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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세계에 대한 질문에 답한 4인의 응답 - 경주솔거미술관 <전통에 묻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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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전통에 묻다
장 소 : 경주솔거미술관
기 간 : 2019.3.5-9.15

글/ 김진녕

근대에서 현대로 순간이동하는 것을 목격한 해방동이 세대의 길찾기
‘전통’이란 강박과 창조라는 욕구 사이에서 길찾기에 나섰던 그들의 성과

1945년 해방을 전후해 태어난 원로 작가 박대성, 이왈종, 황창배, 윤광조 등 네 명이 참여한 전시<전통에 묻다> (~9월15일)가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도예 장르의 윤광조를 빼고 모두 한국화를 기반으로 80년대부터 이름을 날렸던 작가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인 조은정 교수는 “네 분의 공통점은, 화단에 등단할 때부터 지금까지 부침없이 에너지 넘치는 작품 활동을 보이고 있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이른바 해방세대, 즉 1945년 직후 태어난 작가들이 중견으로 도약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1980년대 미술에서 전통은 ‘전통의 재창조라는 뚜렷한 주체의식’에서 발원한것이다. 그것은 민족, 민중에 대한 인식과 함께한 것이기도 했고, 국내 중심의 미술에서 세계 미술에 대응, 대항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함께 하는 박대성, 이왈종, 윤광조, 황창배는 바로 이러한 동시대를 함께한 이들이다.

전통이란 화두를 걸머진 채 세계에 눈 뜬 한국현대미술의 변화하는 노정에서 작가적 양식을 이룩한 3인의 한국화는 각기 다른 장르인 것처럼 보인다. 작품 하나하나에 관통하는 정신성과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윤광조의 도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대성의 작품 앞에서 동양화의 극대화한 지점을 만난다. 이왈종의 유쾌한 화면 안에서는 물질과 소재의 재료성이 사라지고 균형이라는 오래되고도 유효한 가치가 목도된다. 황창배의 표현주의적 화면 안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경계 없음의 현대성을 만난다. 윤광조의 작품 앞에서 이것을 분청사기라 일컫는 것도 그릇이라 일컫는 것도 맞지 않는 그저 현대 작품 그것을 보게 된다. 전통은 그렇게 강조되는 민족성과는 다른 것으로 이들의 작품 안에서 삶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내는 힘의 정신으로 그리고 가치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조은정(기획자)


여기서 말하는 ‘전통’이란 물론, 스승의 제작 기술이나 연희 방식을 전수받아 똑같은 재료로 재생해내는 ‘인간문화재’의 기술적 전승과는 다른 개념이다. 붓으로 종이 위에 그리되, 무엇을 그려낼 것인지, 분청 유약을 발라 자기를 구워내되 작가가 생각하는 무엇을 담을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당대의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며 함께하는 종류의 것이다. 전통이라는 뼈대에 현대의 고민과 세계관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입히려고 노력했던 작가들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가장 나이가 어리지만 제일 먼저 세상을 뜬 황창배 작가(1947~2001)의 1990년대 작품은 화선지나 순지를 썼다 뿐이지 ‘한국화’라는 일반적인 카테고리에 묶어 둘 수 없는 표현법이나 내용을 담고 있다. 1990년 작 <무제>는 칠판에 판서하듯 흘려쓴 글씨를 화면에 노출시켰다. 한국의 대중들이 ‘한국화’라는 선입견 아래 가둬놨던 틀을 모두 깨버린 표현법이다.


이왈종 작가 특유의 채도높은 초록과 빨강, 노랑이 어우러진 <제주 생활의 중도> 시리즈는 표구보다는 아크릴 커버를 씌워야 할 것 같은데 그림 안에 등장하는 구성요소를 보면 ‘안분지족’의 세계관을 다룬 옛 그림과 묘하게 맥이 닿아있다. 그가 다루는 밝고 화사한 ‘제주 생활의 중도’ 속에 들어있는 것은 ‘쾌적=쾌락의 극대화’가 아니다. 작가(남성)의 입장에서 보는 삶의 균형이란 모습이 담담하게 들어가 있다.


