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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이란 생태계로 뛰어든 외국인 작가 3인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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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고 바움가르텐 Passages 갤러리조선 2018.2.7~2.27
아그네스 볼코비츠 The Death of an Identity 관훈갤러리 2018.2.21~3.4
파레틴 오렌리 Nature of Me 갤러리 P21 2018.2.28~3.31
글/ 김진녕

-안에서 보는 한국, 밖에서 보는 한국
-외부인의 시선에서 해석된 한국적인 것


안에서 밖을 보는 것과 밖에서 안을 보는 것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남은 다르게 묘사될 수 있다.
한국을 거점으로 또는 한국을 주요 활동무대로 작업하는 외국인 작가도 제법 있다.
공교롭게도 2~3월에 이들의 전시가 한꺼번에 열렸다.

독일에서 태어나 일본을 거쳐 한국에 정착해 9년째 살고 있는 잉고 바움가르텐은 서교동이나 상수동 일대에 들어선 개발연대에 지어진 양옥집을 통해 한국의 단면을 날카롭게 집어낸 잉고 바움가르텐은 갤러리조선에서 <패시지스Passages>(2.7~2.27), 독일에서 영국을 거쳐 한국으로 유학을 온 7년차 유학생 아그네스 볼코비츠는 홍익대 박사학위 청구전 <정체성의 죽음The Death of an Identity>전(2.21~3.4)을 관훈갤러리에서 열었고, 터키 출신으로 네덜란드에 정착한 파레틴 오렌리는 갤러리 P21에서 <나의 본질Nature of Me>(2.28~3.31)를 열고 있다.

이들 세명은 각각 인생의 다른 시간대를 지나고 있고 한국에서의 활동 형태나 본거지인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와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계기나 이유도 다르다. 다만 그들의 작품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이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1. 잉고 바움가르텐의 경우.

독일에서 출발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온 잉코 바움가르텐은 홍익대 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한국인 부인과 벌써 9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이전에 콘크리트로 재현된 처마나 집규모에 비해 과대하게 큰 대문 등 개발연대에 세워진 한국적인 ‘양옥집’의 특징을 끄집어내던 바움가르텐은 이번 전시에선 90년대 이후 등장한 서울역 새역사의 진입 육교, 세븐 카지노의 연결 다리 등 현대식 건물에 들어선 육교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회화는 어떠한 장면이나 기록을 담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기록을 담는 미디엄으로는 사진이 더 적합하다. 나는 회화는 회화 자체로 해석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업할 때 구성이나 색상 초이스에 있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의 주제에 색상을 고르고 구성을 정하고 때로는 크기 비율 색감을 내 감성대로 바꾸어서 그리기도 한다. 물론 나는 유럽인이기 때문에 유럽인의 취향의 색상이 작업에 표출될 때가 많을 것이다. 아마 내 작품에 유럽인의 감성이 표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내가 나의 문화적인 배경을 억제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내 작업을 더 흥미롭게 해주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내 회화는 한국의 전통 주제를 유럽풍의 감성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처음 한국의 오래된 양옥을 보았던 것은 상수동이다. 내가 처음 주택을 보고 느꼈던 점은 건물이 매우 즉흥적으로 짧은 기간에 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기 어려운 언덕이나 비좁은 골목에 비효율적인 공간으로 지어졌거나 창문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거나, 특이한 점들이 많아 보였다. 이런 점들이 저에게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1950~6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 지어진 새로운 건물은 나에게는 흥미가 없다. 그 이유는 서울의 많은 건축물은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져 지어졌기 때문이다.

… 내가 서교동이나 연희동에 있는 낡은 주택 지역을 돌아보면 특정한 건축 양식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집도 많다. 서양이나 중동의 건축 특징도 찾아볼 수 있다. 퓨전의 건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건물이 지어졌을 당시 매우 중요한 시기였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같은 서울의 랜드마크 건물을 보아도 서양의 건축 양식과 한국의 전통 양식의 융합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70~80년대에 한국에서 지어진 건물을 보면 한국이 현대사회로 여러 방면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시기임을 알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아마 그 당시에는 정부에 압박에 의해 재빠르게 현대사회로 거듭나려 노력하며 사람은 사회적인 충돌, 문화적 어려움과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전시의 제목은 ‘PASSAGES’로 복수형이다. 패세지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로는 그저 건물과 건물 사이, 길과 길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통로로서 해석될 수 있다. 한쪽에서 반대편으로 넘어가기 위해 지어진 다리처럼. 패세지는 두 개의 요소를 연결해주는 도구의 역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 작품 중 두 개는 이런 일차원적인 통로의 의미를 보여주는 주제를 담은 페인팅이 있다.


