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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세기 독일 바로크미술에 빛을 더한 동양도자기 - 왕이 사랑한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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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왕이 사랑한 보물-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전시기간: 2017.9.19 - 11.26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일본과 같은 꼭 알아야할 인국(隣國)의 역사조차 담 쌓고 사는 우리 현실에서 서양사(西洋史)에 대한 관심은 문밖을 지나가는 개나 닭보다 덜할지도 모른다. 드레스덴은 물론 그 문에서조차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의 초상(1710-1729년경)과 금실자주 군복(1730년경)

하지만 세계사에는 의외로 여러 곳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런 기묘한 현상에 대해 세계사의 동시성(同時性)이란 말로 그 해석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머나먼 이국도시 드레스덴에서 이룩된 찬란한 18세기의 공예미술을 소개하는 국립드레스덴박물관연합의 명품전을 이해하는 데에도 이 개념은 적잖은 도움을 준다.   


배 형상의 탁자장식, 1603-1609년경 제작

18세기 전반기 유럽은 절대왕정 초입으로 들어가는 시기였다. 프랑스가 그 중심이었다. 유럽의 크고 작은 왕가들이 프랑스를 맹렬히 추종하고 있었다. 드레스덴도 그중 하나였다. 드레스덴의 명품이란 평화와 정치적 안정 속에서 경제적 번영을 배경으로 소국 드레스덴이 이룩한 문화적 업적을 말해주는 유물들이다. 그 중심이 되는 것은 드레스덴을 18세기 독일의 군소 공국(公國)들의 지위에서 유럽의 괄목할만한 나라로 만들어낸 아우구스트 2세와 그의 아들 3세의 컬렉션이다. 
 


금세공 장식품, 무굴 제국 아우랑제브 황제의 왕좌 1709년 구입

특히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1670-1733, 재위 1694-1733)는 드레스덴의 영광으로의 문을 연 장본인이다. 그는 신성로마황제를 선출하는 선거권밖에 없었던 작센 공국을 물려받았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까지 폴란드와의 합병을 성사시키며 왕의 지위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또 파리, 빈과 같은 문화 선진도시를 모방하며 문화 융성에 힘을 기울여 자신이 숨을 거둘 때에는 마침내 드레스덴으로 하여금 ‘엘베 강의 피렌체’라는 찬사를 듣게 했다.


외르크 쇠너의 정밀 사진 가운데 아우랑제브 황제의 왕좌 부분

이런 그의 면모에 세계사의 동시성에 대입해보면 근세후기 중국 전성기의 초석을 놓은 청의 강희제(1654-1722, 재위 1661-1722)와 겹치는 점이 상당수 있다. 또 조선에서는 영정조 시대의 기초를 놓은 숙종(1661-1720, 재위 1674-1720)의 출현과 활동과 유사한 데가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외르크 쇠너 사진에 보이는 아우랑제브 황제의 왕좌에 한문(漢文) 장식
18세기에 유럽에 유행한 중국취향(시누와즈리)을 잘 보여준다. 

이들 세 군주는 17세기말에서 18세기 초기에 군림하며 동시적으로 각 나라의 번영의 기초를 놓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강희제는 중국 최고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군주이다. 그의 시대 중국은 정치와 경제의 번영을 이룩하면서 이후 손자인 건륭제 때의 전성기를 예고했다. 또 그가 받아들인 유럽의 선교사들로 인해 중국이 이때부터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며 거대한 동양의 강국(强國)이란 이미지가 심어졌다.


강희제 시대에 제작된 오채도자기

숙종도 그에 못지않다. 왕권파와 왕권견제파 간의 심한 당쟁 속에서도 불구하고 놀라운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며 안정된 정국을 리드하면서 번영의 발판을 마련했다. 경제에서 그는 상평통보를 적극 발행해 이른바 화폐유통경제를 앞당기며 영정조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경제적 기반을 만들었다.


덕화요의 수출용 마리아상 백자(왼쪽과 가운데)과 마이센 제작의 마리아상(오른쪽)

별개의 얘기지만 이들 사이에는 여자 문제도 공통점이 있다. 아우구스트는 개종 문제로 별거한 크리스티네 공비 외에 13명의 정부와 사귀며 8명을 자식을 보았다. 강희제도 공식적으로 3명의 정비 이외에 15명의 측실 사이에 24명의 왕자를 봤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비롯한 9명의 부인에게서 6남2녀를 낳았다. 그중에는 유명한 장희빈도 들어있고 인현왕후를 모시던 궁녀였던 무수리출신의 최숙빈이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강희제 때의 유럽수출용 도자기에 그려진 서양인물 문양

세 나라의 놀라운 미술공예품들은 그 결과물임은 말할 것도 없다. 드레스덴의 금은세공이나 청동조각, 상아세공은 신기하고 화려하지만 낯선 이국의 유물로 다분히 호사가들의 호기심의 대상이란 성격이 적지 않다.

