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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련의 ‘병풍놀이’와 ‘완전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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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미술평론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지혜의숲’ 2014. 6. 19-2014. 9. 30
313아트프로젝트 2014. 9. 3- 10월 2일


김혜련, ‘책속으로, 김혜련의 병풍놀이’ 2014년 설치
<정물1. 2>(두폭병풍) 200x200, 2013년 


2014년 아시아출판정보센터에서 조성한 ‘지혜의숲’에서 개관 프로젝트로 ‘책속으로, 김혜련의 병풍놀이’ 전이 조용히 열리고 있는 가운데, 9월 3일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근작 유화전 ‘완전한 그릇’전이 열리게 된다. 2001년 베를린에서 10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정적 정물화에서 역사의 상처를 드러내는 서사적 풍경화로 감동을 선사했던 화가 김혜련의 작품세계가 이후 어떻게 확장되어 나가는지 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들이다. 


병풍놀이, 책과 그림의 만남
시원하게 뚫린 자유로를 끼고 임진강에 가깝게 위치한 파주출판도시는 문화의 변방이었던 경기 북부 지역에 출판문화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매년 북소리 페스티벌과 다양한 국제 출판행사를 열어 한국의 예술문화를 알리는 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아시아출판정보센터의 1층의 탁 트인 공간에 개가식으로 운영되는 “지혜의숲”은 지식인들과 출판사의 기증 도서로 이루어진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으로, 개관부터 시민, 청소년 학생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그 출발을 기념하기 위한 첫 프로젝트에 초대된 김혜련은 유화를 자르고 자수와 고서를 꿰매어 만든 병풍과 먹 드로잉, 신전 모양의 조형물들을 도서관 곳곳에 배치하여 책 향기 가득한 ‘지혜의숲’에 예술의 향취를 더하고 있다.


김혜련, ‘책속으로, 김혜련의 병풍놀이’ <완전한 그릇> 먹드로잉 설치, 2014년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뒤 1990년 독일 베를린으로 가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술 학사, 석사학위를 받고, 예술학으로 철학박사를 마친 김혜련은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세례를 받은 정통 유화가답게 원초적인 표현성을 추구하면서도, 한국적 조형요소에 관심이 많았다. 소설가 박경리의 토지와 영랑 김윤식의 시를 접한 후 더욱 섬세해진 화가의 작품세계는 파주 헤이리와 베를린을 오가는 여정을 통해 분단을 재인식하는 역사적 통찰에 이르렀으며, 이후 제주도와 울릉도를 수차례 답사하면서 국토의 곳곳에 남겨진 상처와 아픔에 공명하는 풍경화를 제작하여 화단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절대적 눈물>(2010~12), <모란이 피기까지는>(2011), <임진강>(2010)과 (2009~2010), <붉은 산>(2012)과 <동쪽의 나무>(2012)는 이러한 화가의 폭넓은 사유와 진정성 있는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김혜련, <절대적 눈물 2> (열네개의 캔버스) 195x1003, 2011년 


이번 ‘지혜의숲’에 전시된 병풍과 설치는 김혜련의 대를 이어 내려오는 토착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게 배인 작품들이다. 기품 있는 병풍으로 거듭나기 위해 강렬했던 유화 작품들은 간단없이 잘리고, 장롱에 남겨져 있던 시어머니의 한복과 전통 자수들은 캔버스에 투박하게 꿰매어졌다. 화가는 천을 이어가는 노동을 통해 새삼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신음하는 것들에 대한 연민, 그들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힘차면서도 맑은 유화 정물과 모질게 견디는 포도가지, 상여화처럼 처연한 꽃그림에 이르기까지 삶과 죽음의 메타포로 가득한 김혜련의 가리개와 병풍들은, 의미와 기호들의 신전인 도서관처럼 풍부한 시적 함축과 상징으로 가득하다.


<포도> (네폭병풍) 194x259, 2013년 


작가는 병풍이라는 형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병풍은 공간을 특별한 의례와 축하의 장소로 변화시키는 쓰임이 있어서 ‘지혜의숲’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도서관 개원을 축복하기에 더없이 알맞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김혜련은, 손수 접힌 것을 펼쳐가면서 그림을 드러내는 병풍과 한 장 한 장 손으로 넘기면서 의미를 깨치는 책 읽는 행위와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책을 읽고 병풍을 보는 것이 “머리가 아닌 손과 몸으로 지각하는 아름다움의 경지”라고도 했다. 
 
