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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움은 귀한 것, 추한 것은 불편한 것일까 <예술만큼 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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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함과 불편함이라는 명제 뒤에 감춰놓은 계급적 이해와 타자화

전시명 : 예술만큼 추한
장 소 : 서울대학교 미술관
기 간 : 2017.3.7-2017.5.14

글/ 김진녕



1.
서울대미술관에서 <예술만큼 추한>(~5월14일)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추함’을 진열하는 전시는 어떤 것일까.
미술의 기원으로 불리는 구석기 시대 원시인이 남긴 동굴 벽화는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의 흔적이라고 하는데 현대 미술에서는 추함도 열망의 대상이 되버린 것일까.
정영목 서울대미술관 관장은 “불편을 조장해주는 전시는 어떨까했다. 꼭 시각이미지나 전시가 편하고 마음에 들어야만 되나, 그런것만 봐야 하나, 이렇게 한번 던져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함이나 아름다움을 누가 만들었을까? 본질부터 얘기할 수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걸 강조하지 않았나. 예를 들어 여성이 성형수술을 할 때, 아름다움의 기준이 뭔가. 어떤 기준으로 코를 높이고, 어떤 기준으로 쌍꺼풀을 만들고... 그런 것부터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관습적인 아름다움에서 즐거움과 쾌락을 느낄 수도 있고, 추함 그 자체에서도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쾌락이라는 것도 추함을 통해서 좀 더 본능적인 쾌락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2.
함진 작가는 이번 전시에 ‘작은 조각’을 출품했다.
그는 작업을 통해 길가에 버려진 휴지조각, 귤껍질, 땅콩껍질, 뽑기 기계에서 나온 작은 캡슐 같이 한번 쓰이고 수명을 다하는 일시적이고 사소한 것, 순간적으로만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쓰레기’라고 불리는 것을 응시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는 왜 하찮고 사소하게 여겨지는 일상의 각질같은 것들에 애정을 보인 것일까.
“취향이란 게 바뀌기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쉽고 편하게 (작업을)할 수 있는가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조각을 보면 최대한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작업은 쉽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전시 주제인 추함이 내가 관심이 있던 것이었다, 요즘 내 기분이 그랬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게 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딱 맞아 떨어졌다.
여기에 전시된 캡슐 작업은 관람객이 주워서 보는 것이다. 캡슐은 뽑기 기계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내용물은 내가 만든 것이다. 조각으로 사용될 수 없는 재료, 부서지기 쉬운 것, 액체, 젤리 같은 중간 형태의 고체, 머리카락, 먼지 등 이 캡슐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을 넣어놨다.”
 




함진의 작업 설치 모습


3.
이근민 작가의 그림에는 신체의 일부분이 그려져 있다. 그는 매끈한 피부로 감싸져 그 속내용을 알 수 없고 팔등신 비율을 적용해 조화롭다고 지칭하는 육체와는 거리가 먼 것을 화면에 표현한다. 그는 이것이 정신 분열증을 앓았을 때 환각에서 본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가 2000년 대 초반에 정신적으로 아팠다. 그때 환각을 봤다. 병원 다닐 때, 의사가 나를 진단하는데 병증의 추상성이 구체성을 갖게 되더라. 그게 일종의 편리를 위해 데이터화하는 게 느껴졌고 그게 이기적으로 느껴지고,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그게 (내 증상에 대한)사회적인 정의(define)으로 느껴졌고, 개인입장에서 정의는 뭐가 될까를 생각했다. 그때 나는 작품을 그리는 작가니까 작가 입장으로 디파이닝,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측면에서 의사와 뭐가 다를까를 생각했다. 작품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이 작가적인 디파이닝이다.
환각의 애매모호한 추상성을 그림으로 구체화시키는 게 내 작업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자주 보고 느끼는 크리처들이 예쁜 것은 아니어서 이 전시랑 어울리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가 하는 행위, 회화, 긍정적인 에너지 측면을 동시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내 그림이다.
요즘은 환각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캐릭터를 뇌로 완성하는 건 아니고, 손으로 그려나가며 구체화한다. 그러면서 환각의 기억이 좀 더 완성을 가지게 되는 듯하다. (내가 그린 것이)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
심승욱 작가의 작품 <부재와 임재 사이>는 미술관 바닥 지하 2층에 잔해처럼 가라앉듯이 설치돼 있다. 이 ‘검은 잔해’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라는 노랫말을 가진 노래(연가) 소리는 미술관을 관통하는 회랑을 타고 3층까지 전달된다. 3층에 설치된 심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안정적 불안정성-고립주의의 환상 속에서>는 유명 정치인의 연설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고 그 사이 사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온 <연가>의 처연한 가락이 끼어든다.
심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부재와 임재사이>는 세월호를 다룬 것이다, 슬픔을 다룬 것이다. 이 작업은 추하다기 보다는 아름답다. 굉장히 아름다운 노래 속에 들어있는 슬픔을 경험했고 그걸 보는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안정적 불안정성>은 20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여러 명의 정치 지도자,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의 연설을 편집해서, 하나의 연설이 되도록 만들었다. 반복되는 것은 루즈벨트 연설인데 ‘고립주의의 환상 속에서’란 말이 반복된다. 전세계가 겪고 있는 자발적 고립주의, 자신의 이기적인 속성이기도 한, 어려움을 타개하는 부분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적 고립주의, 그 속에서 드러나는 상대에 대한 배타주의를 이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
 


