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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화미술을 종횡무진하는 칼춤 - 검여 유희강 기증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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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검여 유희강 선생 기증특별전 <검무 Black Wave>
장 소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기 간 : 2019.5.31 ~ 9.27
글 /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


‘추사(秋史) 이후 검여(劍如)’ 는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다. 한국 서단에서 글씨 잘 쓰기로는 20세기 100년간 기라성 같은 작가가 무수히 명멸했다. 하지만 왜 검여 유희강을 두고 추사 김정희를 이야기할까.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서(書)의 현대성이다.

이번 기증전시를 총괄한 김대식 학예실장은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준 <정게(靜偈)>작품 앞에서 “ ‘나무아미타불’ 은 탑이다”고 말한다. 제일 하단 불(佛)자와 최상단의 남(南)자와 비교해 보면 설명이 필요없이 바로 눈으로 읽힌다. 그래서 추사의 <계산무진谿山無盡>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무(無)’자와 ‘진(盡)’자를 빌딩을 구축하듯 무수한 획으로 쌓았다. 먼 산을 보듯 ‘산(山)’은 하단을 텅 비웠고, 계(谿)자는 밧줄을 엮듯 꼬았다. 바로 현대 추상미술과 직통하는 공간경영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여기에 더하여 법당에 다가가면 갈수록 점점 커지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 까지 들린다.‘고요함[靜]을 갈구하는 간절한 기도다. 


이런 공감각(共感覺)적인 표현은 글씨를 잘 쓰고 못쓰고를 넘어선 지점에 있다. 바로 추사의 괴(怪)의 미학이 현현되는 진원지이기도 하다. 왕법(王法)이 전형의 아름다움이라면 추사체(秋史體)는 그 전형을 전복시킨 비첩혼융의 결정체다. 서구미학에서 고전과 현대의 타협할 수 없는 분기점은 추(醜)다. 칸딘스키가 소리를 색으로, 즉 청각언어를 시각언어로 추상 환치해낸 경우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추사체의 난해함과 이해의 명료함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냥 맨눈에 보이는 대로 쓰기의 잘잘못으로는 해독되지 않는다. 

사실 20세기 들어와서 우리는 서(書)를 미술과 완전히 별개로 간주해왔다. 지금은 그 분리의 극단에 서있다. 더 이상 미술도 예술도 아닌 것이 되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식민지시대 서구미술의 잣대에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추사 이후 우리 한국의 서(書)는 현대사회 미감과 대화가 단절된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모전의 상 따기 도구 정도로 전락한 것이다. ‘서언어(書言語)’ 문맹의 폐해는 비단 한국 서예 안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 미술/예술의 정체성, 세계화 문제와 직결된다. 오늘 우리가 검여를 추사와 맞비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150여 년 전 추사가 전통서화를 종결짓고 현대 서화미술의 문을 열어젖혔듯이 검여는 이렇게 붓 춤으로 검무로 홀로 현대미술과 맞짱뜨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묵희墨戱 시리즈


검여의 서(書)는 서(書)를 넘어서고 있다.  쓰기와 그리기가 하나로 직통하고 있다. 검여의 서화일체의 필획(筆劃)은 시공을 초월한다. 반구대 암각화 호랑이 사슴에서부터 <묵희(墨戱) 시리즈>까지 직통하고 있다. 앞서 본 장법(章法)의 혁명을 통한 파천황(破天荒)의 공간 경영도 그렇지만 그 일차적 토대가 되는 필획(筆劃) 문제에 가서는 더더욱 그렇다.



예컨대 추사의 <시경(詩境)>을 다시 해행과 전서로 해석한 검여의 <시경(詩境)>을 보자. 정기용과 최순우의 인연이 얽혀있는 대자와 낙관글씨의 최소단위인 필획은 그냥 선(線)/ 라인이 아니다. 글자 구조 이전에 천변만화하는 필획(筆劃)자체가 스트록으로서 생생하게 말을 하고 있다. 마치 철판을 뒤집듯 필획의 노래는 추사의 <불이선란도> 제시(題詩)를 방불케 한다. 여기서 필자의 머릿속에서 소전, 일중, 여초, 원곡, 소암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필획이 지나갔다.


이러한 검여 서(書)의 완결판은  34m 초대형걸작 <관서악부(關西樂府)>다. 영조 때 신광수(申光洙)가 지은 108수의 연작으로 친구 채제공의 평양감사 행적 노래를 표암 강세황이 서(書)한 원작과 검여 서(書)가 200년의 시공을 넘나들며 대적하고 있다. 대동강의 산천경계와 뱃노래, 평양 저잣거리 기방의 주흥 속에 묻힌 충효절협(忠孝節俠) 변새군려(邊塞軍旅)의 역사는 벌써 통일의 그리움으로 귀에 쟁쟁 눈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통일은 문무(文武)가 겸비(兼備)될 때 가능할 터이다. 그래서 신광수는 채제공에게 이 악부를 선가수주(禪家數珠)로 삼아 술자리에서 한 번 노래하고 한 번 춤출 때마다 생각하고 자성할 것을 당부하였는지도 모른다. (끝)


글/이동국(서울서예박물관) 관리자
업데이트 2019.09.1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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