하지만 도자기는 좀 다르다. 당시부터 세계적인 교역품의 하나였던 도자기는 아우구스트 2세, 강희제 그리고 숙종 시대에 벌어진 ‘세계사의 동시성’을 더욱 실감나게 이해하게 해주는 실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밸러스터형(기둥처럼 가운데가 불룩한 형태)의 청화백자. 왼쪽이 중국제작, 오른쪽이 마이센 제작 
 

강희제 때 들어 경덕진에서 만들어진 중국도자기들은 유럽에 본격 수출됐다. 이전만 해도 중국의 혼란기를 틈타 일본의 도자기가 유럽을 먼저 석권하고 있었다. 이들 동양 도자기들은 현지에서 ‘하얀 금’이라고까지 불리며 왕후, 귀족들에게 대인기를 끌었다. 아우구스트 2세가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1682-1719)라는 연금술사를 고용해 유럽 최초로 중국과 같은 백자 도자기를 만들어내는데 애쓴 것도 이들 동양도자기의 자극 때문이라 할 수 있다.(이 전시에는 일관되게 1708년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도자사 책에는 1709년에 성공한 것으로 돼있다) 
 


중국을 상징하는 용문양이 든 마이센 도자기

아우구스트 2세는 뵈트거의 마이센 도자기 이외에도 생전에 중국와 일본을 포함한 3만5천여 점의 도자기 컬렉션을 이룩했다. 전시에 나온 것은 이들 중 일부이지만 여기에도 18세기 유럽에 펼쳐진 동양도자기의 지형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강희제 때의 청화 백자와 채색자기인 오채(五彩)도자기는 대표적인 수출 도자기였다. 또 경덕진 외에 복건성 덕화요에서 만든 백자 마리아상 역시 유럽에서 특별주문한 도자기였다. 이들 유럽수출용 도자기에는 문양으로 유럽인들과 그들의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 한 특징이다. 또 마이센에서 중국을 모방해 만든 도자기에는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양인 용을 그려넣은 도자기를 만들기도 했다.


일본의 수출용 이마리 긴난데(金襴手) 도자기들

물론 중국도자기에 앞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전해지며 유럽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일본 이마리(伊万里)산 화금(畵金) 도자기인 긴난데(金襴手)도 수출용으로 만들어졌다. 이마리 도자기에서는 여백을 많이 남긴 채색도자기 스타일인 가키에몬(枾右衛文) 양식을 본떠 대나무 밭에서 출현하는 호랑이 문양을 넣은 것은 마이센에서도 모방 제작됐다. 


일본 이마리 도자기 가운데 가키에몬(枾右衛文) 양식의 마이센 도자기

이들 도자기 속에 도자기의 나라를 자임하는 조선의 것은 물론 없다. 숙종 때 조선 도자기 역시 사회경제의 변화 속에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조선적인 특색이 강한 청화백자의 유행이다. 숙종 때 들어서 달 항아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8세기가 되면 넓고 흰 바탕을 배경으로 가는 풀을 몇 가닥을 청화안료로 그린 이른바 금사리 항아리가 나와 조선적 취향을 대표했다.

그렇지만 이런 조선도자기는 수출과는 무관했다. 강력한 쇄국정책 아래 조선은 중국, 일본 이외는 결코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의 소박한 자연주의적 조선도자기는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중국과 일본의 수출용 도자기와 전혀 취향을 달리 했다.
이렇게 해서 비슷하긴 해도 구체적인 연결점이 없어져 버리게 됐는데 이는 이 전시를 관람하고 난 뒤 3층으로 올라가 도자 공예실을 일별하면 그 사정을 더욱 실감나게 느껴볼 수 있다.



그린볼트박물관 상아전시실의 대표유물 중 하나인 전투 장면이 있는 상아맥주잔, 높이 19.3cm

덧붙이자면 아우구스트왕 부자의 컬렉션은 이후 근대를 거치면서 드레스덴 여러 박물관의 소장품이 됐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사전 소개(疏開)를 통해 가장 참혹한 드레스덴 대폭격을 모면하고 안전하게 보전됐다. 전쟁 이후 이 컬렉션은 소련군의 전리품위원회에 전부 몰수되었으나 동독수립과 함께 1955과 56년 사이에 거의 반환됐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뒤에는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츠빙거 궁전 등이 복원되면서 새로운 박물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한다.(y) 

(이 전시는  독일사진작가 외르크 쇠너가 정밀촬영한 사진을 확대 배치해 그린볼트 박물관의 내부모습을 판넬로 재현했다. 사진 중에는 이번 전시에 소개되지 않은 소장품들도 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11.2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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