농작물을 그린 풍속화인 <4원소-물>과 <4원소-불> 두 점이 걸려있다. 베케라르는 이번 전시회에 유일하게 두 점을 건 화가이기도 하다.


요아힘 베케라르 <4원소: 물> 1569년, 캔버스에 유채, 158.1x214.9cm



3부는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이란 제목 아래 18-19세기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계몽주의의 확산과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서양문명의 중심지로 여겨졌던 이탈리아는 북유럽의 돈많은 신흥부자가 ‘교양 수업’이란 이름으로 그랜드투어를 떠나는 관광지로 전락했고 카날레토의 베니스 풍경같은 ‘관광지 주문화’가 인기를 끌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으로 마침내 유럽사의 주류에 뛰어든 그 시절의 영국을 대표하는 존 컨스터블이나 윌리엄 터너의 작품이 등장한다. 이때부터는 종교적 감화를 염두에 둔 그림이 더 이상 일급화가의 증명서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그랜드 투어의 추억 같은 개인의 경험을 기념하고 추억하는 그림이 활발히 주문되고 소비되는 시대가 됐다.



카날레토의 두 작품 <베네치아 카나레조 입구>와 <베네치아 카스텔로의 산 피에트로>






클로드 모네 <붓꽃>1914-1917년경, 캔버스에 유채, 200.7x149.9cm



4부는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이란 이름으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등장한 인상주의 작품이 등장한다. 르네상스 이후 실경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하는가에 묶여있던 미술의 관점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인식했는가,라는 화가의 주관적인 독창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그대로 담아내는 기계(카메라)가 1825년에 발명됐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재현 능력은 더 이상 화가의 기량을 가늠하는데 의미가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섹션에 걸린 마네나 세잔, 고흐, 르누아르의 작품은 소품이지만 화가의 이름값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따로 표기된 전시 작품은 아니지만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한 ‘전시물’은 이번 전시에 작품을 빌려준 ‘내셔널갤러리 소개 코너’다. 내셔널갤러리의 역사와 소장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상영하는 공간을 전시장 중간에, 전시장 끄트머리에는 내셔널갤러리를 상징하는 대형 시각이미지를 설치해 관람객에게 기념사진을 찍게끔 만들어서 내셔널갤러리 방문(또는 영국 방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업데이트 2023.06.2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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