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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도사에서 만날 수 없는 “통도사”를 만나다 - <통도사를 담아내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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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2018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 <불보종찰, 통도사를 담아내다>
장 소 : 불교중앙박물관
기 간 : 2018.07.03~09.30
글/ 주 수 완(불교미술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하나의 건축, 나아가 그런 건축이 모여 이루어진 한 사찰을 전시에서 드러내기란 매우 어렵다. 어차피 건축 그 자체를 옮겨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 흔히 건축에 관한 사진, 영상, 설계도면, 건축가노트, 건축모형, 변형 전의 사진자료 등을 늘어놓을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2015년에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건축예찬>이나 예술의 전당의 <안토니 가우디전>은 성공적으로 건축의 의미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사찰을 담아낸다고 하는 큰 포부의 전시가, 그것도 “불교종찰”이라고 하는 거대한 사찰 통도사를 담아낸다고 하는 전시가 안국동 불교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에 무척 기대되었다. 한편 천년고찰 통도사에 담겨있는 역사와 콘텐츠를 과연 박물관에 옮겨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통도사전경도>, 20세기초


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통도사를 그려낸 <통도사전경도>이다. 통도사의 각 전각들의 배치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어, 말하자면 드론이 없던 시대에 통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든 독특한 지도식 그림이다. 막상 실제 통도사 안에 들어가면 통도사가 바로 영축산 아래에 자리잡은 사찰이라는 것을 실감하기 어렵다. 사찰 일주문 인근에서 일부러 찾아 바라보아야 저 멀리 웅장하게 솟은 영축산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도에서는 마치 사찰을 집어삼킬 듯한 엄청난 위용을 뿜어내며 웅장한 산세로, 다소 과장된 듯한 모습으로 영축산이 그려져 있다. 이 지도를 보면 통도사가 영축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고 인식했던 옛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다. 더불어 통도사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 영축산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암자가 자리잡은 것까지 정교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도사는 일주문으로 들어가서 금강계단이 있는 상로전까지 둘러보고 왔던 길로 되돌아 나오는 정도인데, 진정한 통도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 그림이 보여준다. 어찌 보면 정선의 화풍이 보이고, 어찌 보면 장승업의 기괴한 산수 같기도 하고, 또 전반적으로는 민화풍이기도 하다. 우주에 홀로 고고하게 떠있는 것처럼 통도사를 묘사한 이 작가는 조선의 르네 마그리뜨였을까?

  
목조구룡장식(좌. 조선후기)과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중 ‘비람강생상’ 중에서 구룡 위에 정좌한 아기부처(우 1775년)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아홉 마리의 용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목조각품이다. 구룡(九龍)은 흔히 석가모니께서 룸비니에서 막 태어나셨을 때 아기였던 석가모니를 아홉 마리의 용의 씻겨드렸던 것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용의 표정은 같지만 다양한 채색으로 마치 각각의 개성이 드러난 듯한 이 재미있는 구조의 목조각은 그 옆에 걸려있는 통도사 소장 <팔상도> 중의 “비람강생상”을 보면 그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오른쪽 상단에는 막 태어난 석가모니에게 천신들이 모여 공양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때 아기 석가모니는 여러 용들의 머리를 맞댄 그 위에 정좌하고 있다. 여기서의 용들은 머리를 바깥으로 하고 있어 조금 다르지만, 아마도 이 그림에서처럼 목조구룡장식 위에도 아기부처가 앉아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림에서는 종종 보이지만, 실물로 남아있는 매우 드문 작품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팔상도는 불교미술의 발상지인 인도·간다라에서는 ‘불전도(佛傳圖)’라고 하여 석가모니의 일생을 묘사한 유형으로 크게 유행했던 장르였다. 동아시아로 넘어오면서는 그 유례가 적지만,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축약한 팔상도라는 형태로 전승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장면들은 그 오랜 시간 후에,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재현된 것임에도, 놀라울 정도로 고대 인도·간다라의 이야기 표현 방식을 간직하고 있다.


연화봉황무늬자수방석, 조선후기


또 한가지 특이한 작품은 분명히 불교미술 전시를 보러간 것인데 뜻밖에 만난 민화다. 이 작품은 실을 수놓은 방석인데, 그 자체로 한 폭의 민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회화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요즘 절에서 볼 수 있는 아무런 무늬없는 방석에 비해 도대체 이런 멋스런 방석에는 어느 스님이 앉아 법문을 펼치셨을까? 민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꽃 중에서 연꽃이 선택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그 꽃이 불교의 꽃이기에 선택된 것이었을까?


탁의. 1890년, 상궁신씨 시주.


이런 민화풍의 자수는 통도사 불단 앞에 드리워져있던 탁의(卓衣)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세 마리의 용이 삼각형으로 공중을 날고 있는 가운데, 그 아래로는 마치 ‘일월오봉도’풍에 보이는 궁중민화풍의 산수가 수놓여 있다. 무지개처럼 기하학적으로 묘사된 화면 하단부, 그리고 그 위에 솟아있는 바위산과 격렬한 파도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던 우주관의 반영이 아닌가 한다. 특히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때문에 대웅전의 불단에는 불상이 봉안되지 않고 다만 공양구만 올라가는 것이 큰 특징이다.