“병풍은 캔버스보다 가벼워 접은 상태로 들기가 쉽지만 펼치려 할 때는 넘어질까 봐 걱정스럽다. 그런데 바닥만 고르다면 두 폭이든 열 폭이든 병풍은 신기하리만치 금방 균형을 잡는다. ‘흔들’ 하다가도 정지하고 바로 선다. 펼치는 화면 수에 따라 전체 이미지도 달라지고, 둔탁하게 접혀있더라도 펼치게 되면,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화면 하나하나 차례차례 펼치게 되면, 전에 없던 세상이 내 앞에 나타난다. (병풍은) 그 앞의 공간에 진지하고 사려 깊은 상념을 일으키는데, 그리하여 병풍은 자기 앞 공간에 일종의 존업성을 부여하게 된다. 팔을 움직여 병풍을 펼치고 한 장면 한 장면, 몸의 수고와 함께 감상할 때 병풍속 화면은 온전한 매개체가 된다. 책은 병풍을 닮았다. 한 면에서 다음 면으로, 지속적으로 손을 움직여야 하고 손가락을 접촉시켜야만 비로소 어떤 내용이든 우리의 이해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책과 병풍-나는 이 두 가지가 좋다 강요받지 않은 시간-자기만의 왕국을 만들어 내는 즐거운 놀이터이다.” (김혜련)

김혜련의 병풍과 가리개는 도서관의 열린 공간을 적당하게 막고 터주면서 방문객들의 동선과 시선에 긴장과 변화를 주고 있는데도, 벽에 가득 꽂힌 책과 여백을 차지한 병풍은 조금도 공간을 다투지 않는다.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의 말처럼 “그림이 책 속으로, 책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거스름이 없다. 


완전한 그릇 The Complete Vessel


완전한 그릇 The Complete Vessel
김혜련, ‘완전한 그릇’ 2014년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김혜련은 드물게 서사적 진폭과 미시적 감수성을 겸비한 유화 작가로, 서사적인 DMZ 풍경화 대작 시리즈를 거뜬히 소화하는가 하면, 마른 감꼭지와 뚝 떨어진 모란 한 송이, 떨어진 한 톨의 씨앗에서도 강렬한 존재의 떨림을 포착한다. 이 전방위적 작가가 올 가을 파주와 강남, 서울의 남과 북, 양 지점에서 병풍과 제기(祭器)그림을 동시에 선보이게 되는데, 313아트프로젝트의 ‘완전한 그릇’ 전은 2011년 이곳에서 열린 ‘모란이 피기까지’ 이후 3년 만에 다시 열리는 개인전이다.

 ‘완전한 그릇 The Complete Vessel’은 화가가 지난겨울 곁에 두고 교감한 백자제기를 굵직한 선과 흔연스런 붓질로 그려낸 기념비적인 정물화이다. 작가는 “하얀 제기는 물을 담는 그릇이면서 우리 삶이 부스러기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의 생각을 모으고 마음을 담는 완전한 그릇이다”고 말한다. 완벽함이 아닌 완전함! 작은 것에 마음을 모으고, 세속의 것을 성스럽게 변화시키려는 염원. 그것은 시끄러운 소리와 주장들에 잊혀진 그림의 원초적 힘이리라. 


김혜련, 물과 그릇, 2014년 313아트프로젝트


작가는 책과 병풍은 “강요받지 않는 시간-자기만의 왕국을 만들어내는 즐거운 놀이터”라고 했다. 비워서 더 ‘완전한’ 그릇은 소박하지만 엄숙하다. 2014년 가을, 한국 미술계는 대규모 기획전과 이벤트들로 바쁘다. 선선해지는 이 절기에 마음 편하게 만나는 ‘책속으로, 병풍놀이’와 ‘완전한 그릇’ 은 명절의 부산함과 환절기의 우울함으로 공허해진 마음을 얼마간 가라앉히게 될 것 같다.





글 김미정(미술평론가) 관리자
업데이트 2023.01.2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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