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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해외전시] 시간을 건너 마주한 매체와 파편과 여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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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미켈란젤로: 생애, 죽음, 재생(Viola/Michelangelo: Life, Death, Rebirth)》

2019. 1. 26 - 3. 31
영국 로얄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 왕립예술원
글/ 강유진(前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


언뜻 보기에 빌 비올라와 미켈란젤로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몇 세기를 사이에 두고, 한 작가는 고대 종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이고 다른 하나는 르네상스의 거장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 둘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매체와 도구’를 누구보다 잘 다루는 수행자에 가까운 작가들이다. 대조적으로 짝을 이룬 이 전시는 오랜 준비 기간(무려 10년에 가까운)에 비해 예리하지는 못했지만 로얄 아카데미가 각 작가의 웅장한 주제에 심취되거나 침몰되지 않고, 그 선입관에 직면한 용기 있는 전시 방법론을 보여준다.

전시에 앞서 큐레이터는 비올라의 비디오 설치와 미켈란젤로 그림의 결합이 단순히 이 미국에서 온 비디오 아티스트를 현대판 미켈란젤로의 지위로 승격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주장을 미루어 보지 않아도 이번 전시는 오히려 두 작가가 다룬 주제와 작품을 통해 각 시대의 시간과 그 너머의 것을 한 장소에 가지고와 마주하게 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존재의 본질, 생애의 과도기, 그리고 죽음을 넘어서는 두 작가의 영적 열망은 아무렇지 않은듯 갤러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Nantes Triptych, 비디오, 3채널 프로젝션, 컬러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29분 46초, 1992

두 작가는 비올라의 3 채널 비디오 설치 인 “Nantes Triptych” (1992)가 전시 된 두 번째 갤러리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출산하는 여성, 물속에 떠있는 몸, 그리고 임종 당시의 작가 어머니를 묘사한다. 그것은 비올라의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기술적 혁명은 드러나지 않지만 비올라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다. 또한 이 작업은 현실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의 유일한 작업이기도 하다. 임신한 여성의 울부짖음과 한숨, 늙은 여성에게 붙인 인공호흡기의 리드미컬 한 쇳소리, 전시장의 어두운 조명 안에서 관람객은 기억나지 않거나 아직 상연되지 않은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The Taddei Tondo, 까라라 대리석, 지름106.8(cm), 두께 7.5-22(cm), c. 1504-05


“Nantes Triptych” (1992)와 함께 미켈란젤로의 “Taddeo Tondi” (c. 1504–05)를 포함하여 성모 마리아와 그 아이를 묘사한 드로잉과 부조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평평하지만 비올라의 작업과 달리 작고 유약한 작품은 죽음에 대해 인식한 듯 두 사람의 서로 얽혀 있는 자세가 아슬아슬하게 표현돼 있다. 마리아는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감싸 안지만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분필이나 끌로 만들어 졌는지에 관계없이 육체적 영역과 형이상학적 영역 사이를 조용하고 공평하게 중재한다.

이 전시장에서 비올라의 비디오는 미켈란젤로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비디오에서 나오는 무거운 신음과 거친 호흡 소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과 대화하지도, 그들의 관계를 크게 향상시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부조와 드로잉, 3개의 채널은 무겁게 우리 주변에 부유한다.

그 이후의 설치 방식은 두 사람의 대화와 비슷하거나, 한 사람의 독백으로 구성된다. 비올라가 진행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과 일련의 프랙티스들의 진폭은 제작 시기와 관계없이 각 전시 작품의 창의적인 인스톨레이션에서 반영된다. 그 중 “The Sleep of Reason” (1988)은 초기 작품 임에도 나무 선반, 램프, 화병 등의 오브제와 자고 있는 여성의 반복 되는 비디오를 벽면에 투사되는 프로젝션 이미지와 소리의 폭발로 산재시킴으로써 매혹적인 꿈의 세계와 잠재의식을 탐구한다.