하나는 강을 건너는 다리이고, 하나는 빌딩과 빌딩을 연결해주는 다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패세지는 말그대로 공간을 이어주는 것 외에 추상적인 두가지 요소를 연결해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국말로는 ‘과도기’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패세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패세지는 양쪽 요소를 연결해주는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내가 말하는 패세지는 복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배로 넘어갈 때 그 통로를 하나의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면, 하나의 정해진 방향으로만 가야하는 통로로 해석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내 자신이 관객에게 전달 할 수 없는 감정을 작품과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


2. 아그네스 볼코비츠의 경우

30대 초반의 아그네스 볼코비츠는 지금은 폴란드령인 단치히 부근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갓난쟁이 때 부모와 함께 독일로 이민갔다. 정확하게는 고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발트해에 면한 단치히가 한사동맹의 거점항이자 프로이센의 일부였고 2차 대전 때까지 독일계가 다수 거주하다가 2차 대전 이후 폴란드령으로 확정되면서 독일계 시민들이 독일로 돌아갔다.

볼코비츠의 이런 개인적인 이력은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의 대량 유입이 이뤄지기 전에도 유럽 블록 내에서도 국경과 민족이라는 근대적 개념과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와 마음의 지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볼코비츠는 고등하교 졸업 뒤 영국 첼트넘의 글로스터셔 대학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했고 대학졸업 무렵 중국에 한 달 정도 갔다가 일본을 알게 됐고, 그러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알고 나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관심이 갔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외국 학생을 위한 장학금 프로그램을 신청해 한국으로 와 홍익대에 들어가서 판화를 전공했다. 7년에 걸쳐 석사와 박사 학위 코스를 밟았고 2월의 전시는 박사 학위 청구전이었다.


전시의 제목은 <정체성의 죽음 The Death of an Identity>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한국에 유학 올 때 죽음이나 정체성같은 것으로 작업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도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작업을 만들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죽음이나 정체성에 대해 작업하는 사람이 많다. 그 주제에 대해 나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2016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한테는 그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외할머니와 엄청 친했다. 그때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인사도 못하고 여기에 왜 있지’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나의 한 부분도 같이 떠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손주인데, 나도 같이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내가 계속 내가 되는 과정 속에 있는데,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 여행 중이다. 여행할 때는 누구를 만나고, 그 사람이 나랑 같이 여행할 수도 있고, 어느 순간에 그 사람하고 작별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게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긴 여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death of an identity’라는 제목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에 대한 작별이다.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지점이라 그런 제목을 붙였다.

죽음은 슬프고 안좋게 보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내가 하는 여행의 한 부분이 되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면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작가로서 독일 시장이 더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

나는 한국 유학이 내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국 학생들은 서양미술사를 잘 알고 있는데, 유럽 학생은 동양이나 한국 미술에 대해 잘모른다. 이 시대에는 작가가 한 곳에 머물면서 경험하거나 그러면 안된다. 여러 곳을 경험하고 배우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왔기에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워서, 유럽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워서 기회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머물면서 나에 대해서, 자아에 대해서 더 잘알게 됐고, 사람에 대해서 더 잘알게 됐다.

정이란 개념은 유럽에 없다. 유럽에선 사람들의 감정교류 같은 게 없다. 요즘은 감정적인 교류를 통해서 더 많은 영감을 얻는다.

주변에 젊은 한국 작가를 보면 불만이 많다. 자기 작업에 비해서 기회가 없어서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젊은 작가가 많다. 시장이 지금 부족하더라도 앞으로 시장이 생길 것 같다.

-‘한국적인 컬러’ 또는 ‘유럽적인 컬러’라는 게 있나.

유럽에서는 색채 구사가 직접적이고 시끄럽다. 색채를 그런 식으로 구사한다.

한국식 색채감각은 한국 사람의 성격이랑 비슷하다.

나처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예를 들면 내가 이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어떤 친구는 같은 의미라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듣는 사람의 입장도 들어보고 인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 색깔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는 사람 입장도 이해하고, 인정하는 색깔을 운용한다. 예를 들어 브라운 색깔, 흙색, 대개 차갑지 않고 따뜻하고, 진천에 갔을 때도, 흙이 많았는데 그런 색깔이 들어가는 흙이 많았다. 부드럽고, 보는 사람에게 날카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아니었다. 나도 그런 색깔을 내 작업에 쓰려고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여기서 7년 동안 살아도 아직 모르는 게 많고, 부족하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구분 가능한가?

가능하다. 얼굴 보면 안다. 얼굴 표정이 다르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얼굴을 많이 본다. 내가 이름보다는 얼굴을 잘 기억한다. 미술하는 사람들은 얼굴을 잘 기억한다.

얼굴 표정에서 약간 차이점이 있다. 표정이라기 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있다.

독일 사람은 표정이나 얼굴이 딱딱하다. 독일 말처럼 딱딱하다.

