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미술 전시리뷰
  • 공예 전시리뷰
  • 한국미술 도서리뷰
  • 미술계 이야기
  • On View
  • 학술논문 브리핑
타이틀
  • 도판만 남기고 사라졌던 명화의 귀환 - <택선고집擇善固執>
  • 1039      

전시명: 擇善固執_공아트스페이스 2017년 특별 기획전
장 소 :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
기 간 : 2017.03.29 - 2017.04.10

글/ 김진녕

수백년의 시간과 대륙을 넘나든 '훌륭함'의 전시 


전시회에 나온 적은 수십년간 없는데 사람들에게 낯익은 작품이 있다.
공재 윤두서의 <마상인물도>가 그런 예이다. 말은 공재가 즐겨 그린 소재이고 국립중앙박물관에도 그가 말만 그린 <우마도>와 <수하준마도>는 물론 나귀와 인물을 함께 그린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를 소장하고 있지만 정작 말과 인물이 어우러지는 작품은 없다.


공재 윤두서 <마상인물도> 종이에 수묵채색, 78.5x54.5cm 개인


<마상인물도>는 1969년 발행된 유복렬의 <한국회화대관>에 등장했지만 이후 국내 전시에서 사라졌다.
공재가 그린 <마상인물도>에 등장하는 인물은 중국풍 옷차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의 묘사만은 말에 대한 상세한 관찰과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공재의 말 그림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화면 중간에 걸린 지평선은 말이 향하는 방향에서 뒤로 갈수록 사선방향으로 높아진다. 말이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는 것. 공재는 이 순간의 긴장감을 인물과 말의 움직임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림 속의 말은 평보(walk)와 속보(trot) 사이의 순간으로 추정된다. 속보일 경우에는 말의 다리 방향이 대각선으로 일치한다. 오른쪽 앞발이 나가 있으면 왼쪽 뒷발도 앞으로 나가 있는 식이다. 하지만 그림 속 말의 대각선 다리 방향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평보도 아니다. 오른쪽 앞다리의 각도가 평보가 아닌 속보의 각도다. 왜 이럴까,하고 말등을 쳐다보면 기수의 상체가 약간 뒤로 젖혀지면서 말고삐를 잡아채고 있다. 속도를 늦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기수는 속도를 제어할때도 상체를 뒤로 제끼지 않는다고 하지만 관리복을 입은 이 남자는 전문 기수가 아니기는 하지만 한쪽 팔로만 말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의 말타기 스킬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 보인다. 위기의 순간에도 그는 왼손을 허리에 댄 채 ‘말타기도 학식만큼이나 도저하다’는 자세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순간에 대한 묘사를 이렇게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윤두서가 말타기에 상당한 정도의 경험치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그린 말의 다리 근육과 목 근육, 갈기 표현의 디테일을 보면 그가 말을 가까이하고 오랜기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전통화에서 이렇게 등장인물의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해낸 것은 단원의 <마상청앵도>와 공재의 <마상인물도> 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마상청앵도>에서 발생하는 긴장감과 공감각은 살짝 돌아보는 기수의 상체와 시선에서 발생한다. 젊은 남자가 말을 타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 견마잡는 시동이 옆에 버티고 서있고 말도 고개를 수그리고 있어서 말은 그 순간에 아무런 긴장감도 유발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 순간의 정적감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화면 오른편의 버드나무의 꾀꼬리와 그것을 쫓는 남자의 젖혀진 상체와 시선에서 관람자들은 순간의 고요를 뚫고 들려오는 꾀꼬리를 소리를 듣는 남자의 심정이 된다.
하지만 <마상인물도>에서 느껴지는 급하게 말의 속도를 제어해 균형을 유지하는 순간의 긴장감은 말과 인물의 합작을 통해서 발생한다.
공재가 말의 근육에 대한 지식과 말의 행동 습성에 대한 지식을 통해 균형이 깨지거나 균형이 깨지기 직전의 순간을 솜씨좋게 잡아내는 것은 <기마감흥도> 등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뭇 말들이 달려나가는 흔한 군마도가 아닌 사람과 함께 사건의 관여자로 주역 역할을 하는 말을 그림 속에 구현한 것이다.
 
이 <마상인물도>가 오랜만에 전시회에 등장했다.
공아트스페이스가 2013년 <한양유흔>전 이후 오랜만에 기획한 고미술 특별기획전 <택선고집(擇善固執)>전(3월29일~4월10일)에 이 작품도 포함됐다.
'택선고집(擇善固執)'은 '예기(禮記)'에 나오는 구절로, ‘훌륭한 것만 가려내어 굳게 붙든다'는 뜻. 이 전시에 나온 작품에 대한 주최측의 자신감이자 예우의 표현일 것이다.
전시에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공재 윤두서, 단원 김홍도, 호생관 최북, 오원 장승업,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등의 그림과 글씨 60여점이 걸렸다. 이 중 20여 건은 바다건너 미국과 일본에서 귀국한 작품들로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내에 안식처를 찾은 작품이다. 그 중에 공재의 <마상인물도>도 들어있는 것.
<마상인물도>는 1969년 출간된 <한국회화대관>에 수록된 도판으로 유명세는 날로 높아졌지만 얼굴없는 가수처럼 정작 실물은 이후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작품을 포함해 이번에 고국에 정착하게 된 해외환수 고미술품에 대한 이야기를 공상구 공아트스페이스 대표로부터 들어봤다.


