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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두번째 픽, 개념미술가 바바라 크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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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표지나 광고 포스터 등 현대인에게 익숙한 시각 이미지를 통해 아이덴티티를 구축

전시명 : Barbara Kruger : FOREVER
장 소 :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기 간 : 2019.6.27-12.29
글/ 김진녕

한국에선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45~)는 북미나 유럽에선 널리 알려진 개념 미술가다.


바바라 크루거란 이름은 몰라도 망점이 보일 정도로 크게 확대된 이미지의 흑백 포스터에 ‘Your body is battle ground’ 또는 ‘We don’t need another hero’가 빨갛고 검은 글씨로 쓰여진 포스터, 그것도 아니라면 1996년 발매된 레이지어게인스트더머신(RATM)의 뮤직비디오 'Bulls on parade'에 들어간 슬로건과 몇몇 이미지가 익숙할 수도 있다. 그 뮤직 비디오에 삽입된 해골 이미지를 유니클로와 협업해 티셔츠로도 발매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놓인 아카이브에서도 확인되듯 크루거는 다양한 종류의 잡지 디자인 작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이런 여러 사례는 1960년대 말부터 작업 활동을 시작한 74세의 바바라 크루거는 지금도 동시대의 세계 여러곳의 다양한 세대와 교류하고 있는 현역 작가임을 드러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에서 바바라 크루거의 아시아 첫 개인전 <바바라 크루거 : 포에버Barbara Kruger:FOREVER>(~12.29)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 측에선 크로거를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한 광고 형식의 작업으로 잘알려져 있는 작가로 눈길을 사로잡는 상징적 서체와 간결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는 동시대 사회의 메커니즘과 대중매체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권력, 욕망, 소비주의, 젠더, 계급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APMA의 크루거 전에는 그의 1980년대 주요 작품부터 최신 작업, 장소특정적 비닐 시트지 설치와 4채널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작업 유형을 아우르며 40여 년에 걸친 일관되고 독창적인 작가의 작업 양식을 살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한국 전시의 특징은 한국 관람객을 위해 한글 폰트를 사용한 작품 두 점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미술관 로비에 걸린 untitled(충분하면 만족하라)와 전시장 내부에 걸린 untitled(제발웃어제발울어)가 그것이다. ‘충분하면 만족하라’는 영문 버전과 한글 버전이 미술관 로비에 등을 맞대고 걸려있어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017년 베를린 스푸르스 매저스 갤러리에서 첫공개된 untiled(FOREVER)(2017)다. 엄청나게 큰 공간을 글자로만 채운 이 작품은 그 규모 때문에 임팩트가 배가된다. 미술관 측에선 이 작업이 ‘건축과 공간에 대한 크루거의 오랜 관심을 집약하고 있으며 작품의 텍스트 속을 거닐며 다양한 질문과 사유가 촉발되는 능동적인 관람 태도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소개했다. 크루거는 베를린 스푸르스 매저스에 설치했을 때보다 규모를 더 키워서 재디자인했다. 이 작품의 소유주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바바라 크루거의 이름을 대중에게 익숙하게 만들던 시기인 1980년대의 흑백 포스터 작업도 수십점이 등장했다. 이번 전시가 바바라 크루거의 회고전은 아니지만 그의 작업 중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기에 관람객이 그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셈이다. 80년대의 작업을 보면 그가 개념미술을 하지만 대중적이고 스트레이트한 화법을 구사하는 작가라는 것을 쉬이 알아볼 수 있다. 사실 이건 전시장 첫머리에 마련된 아카이브 공간에서 틀어주는 그의 인터뷰 영상에 바바라 스스로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Part of Discourse란 제목이 붙은 동영상 속에서 바바라 크루거가 명확하게 자신과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을 만드는 방식은 무수히 많지만 일반 대중과 보다 친밀하게 소통되는 방식이 있다. 어렸을 때 갤러리 전시를 보러 가서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작품은 감상에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나는 내 작업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던 관객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누구의 가치인가?’ 우리가 가끔씩 묻는 질문들이고 이것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생각들이다. 그리고 묻지 않지만 물어봐야만 하는 질문들이다.”

“청구서 발행하는 업무로 일을 시작했고 그 다음으로 전화교환원 일을 했다.
뉴어크, 그리고 뉴욕에 살다 보면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지 않는다고 해도 지하철이든 어디서든 마주치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콘데 나스트'라는 잡지사에 일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차석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잡지를 들여다보게끔 만들지 못하면 해고를 당하는 분위기였다.”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오려붙인 이미지와 마커로 작업해도 아티스트라 할 수 있을까?,라고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다.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을 이용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나는 산세리프 san serif 폰트의 명료함을 선호한다. 빨간 색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컬러 인쇄로 작업을 할 비용이 충분치 못했다.”

뉴어크 중하류층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았고, 잡지 일을 통해 대중의 눈높이와 소통의 중요성을 해고라는 위협 아래에서 몸으로 체득한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 미술을 교실에서 배운 게 아니라 당대 대중과 호흡하며 배운 아티스트인 것이다. 그가 왜 빨간색이나 검은색 등 강렬한 색감 대비와 단순한 문구, 단박에 내용을 알 수 있는 스트레이트함을 지니고 있는지를 10분 길이 정도의 비디오 클립에서 다 이야기하고 있다.


거리에서 팔리는 타블로이드지의 커버 디자인이나 헤드라인의 직설적인 문구와도 겨룰 만한 강렬한 호소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게 곧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가 당대의 이슈가 되는 낙태문제나 소비중독에 빠져버린 현대 사회의 이슈를 빠르게 잡아내는 저널리스트의 감각도 갖추고 있기는 하다. 

전시는 바바라 크루거가 권력이나 시스템의 통제, 자본주의에 왜곡되는 욕망과 성 역할의 고정 등에 대한 의문을 자신의 작품에 매끄럽게 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쉬운 언어로. 바바라 크루거가 현대 미국에서 왜 유명해졌는지, 크루거가 미국 사회와 어떻게 소통하며 작가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9.09.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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