The Sleep of Reason, 목제 상자, 화병, 인공 장미, 자명종 시계, 램프 설치, 흑백 및 컬러 영상, 사운드, 429.26 x 584.20 x 670.56(cm), 1988

이 작업과 비교해 보면 비올라의 널리 알려진 커다란 스케일의 비디오 작업은 전시에서 가장 화려했지만 또 지루한 작품이기도 하다. “Five Angels for the Millennium” (2001)은 엄청난 양상과 맥락이 물속에서 소용돌이치며, 작품의 주인공들은 물에 가라앉거나 일어서고 때로는 힘겹게 수중에서 숨을 참는다. 슬로우 모션과 영리한 편집의 스펙터클에 우리는 압도당하기 쉽지만 더불어 극적인 고화질의 스크린과 반사음에 쉽게 갇히게 된다. 비올라의 작품으로만 이루어지는 후반부는 대부분 반복적이어서, 기술적인 정교함의 차이를 발견하기 매우 까다롭다. 전시 초반의 비올라는 종종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보여지지만 되풀이되는 전시 기법으로 흡사 기술의 향연에 매료된 작가로 보이게 한다.


Five Angels for the Millennium, 비디오, 5채널 프로젝션, 컬러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2001


반면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의 친한 친구였던 Tommaso Cavalieri를 위해 그렸던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림의 주인공이 신화적 인물과 싸우는 “Three Labours of Hercules” (c. 1530)에서는 작가의 비범한 기술이 파손되기 쉬운 종이에서 발견된다. 인간의 모습은 그가 정의한 근육 조직의 윤곽을 통해 조각적으로 취급되며, 동시에 연출의 부드러움과 몸을 둘러싼 물결 모양은 그 허약함을 강조한다. 그의 절묘한 소묘 기술을 통해 미켈란젤로는 인체를 육체 이상의 것으로 소개하며 영혼을 위한 그릇으로 만든다. 이 신화적 그림과 함께 비올라의 “Man Searching for Immortality/Woman Searching for Eternity” (2013)는 노년층의 여성과 남성의 2 채널 비디오 조각으로 마치 스크린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마주한 채 천천히 제 몸을 훑는다.


Three Labours of Hercules, 종이에 붉은 분필, 27.2 x 42.2(cm), c. 1530


궁극적으로 이 두 거장이 찾은 것은 물리적인 존재의 제한된 영역일 것이다. 작업에서 발견한 것들은 인간의 이원성을 고려하는 문자적이지 않고 일차원적이지 않은 방법들이다. 전시의 특기할 점은 매체와 시대가 갖는 특징과 달리 비올라가 주제를 명확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동안 미켈란젤로는 다소 차분한 언어와 신념으로 대상을 접근한다. 다만 규모와 스펙터클에 관계없이, 비디오/미디어 매체는 르네상스 작품과 같은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전시는 비올라의 작품을 미켈란젤로와 병치시키지 않았더라면 더 유리한 입장에 놓았을 것이다.


Man Searching for Immortality / Woman Searching for Eternity, 벽에 기댄 검정 화강암에 고화질 비디오설치, 227 x 128 x 5(cm) each, 18분 54초, 2013


《빌 비올라/미켈란젤로: 생애, 죽음, 재생(Viola/Michelangelo: Life, Death, Rebirth)》은 로얄 아카데미가 처음으로 준비한 블록버스터급 ‘미디어’ 전시다. 전시는 다른 타임라인, 다양한 전시 방법론 등, 거의 모든 것부터 시작해 여러 차원의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또한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미디어 전시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분명히 이 전시는 두 명의 그랜드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웅장한 테마에 관해 논의하면서 큐레이터의 야심을 구체화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짝을 이루는 전시 방식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클래식을 자주 넘어서지 못하는 기술의 향연을 오늘날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비판적 전시 담론과 검토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글/ 강유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03.2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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