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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 - 시각과 청각, 느리게 걷기를 통해 경험하는 명상적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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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창령사 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장 소: 국립중앙박물 상설전시관
기 간: 2019.4.29 ~ 6.13
글/ 김진녕

전시장에는 전시마다 으레 등장하는 작품 진열대가 없었다. 사각 좌대 위에 석조 조각상이 도열해 있을 뿐이다. 좌대는 성인 가슴께 정도 높이고 그 위에는  30~40cm크기의 석조 조각상이 올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 6월13일)전 풍경이다.
2001년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2리 1075번지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석조 나한상 88점의 서울 나들이 현장이다. 주최측은 이번 전시에 ‘과거의 문화유산과 현대미술의 컬래버레이션’, ‘창령사 나한의 서울 첫 나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대고려전> 등에서 현대 시각예술 작가의 설치 작품과 전시 작품의 컬래버레이션을 부분적으로 적용하기도 했는데, 이번 전시에선 전시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2부에서 김승영 작가의 <도시 속의 나한>이란 설치작품을 통해 창령사 나한을 경험하도록 기획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기법으로 현대작품과의 믹스앤매치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좌대 위에 올려진 나한상으로 불리는 석조 인물 조각은 부드럽고 공격적이지 않은 여러 표정을 보여준다. 좌대를 비추는 조명은 석공이 돌 속에서 건져올린 엷은 미소를 선명하게 증폭시킨다.
딱히 다른 설명을 달 수도 없고, 달 필요도 없는 전시물이다.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백나한 사이를 관람하는 것은 문명과 시대에 대한 되새김질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자문을 유도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된 나한상은 화강암이란 가공하기 까다로운 외피를 입고 있으면서도, 크기도 크지 않음에도 모두 제각기 모두 다른 생김새에 다른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미묘한 디테일의 변주는 글로 옮길 수 없는 감흥이다.
이렇게 솜씨 좋게 돌 속에서 오백명의 나한을 끄집어낸 장인은 어느 시대 사람일까.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고려시대다.
창령사 터 발굴보고서에는 창령사가 12세기쯤(고려시대)에 세워지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에 문을 닫은 절집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백나한상은 당연히 신앙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고려사에는 서기 923년(태조 6) 태조가 양(梁)나라에 보냈던 사신 윤질(尹質)이 오백나한상을 가지고 귀국하자 해주 숭산사(崇山寺)에 봉안한 이래로 =고려왕실에서 나한재(羅漢齋)를 자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1053년(문종 7) 9월에 문종이 신광사(神光寺)에서 나한재를 베푼 것을 비롯해 1262년(원종 3)과 1269년에는 원종이 보제사에서 오백나한재를 베푸는 등 왕실에서 주관한 것만도 28회였다.
고려의 나한재는 주로 비오기를 기원(기우제)하거나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는 등의 목적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창령사 터 발굴조사 팀은 창령사도 기우제와 관련된 절임을 밝혀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문헌에 창령사에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을 찾아냈고, 창령사 터 바로 옆에 여근석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는 창령사의 오백나한상이 고려시대의 나한신앙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불상의 풍부한 표정은 고려시대 철불에서도 확인되는 고려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발굴 보고서에는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의 조성시기를 ‘여말 선초’로 표기하고 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이고, 아라한은 범어 아르한(arhan)의 음역이다. 아라한을 응공(應供)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 ‘번뇌를 끊고 불생(不生)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 ‘진리에 상응하는 이’로 모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아라한은 부처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 뒤 부처와 아라한이 구별돼, 아라한은 부처의 제자가 도달하는 최고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게 됐다.

돌의 형상을 한 깨달은 현자를 만나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이기도 한 이번 전시에서 사소한 흠을 잡자면 명상적이라는 말에는 감정의 강요는 없을텐데 특정 감정에 도달하도록 지시어를 남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점이다. 

1부의 ‘성속을 넘나드는 나한의 얼굴’이나 1부 ‘일상 속 성찰의 나한’이나 요즘 유행어로 ‘TMI’(Too Much Information)가 넘쳐났다.
1부에서 나한상 사이를 거닐면 명상적인 행선(行禪)을 경험하기엔 좌대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았다. 주최측에서도 동시 입장자 수를 제한해 관람 분위기를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바닥에 깐 전돌마다 글자를 새기고 그것도 주목해주길 바라는 의도로 바닥 벽돌 사이에 돌출형으로 끼워넣은 조명은 관람객의 발길에 툭툭 채이며 빠지기 일수고 그때마다 관객도 비틀거렸다. 전체 조명이 어두워서 전돌로 관람자의 시각을 유도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설치한 조명일텐데, 다정이 병이 된 경우다. 바닥에 글자가 있다고 더 명상적인 경험을 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2부에서 깨달은 이를 형상화한 나한상에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배당해 네 가지 카테고리로 진열장 안에 나한상을 ‘가둔 것’도 ‘관심법’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보였다. 오백나한상이 여말 선초의 카톡 이모티콘 대용품이었다는 연구가 나온다면 모를까. 

1부 전시장에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있다면 2부 전시장에는 들릴듯 말듯 도시의 생활 소음을 낮게 깔아놓았다. 산처럼 쌓아올린 스피커 더미는 도시의 홍진을 떠올리게 하고 그 사이에 나한상을 배치한 것은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어떤 작품은 너무 높아서 특별한 시각적 경험보다는 석조 오브제를 이용한 인테리어 쇼 같은 느낌을 줬다. 무엇보다도 전시장 크기에 비해 설치 작품이 너무 컸다.
   
창령사 터가 자리잡고 있는 해발 570m 초로봉의 산명이 석선산(石船山)이라고 한다. 돌배를 타고 500년의 시간을 건너온 현자 88인의 미소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만나보는 것은, 사소한 흠에도 크게 영향받지 않은 ‘명상적인 전시 경험’이기도 하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06.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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