심승욱 <부재와 임재 사이> 초산비닐수지 등 혼합 재료, 약 420x600x600cm, 2015

5.
구지윤 작가의 얼굴을 다룬 작품은 윤곽선만 두상일 뿐 표면은 거친 선과 색으로 채워져있다. 그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시카고와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세도시를 생각해보면 엄청 팽창을 계속하고 있는 대도시 그 자체다. 그 곳에서 걸어다니면서 맞닥뜨린 풍경은 빠른 속도로 재건과 붕괴가 일어나는 공사장 현장이었다. 공사장이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고 흥미가 가기도 했지만 부수고 짓는 그 사이클이 너무 빨라서 나는 힘들었다. 몇 년 전 갔던 식당이나 가고 싶던 곳이, 그 장소가 아예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그런 것에서 허무함이나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공간에서 사는 현대인의 변화와 심리에 관심이 있다. 잔인하게 부서진 건물 잔해를 보면 사람의 몸이 다 해체되서 장기가 다 빠져나온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또 사람이랑 공간이랑 합쳐서 그리게 됐다.
얼굴풍경이란 사람의 심리적인 변화, 심리 안에서도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기분이 좋다가 상태가 좋다가 확 나빠지기도 하고. 그게 무너졌다 다시 회복되는 사이클이 있듯 공간에도 그런 사이클이 있고, 내 그림 안에도 그런 사이클이 있다고 본다. 내 작업에선 회화와 건축, 심리가 중요한 키워드다.”
 


정영목 관장은 전시도록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관습적이거나 습관적이다. 이미지는 시대에 따른 권력에의 의지와 함께 보편과 객관으로 가장한 관습의 역사를 만들고, 인간은 그 관습의 시각에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습관적으로 그 익숙함의 편안함에 안주한다. 때문에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추한 것’은 없다. 단지 ‘추한 것’ 과 ‘추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상대적일 따름이다.”
 
이를테면 아리안족은 인도 대륙의 선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한 뒤 종교와 결합된 카스트제도를 발명해 지배구조를 정당화했다. 카스트 제도에서 불가촉천민으로 규정돼 불결함과 천함의 대명사가 된 수드라 계급의 인종적 특색은 추함의 객관적인 징표일까.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관상’에서 말하는 ‘미인상’과 ‘귀인상’이라는 게 규정하는 것은 아름답고 귀한 것일까, 오늘날 글로벌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는 서양인은 대개 관상에서 이야기하는 좋다는 기준의 반대말의 총합이다. 눈동자도 검지않고, 턱뼈도 갈라져있고 코도 뾰족하다. 관상이라는 게 한국이라는 지역적 한계와 유전자 풀에서 형성된 편견을 합리화하는 기준인 것이다.
통치자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쳐다보고 이의제기를 하는 것은 세상의 조화를 깨트리고 불안을 조장하는 아름답지 못한 일일까.

<예술만큼 추한>전은 불편하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13명의 작가가 제시하는 ‘이의 제기’이자 한가지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는 세상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고 있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06.2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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