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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화적인 경험으로 한국의 겨울을 환기시키다 <겨울나기>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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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정선과 19세기 김윤보, 20세기의 이상범 오승윤 김화경이 그려낸 겨울

전시명 : 겨울나기
장 소 : 국립민속박물관
기 간 : 2017년 12월 13일~2018년 3월 5일

글/ 김진녕

1.
화면 전면에는 나무 한그루가 있고 중앙에 오두막집이 한 채 있다. 바람이 거세게 이는지 나뭇가지도 휘엉청 휘어져 있고 초가집 지붕을 덮었던 이엉도 나뭇가지가 휘어진 방향으로 흩나리고 있다. 그 거세바람으로 인해 화면에는 온통 흩날리는 눈 천지다.


김화경 <심촌의 취설도> 종이에 수묵담채, 1976, 국립현대미술관


유천(柳泉) 김화경(1922-1979)의 겨울날 눈 내리는 풍경화 <심촌(深村)의 취설도(吹雪圖)>(1976)는 이런 포인트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쌓인 눈이 아니라 지금 흩날리는 ‘눈 속에, 저 바람 속에’를 표현하고 있다.


숲길에 도열한 소나무의 가지 주변에 화가는 색을 칠하지 않았다. 하얗게 눈이 잔뜩 쌓여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리는 당나귀를 타고 가고 눈길을 헤쳐가고 있고 시종은 행장을 꾸려 뒤를 따라가고 있다. 어디를 가는 것일까. 눈길을 헤쳐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의 설행이니 만나러가는 인연이 소중하다는 짐작을 은연 중에 하게 된다. 화가는 이 그림에 <설중방우도>란 이름을 붙였다.

<설중방우도雪中訪友圖>는 18세기 조영석과 이인문의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화제다. 송(宋) 나라 태조 조광윤(趙匡胤)이 신하 조보(趙普)의 집을 찾아가 나라일을 의논하였다는 일화를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도화서 화원에게 그림을 배워 그린 일재(一齋) 김윤보(金允輔)가 그린 <설중방우도>는 누옥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장면이 아니라 말그대로 눈길을 헤쳐가며 벗을 찾아가는 장면을 그렸다. 님을 찾아가는 것인지, 벗을 찾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눈길을 헤쳐가는 애틋함이 더 먼저 다가온다.


정선 <정문입설도> 18.7x14.9cm 국립중앙박물관


18세기 사람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정문입설도(程門立雪圖>는 눈오는 날 스승의 집 마당에서 꼼짝도 못하고 스승과 눈맞춤을 위해 기다리고 서있는 두 제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송나라 때 유조(游酢)와 양시(楊時)라는 두 학자가 스승 정이(程頤)를 처음 찾아 뵙고 나서는데 정이가 마침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있자 정이가 눈을 뜰때까지 마당에서 눈을 맞으며 기다렸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눈이 그들의 무릎 위까지 쌓였다. 지금 같으면 ‘교수 갑질’이라고 질타를 받았겠지만 18세기 전반의 조선에서는 ‘훈훈한 사제지간의 예’로 소비됐다.


2.
겨울과 눈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겨울나기>(~3월5일)라는 전시를 열고 있다.
이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회화 장르의 전시물을 대거 투입했다는 점이다.


정선의 <정문입설도(程門立雪圖)>부터 개화기의 목판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목판화, 20세기 한국화가 김화경의 <심촌 취설도>, 서양화가 오승윤의 <대한>, 사진작가 강상규의 <설목> 등 한국의 겨울을 다룬 전통 수묵화와 서양화, 사진 등의 평면 작품과 ’방장(房帳)‘, ’견짓채‘, '썰매', ’연과 얼레’ 등 겨울 살림살이와 놀이용품 등 겨울나기와 관련된 자료와 사진, 영상 등 300여 점이 등장한다. 주최측은 이 300여 점의 전시물을 ‘1부-겨울을 맞다’, ‘2부-겨울을 쉬어가다’, ‘3부-겨울을 즐기다’, ‘에필로그 : 겨울을 보내며’ 등 4가지 섹션으로 나눠서 전시하고 있다. 


3.
국립민속박물관이 외국인이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시설인만큼 주최측은 체험이나 경험 요소도 전시물 속에 적극적으로 투입했다.

오승윤의 <대한> 앞에는 실제 그림 속 인물이 착용한 방한용 모자와 옷을 입은 실물대의 강태공을 전시하고 있고 그 강태공이 들여다보고 있는 얼음 구멍 안에는 소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물고기가 노니는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설중방우도>나 박승무의 <어촌모설도>, 청전 이상범의 <설경산수(북한산 대남문)>가 전시된 공간의 한 켠은 칸막이를 이용해 좁은 골목길을 만들고 반응형 프로젝터를 이용해 관람객이  지나가면 눈발자욱이 남고 먼데서 컹컹 짖는 개소리가 들려와 겨울밤의 판타지를 북돋는다. 주최측은 소리와 터치 기술, 조명, 영상 등 멀티미디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전시 내용보다 기술이 도드라지는 전시가 되지 않도록 조율해 냈다.
전시장 들머리에 설치된 온돌방에는 신발을 벗고 누워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나무나 석탄을 땐 구들장의 뜨끈뜨끈함은 아니지만 아랫목의 따끈함을 환기시킬만큼 따뜻하다. 외국인들이 벌러덩 누워서 ‘온돌 체험’을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산업화 초기인 1960년대 초반 얼어붙은 뚝섬과 한강변을 찍은 한영수의 사진과 설원지대의 나무와 눈내린 산하를 찍은 강상규의 사진(<설목>, <설원지대>)은 나이든 세대에겐 지난 시절 살아낸 이땅의 실경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겨울나기>의 아쉬움이 있다면 전시 면적이 좁아서 코너별 각기 다른 멀티미디어 시설이 서로 간섭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점이다. 그래도 최근에 쏟아져 나왔던 산업화 시기의 ‘추억팔이’에만 매몰된 전시와는 다르게 회화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8.04.2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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