추사 김정희 <각심한루> 종이에 먹, 32.5x105.5cm


공상구 대표는 이번 전시 준비 과정이 길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인연은 2005년 <9인의 명가비장품>전 할 때, 관람객으로 오신 분이 ‘우리집에도 이런 게 있다’고 말씀하면서 시작됐다. 미국 동부 지역에 사시는 교포인데 우연히 전시일정이 맞아서 구경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12년 동안 전시를 하자고 졸라서 이번 전시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전통 고미술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제대로만 자리잡았더라면 진작 열 수 있었던 전시”라며 그는 아쉬워했다.
애초에 더 이른 시간에 전시회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 고미술품의 가격이 현대미술품쪽 보다 상대적으로 오름세가 적어서 원소장자들이 매매나 전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것이다. ‘전통 회화나 도자기가 왜 시장에서 이정도의 대접밖에 못받냐, ’내 귀한 자식같은 컬렉션‘을 대접도 못받는 그런 자리에 내고 싶지 않다. 내가 살 때도 그 가격이었다’는 반응이라는 것. 공 대표도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이던 20년 전과 지금의 단원 그림 가격이 똑같다”고 자신의 기억을 보탰다. 그가 어릴 때 살던 1백 평 정도의 홍제동 집이 1982~83년 무렵 700만원이었고 겸재의 그림 한점이 1200만원이었는데 요즘 겸재 그림값은 집 한 채 값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호생관 최북 <기려도> 종이에 수묵담채 23x27.5cm 개인


전시는 이번 전시의 주력이 된 작품의 소장자인 미국 동부 거주 소장가가 전시회 출품을 결정하자 수월하게 진행됐다. 그 분의 소장품 19건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 그 분이 갖고 있던 <마상인물도>나 오원의 <산수도>, 추사의 <각심한루>, 소림 조석진의 <군리도>, 호생관의 <송하관폭도> 등은 이전에 <한국회화대관> 등에 도록이 실렸던 작품으로 유복렬 선생의 말년에 한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복렬 선생이 과거에는 간송 다음으로 꼽아주는 컬렉터였다.
또 임전 조정규의 <산수도 6곡병풍>은 미국 서부 지역에서 왔고 일본지역에서 온 고미술품도 3~4점 포함됐다. 여기에 공 대표의 마이아트옥션에서 진행한 경매를 통해 등장한 고미술품이 날개로 붙으며 <택선고집>전이 성사됐다.



단원 김홍도 <미불배석도> 종이에 수묵담채, 27.5x23.5cm



오원 장승업 <산수도> 종이에 수묵, 33.3x129.2cm


공상구 대표는 전문 미술교육을 받았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나왔고 고려대 미술사학과에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의 아버지가 공아트스페이스의 공창호 회장이라 어릴 때부터 고미술품을 무시로 접했던 ‘현장 학습’도 그의 자산이다. “내가 어릴 때는 도난 위험 때문에 전시회를 여시면 화랑 셔터를 내린 뒤 매일 밤 작품을 모두 집으로 가져와서 보관했다,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큰 일이니까. 매일밤 아버지와 삼촌이 포니2에 빼곡하게 작품을 실어왔다가 잠도 안주무시고 지키다가 아침이면 가져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작품을 가까이보고 부대끼고 자란 게 내겐 큰 경험이다.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현장 학습과 이론 학습으로 교육받은 그에게 이번 전시의 ‘어떤 작품이 빛나는 보석’인지 묻자 우회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만장일치는 없지만, 70대 컬렉터는 ‘그래도 윤두서의 1등 작품이 나왔다’는 말씀하시더라. 젊은층은 혜원의 세폭짜리 액자를 보고 굉장히 예쁘다고 반응한다. 서예 애호가는 추사의 <각심한루>를 보면서 감탄하시더라. 이 세 작품에 관람객의 관심이 쏠리는 듯 하다.”


낭곡 최석환 <묵포도도 12곡병> 1877, 종이에 수묵담채, 365x119.5cm


이번 전시를 통해 환수 고미술품의 새로운 임자도 정해졌다. 애초에는 전시회 출품만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소장 의사를 밝힌 한국 컬렉터가 나타나 완전히 환수하게 됐다.
환수한 귀국 고미술품 23건은 국공립미술관이나 개인 미술관, 개인 소장가가 새로운 소장자로 정해졌다.
전시회는 4월10일까지다.
연장을 할 가능성은 있지만 하게 된다면 동덕미술관이 아닌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일부 작품으로 하게 될 것이다.
12년간의 도모를 통해 전시를 성사시킨 그는 다음 프로젝트로 전시회를 통해 호생관의 <풍설야귀인도>나 단원의 <단원도>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고 싶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두 작품 모두 고미술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지만 실물 영접의 기회가 거의 없는 풍문 속의 작품이다. 그는 “언제가 될지, 성사가 될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이 일반인에게 선을 보이는 기회를 만들면 전통 미술품이 제자리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7.08.18 10:15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