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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한국 현대화단의 연대기적 진술 <서울대학교 미술관 소장품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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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제스트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

제 목 : 서울대학교 미술관 소장품 100선
장 소 : 서울대학교 미술관
기 간 : 2018.2.1 - 4.29
글/ 김진녕

국내에서 연중 기획 전시를 수차례 진행하는 미술관은 국공립 미술관을 빼고는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특히나 대학에 설치된 미술관은 서울대 미술관을 빼고는 전무하다시피하다.

서울대 미술관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서울대 박물관 현대미술부로터 소장품을 이전 받아 개관한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독자적인 건물을 갖춘 국내 유일의 대학 미술관’이다.

개관 10년을 넘긴 서울대 미술관이 소장품 650여 점 중 100점의 대표 소장품을 구상, 반추상, 추상으로 구분하여 제작연도 순으로 전시하는 <서울대 미술관 소장품 100선>전(~4월29일)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100점의 구성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국 미술계의 단면도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일단 서울대 미술관의 소장품 구성 자체가 한국적 상황의 반영이다.

소장품 665점 중 작가나 컬렉터에 의한 기증품이 330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이관에 의한 수집이 317점이다. 이 이관에 의한 수집품에는 2006년 서울대 미술관 개관 당시 서울대 박물관 현대미술부에서 이관된 303점이 포함돼 있다. 서울대 개교 이래 서울대 박물관에 들어가 있던 현대 작품을 재분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입에 의한 수집 작품은 2016년 미술관 예산으로 구입한 16점이 전부이다.
100점 중 외국 작가 작품은 7점으로 이중 5점은 기증에 의한 작품이고, 두 점은 1957년과 58년에 미네소타 주립대와 서울대 미대간에 있었던 교류전의 ‘흔적’이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기 전에 열렸던 이 교류전은 우리나라 대학 최초의 해외 교류전으로 당시 서울대 미대 장발 학장의 주도로 열렸다. 1957년 서울대 교수와 학생의 작품이 미네소타로 갔고 그 다음해에는 미네소타대의 교수와 학생들 작품이 서울대로 왔다. 경제상황이 열악했던 만큼 작품 운송비를 절약(?)하기 위해 보낸 작품은 해당 대학이 소장하는 것으로 협의해 미네소타대에서 보낸 작품 10여 점이 서울대 미술관에 남게 된 것이다.

관련 논문을 쓰기 위해 미네소타대 박물관을 두 차례 방문했던 현 서울대 미술관 정영목 관장은 “당시 우리쪽에서는 동양화를 많이 보냈다. 노수현 선생, 장우성 선생, 박노수 선생의 큰 작품 등 열 댓 점 정도를 보냈다. 지금 봐도 좋은 작품”이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가를 보면 한국 작가의 스펙트럼을 보면 1912년 생으로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았었던 장우성 작가부터 2000년에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정직성 작가까지 근 100년의 시간을 아우르고 있다.



출품 작가 중 서울대와 학연으로 엮이지 않은 작가는 17명이다. 출품작 중 75%가 서울대라는 학교와 교수나 학생이란 신분으로 관계가 엮인 작가들이다. 소장품 대다수가 기증이나 이관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쏠림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전체 출품 작가 100명을 놓고 봤을 때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작가가 40명,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작가들이 각 15명씩 안배됐다.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했다면 대략 1920년대와 1930년대 출생자들이다. 면면을 보면 박세원 서세옥 김세중 백문기 한우식 권영섭 장성순 정창섭 박노수 문학진 하인두 정상화 민경갑 등을 포함하고 있다.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의 길에 나선 이들은 1950년대 후반 한국 화단에 열풍을 불러왔던 앵포르멜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국내에서 앨포르멜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현대미술가협회가 결성된 것은 1957년이고 주요 멤버 중에 하인두나 장성순이 가담하고 있다.





정영목 관장은 이 시기의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50년대 말, 60년대 앵포르멜 작품을 했던 분들이 그 시기를 숙련기라고 생각하는지 그때 작품에 대해 별로 프라이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나도 놀랐다. 그 시기에 내놓은 작품을 자신의 본격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하종현 선생도 좀 그러셨고 박서보 선생도 그렇고. 이 분들이 그 시기 작품을 본인의 전시 때마다 한 두 점씩 포함을 시키기는 하지만, 그런 운동(앵포르멜)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계시는 반면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그때는 훈련기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대 미술관의 <100전>에 전시된 작품을 보는 또다른 묘미는 한국 미술계의 플랫폼 중의 하나인 학맥을 통한 네트워크였던 후소회나 묵림회, 현대조각회 멤버들의 작품을 한눈에 보는 것. 물론 작품 설명서에는 드러나지 않는 ‘경향과 영향’이다.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는다는 말이 있다.

결국은 작가는 작품으로 남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곳이 <서울대 미술관 100선>전이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8.05.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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