한국 사람은 가끔 싸울때는 시끄럽지만, 그래도 말이나 표정이 부드러운 편이다.

따뜻함이 있다. 한국 어르신 볼때는, 아예 모르는 사람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진다. 내 외할머니처럼.


3. 파레틴 오렌리의 경우.

파레틴 오렌리(1969년 생)는 시를 쓰고 사진을 찍고 드로잉을 하고 그걸 결합시켜서 국경과 국경을 넘나들며 전세계의 대도시를 돌며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일관되게 이민과 난민이라는 국가와 도시를 넘나드는 대규모 이주 현상과 그로 인한 문화의 섞임,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곳으로 이식된 삶, 대도시를 휩쓰는 신자유주의와 그로인한 거주자의 삶 등을 관찰하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그의 출생 배경과 성장 배경, 삶의 방식을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파레틴은 암스테르담과 이스탄불, 서울, 뉴욕, 샤먼, 도쿄 등에서 그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는 터키 동부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터키 소수민족 출신의 어머니와 또다른 인종적 배경을 가진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그는 터키 내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홀로 떠나 그곳의 라익스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터키와 네델란드라는 국경을 벗어난 활동을 하고 있다.

네델란드에서 ABN-암로 미술상과 네델란드 왕실에서 주는 상을 받았고 뉴욕과 중국 하먼시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했고 한국에서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2017년 ‘사무소’ 레지던시에서 활동했다. 물론 모국인 터키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거꾸로 그는 암스테르담과 이스탄불, 서울, 하먼, 뉴욕 같은 여러 대도시에 네트워크(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계없는 삶이 오히려 여러 연고지로 확산된 경우다.

한국과의 인연은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인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해 한국을 처음 찾았던 오렌틴은 이후 한국을 주기적으로 찾으면서 여러 합동전과 개인전,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한국 현대 미술의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됐다.

2010년 1월 개인전을 열었고 2013년 6월에는 <서울시 프로젝트The Project THE CITY SeOUL>이라는 전시를 통해 그가 관찰한 서울을 오렌리의 언어로 표현한 작품을 발표했다.

그때 선보였던 합정동 일대를 묘사한 작품은 이번 <나의 본질Nature of Me> 전시에도 등장했다. ‘conspiracy wall’이란 제목으로 그간 작업했던 드로잉과 사진, 회화를 결합한 작품을 판화모음집처럼 모아놓은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언더그라운드 시티>에서 그는 대도시를 식물의 땅속 줄기에 붙어서 불어나는 열매처럼 묘사했다. 그는 화면에 포도나무의 뿌리와 줄기를 그렸고, 그 줄기를 꺽꽂이해 또다른 대도시가 생겨나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에 대해 주최측은 ‘오렌리는 삶, 자연과 도시환경이 어떻게 융합하여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지 탐구하는 과정에서 식물의 접목과 인간의 성형 수술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이 두 개념은 이행되는 대상만 다를 뿐이지 같은 행위이며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 자연의 우위에 서려는 인간 성질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신작 <언더그라운드 시티>도 ‘접목이 도시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이론에서 출발해 유기체로서의 도시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시각화한 드로잉으로 작가는 혈관처럼 확장되는 도시를 뿌리와 가지에 비유하여 도시와 식물에서 동일하게 관찰되는 접목현상-유용성과 지속가능한 지식을 지닌 뿌리를 양성하면서 새로운 가지를 늙은 가지에 덧대, 더 생산적이고, 수익성 있게 체계적으로 온실 안에 재배되는 구조-을 캔버스 위에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대도시의 삶과 지탱 구조는 비슷하다는 게 도시와 도시를 점프하며 살아가는 그의 관찰 결론일 수도 있다.

2010년의 전시회에 그는 이렇게 썼다.

“서로 다른 민족적 배경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나 두 개의 국가에서 활동하면서 일종의 초국가적인 "아나티스트 (anartist)"가 되었다. 지금 내가 내 자신에게 "아나티스트(anartist)" 로서 가지는 질문은 시스템을 넘어서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아니면 나는 단지 모국이 없는 노숙자인가?”

여기서 아나키스트와 아티스트의 합성어다. 무국적 또는 국경없는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이 글귀는 지금도 그의 홈페이지에 걸려있다.

지금 유럽은 좀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기 위해 저위도 지역에서 고위도 지역으로 집단 이주하려는 ‘난민’의 유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역시 능동적으로 산업화를 이룬 큰도시를 이동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가 본거지로 삼고 있는 글로벌 아티스트이지만 암스테르담에서는 저위도 지역의 이주민이자 마이너리티이다. 터키라는 모판을 떠나 네델란드라는 토양에서 작가로 성장한 그는 아시아와 북미에도 자신의 네트워크(뿌리)를 열어놓고 있고 그 중에는 서울이란 대도시도 있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8.11.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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