기획자 조은정은 그가 화면에 담는 것이 “관조적 대상으로서 이해되는 공간이 아닌, 실제 삶이 담긴 공간으로서의 산수는 동시대의 실존을 담은 것이다.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가르지 않고 삶의 모습이 곧 예술인 것이며 이왈종의 화면이며 삶과 예술을 일치시킨 전통의 사상 아래 있다”고 말했다.


이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 중 박대성 작가와 윤광조 작가는 경주에 작업실을 두고 경주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다.

박대성에 대해 조은정 기획자는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60년대 이후 한국화단에서 ‘독학’이 강조되는 이례적이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실경 산수의 독보적 존재’로 평가되며 그의 호를 딴 ‘소산화풍’이란 이름이 나올 정도로 동시대 미술의 주요 담론인 전통의 계승 문제에 일정한 성과를 이룬 작가”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는 정물화를 연상시키는 <큰 병풍>(2018년 작) 시리즈 석 점과 <산고수장>(2017)과 <금수강산>(2017)이란 글자를 적은 작품도 걸렸다.

큰 병풍 시리즈에 대해 박 작가는 “동서양화를 넘나들게 그려보고 싶었다. 유화에서 정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데 한국화도 얼마든지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글자 작품에 대해서는 “글자를 쓸 때 서書에서 오는 구성, 나름대로의 서예가 갖는 필筆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의 글자체를 그대로 쓰지 않고 내 스스로의 체를 개발하고 있다”며 현재형의 작업 방향을 들려줬다.


분청만 파고 들고 있는 윤광조 작가가 경기도 광주에 있던 작업실을 경주로 옮긴 것은 1994년이다. 이번 전시에 그는 <음율>(1987), <정定>(1997), <음율>(2004), <혼돈>(2006), <산동山動>(2015), <산동山動>(2017) 등 지난 30여 년 동안 만든 작품 6점을 출품했다. 특히 경주 시대 이후 주요한 포인트가 됐던 작품은 상징적인 작품은 다 등장했다.

그의 작품 중 혼돈 시리즈는 대략 2015년까지 등장한다. 이 시리즈에는 도자의 모양을 나무의 가지처럼 보이는 형태로 발전시킨 작업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혼돈이란 개념을 작품으로 표현하다 보니 자꾸만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5~6년 하다보니, 혼돈이 새로운 생명의 잉태 이전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돈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게 됐다.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 그게 나무(를 닮은 표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2015년 이후 그는 ‘산동山動’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분청’으로 각인되며 성공한 작가로 인식되고 있지만 윤광조 작가는 한국 미술계에서 ‘현대 도예’라는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여전히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죽을 때까지 혼자 작업하는 작가(전업 작가)로 남고 싶다. 다른 장르에 비해 도예는 작가 대접 받기가 힘들다. 그런데 또 도자기 공장 사장은 작가 대접을 받기도 한다. 문화센터에서 몇 달 배워서 작가 노릇하는 경우도 있다. 진짜 작업하는 작가가 발붙일 곳이 없다. 나하나 고생하면 뭔가 건더기가 생길 것 같다. ‘윤광조, 평생 혼자 작업하던 작가’란 인식을 남기면 도예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것 같다. 나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공장 차릴까 생각도 많이 했지만 용케 버티고 살아남았다.”


현대 도예의 간판인 그는 올 초에도 호림박물관의 <귀얄과 덤벙>전에 초대받아 한 섹션을 차지할 정도의 대표작가지만 여전히 이런 당대의 인식과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분청에만 매달릴까.

“나는 철저하게 에너지를 집중하자는 쪽이다. 어릴 때 확대경으로 종이 태우기 실험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 초점을 맞춰야 종이가 탄다.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 분청도 파다보면 계속 새로운 세계가 나온다. 집중해야 한다. 초점. 확대경으로 종이태우는 것처럼 집중해야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공통적으로 필법(방법론)이 과거의 누구와 닮았느니 하는 ‘유전자 감식’ 결과로는 전통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작가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방법론과 세계관을 참고하고 당대의 고민과 대응을 엮어서 내일로 이어질 우리 시대의 유산(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에 묻고’ 답을 구하는 작가들이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9.03.26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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