탁의 세부. 운룡해악도(雲龍海岳圖)


그러한 만큼 자칫 비어 보일 수 있는 불단을 보다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데 있어 이 탁의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탁의는 말그대로 어떤 의미에서는 의(衣), 즉 옷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두루마기 장삼을 세 벌 펼쳐놓은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원래 인도나 티베트에는 불상에 가사를 공양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렇게 올려진 가사를 승려들이 때에 맞춰 불상이 걸친 오래된 가사를 제거하고 새 가사를 입히는 의식을 거행하고는 한다. 혹시 이 탁의는 비록 통도사 불단에는 불상이 봉안되지 않았지만, 전통적인 관습에 의해 불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전통으로 변화되어 확립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보이지 않는 부처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었다고나 할까.


 
<금동천문도> 및 뒷면의 수미산도. 1652년. 보물 1373호. 


그런데 이 탁의에 등장하는 일월오봉도풍의 산은 이번에 전시된 유물인 금동천문도 뒤편에서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금동천문도는 유명한 조선시대 석각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중에서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별자리들인 ‘자미원’과 그 주변의 28수만을 추려 나타낸 것이다. 금동판에 각각의 별은 진주를 박아 표현한 것이라니 이 금동판의 용도가 궁금해진다. 그런데 그 뒤에는 통도사 탁의에 그려진 산과 유사한 형태로 수미산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수미산을 둘러싼 33천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원래는 북한산 문수사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데, 그래서일까 여기 표현된 수미산은 삼각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탁의에 표현된 산도 수미산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진신사리를 봉안한 통도사야말로 하늘 아래 첫 산인 수미산처럼, 하늘 아래 첫 사찰이라는 자부심이 배어있는 것이지도 모르겠다. 


호계첩, 1932년발행.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나말여초. 높이86㎝.


통도사 호계첩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자장율사가 가져온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은 수계의식을 행하는 단이었는데, 실제 여기서 계를 받으면 주는 증서였던 것이다. 마치 학위증서처럼도 보이는 이 호계첩의 시작줄에 있는 ‘통도사 금강계단’이란 표현에서 다른 곳보다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커다란 첩이다. 진신사리가 석가모니 부처님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통도사 금강계단 수계의식은 곧 부처님 가장 가까이서 수계를 받는다는 것을 뜻하므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살펴보니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 어느날 최학수(崔鶴樹)라는 분이 보살계를 받았던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통도사 향완. 고려시대. 보물 제334호.


통도사 불전에 봉안된 불상들은 모두 조선시대의 불상들로 교체되었지만, 과거에 봉안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두 구의 석불상이 눈에 띤다. 특히 그 중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미완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얼굴과 손의 정교함에 비해 몸에 걸친 불의(佛衣)는 다듬다 만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미완성작은 석조불상조각이 어떤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불상 제작 기법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작가마다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서 보면 조각가는 얼굴을 완성시켜 놓고 다음으로 지권인의 수인을 다듬은 다음 의습선을 조각하려다 그만 둔 것 같다. 왜 미완으로 끝났을까?

화려한 은입사를 자랑하는 정병과 향완 역시 통도사가 자랑하는 불교공예품이다. 특히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향로는 다른 은입사향로와 달리 몸체의 연꽃 넝쿨 무늬를 도드라지게 표현한 다음에 은입사를 시문한 것이어서 더욱 정성이 들어가 있다. 거기에 ‘통도사상(上)’, 즉 통도사 상원인 금강계단 일원에서 사용하던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아마도 진신사리를 향한 향공양에 사용될 향로였기에 더욱 세심한 손이 간 듯 하다.




통도사 화엄도(1811년) 및 세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의 진영. 1804년.

자장율사는 기본적으로 화엄학에 속한 스님이셨기 때문에 그토록 문수보살을 뵙고 싶어 하셨다. 자장율사의 화엄학 전통은 1811년에 그려진 <화엄도>에 이어지고 있다. 화엄경의 기본이 되는 7처9회의 설법을 한 화면에 담은 것인데, 특이하게도 검은 바탕의 비단에 그려져서인지 우주 공간에서 설법을 하고 계신 석가모니의 다양한 모습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히 이 작품 안에는 수많은 불·보살과 권속이 등장하는데, 그렇다보니 조선후기에 알려져 있던 불교도상이 총망라된 느낌이다. 그 가운데에는 저 오래 전 인도 간다라 미술에서나 볼 수 있었던 도상들이 등장하기도 하여, 이런 고대의 전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불교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늘 잠재되어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아니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였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최근 불국사에 반환된 황룡사 9층탑 발견의 진신사리는 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황룡사 사리는 통도사 금강계단 사리와 함께 자장율사께서 가져온 사리여서 "삼국유사"에 의하면 황룡사 목탑이 불탔을 때 통도사 금강계단의 석종도 불에 그슬린 것처럼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두 사리가 동체였음을 의미한다. 이번에 황룡사탑 사리가 공개되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밖에 통도사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의례와 기도의 흔적을 간직한 불구, 불상, 사료적 가치를 지니는 비석 탁본, 그리고 통도사를 이끄신 자장율사의 진영을 비롯한 수많은 고승들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으니, 막상 통도사에 가도 보기 어려운 그 역사적 내면의 세계를 이번에 새로이 접해보시기를 권한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이어진다.
글/ 주수완(문화재청) 관리자
업데이트 2018.08.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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