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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혜규의 서기 2000년, 끊임없이 과거를 양산하고 있는 ‘현재’에 대한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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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양혜규 : 서기 2000년이 오면
장 소 : 국제갤러리
기 간 : 2019.9.3~11.17
글/ 김진녕

-시간적 경계와 지역적 경계, 인식의 경계에 대한 탐구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 양혜규(b.1971)의 <서기 2000년이 오면>전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015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전시 이후 4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이고 국내에서 열리는 네번째 개인전이다. 지난해 독일근대미술협회가 주관하는 볼프강한 상을 수상하고 쾰른의 루트비히미술관에서 <도착예정시간>이라는 대규모 회고전을 치를 정도로 유럽 미술계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작가 양혜규의 현재형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전시다.



전시장 입구에는 양혜규 양돌규 양솔규가 1977년에 함께 그린 <보물선>이 걸려있다. 양혜규 작가가 7살 때 동생과 함께 그린 그림이다. 전시장 입구의 스피커에서는 가수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이 오면>(1982년 발표)이 흘러나오고 있다. 전시명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이 노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시장 들머리에 이 두 개의 모티브를 걸어놓고 들려주고 하는 것은 이 전시를 풀어가는 어떤 맥락이 숨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서기 2000년이 오면>의 가사는 이렇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
우리는 로켓트 타고 멀리 저 별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그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 온 세상을 수 놓으리
사바(사바) 사바(사바) 사바 그날이 오면은
사바(사바) 사바(사바) 사바 우리는 행복해요
다가오는 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사바(사바) 사바(사바) 사바 행복한 그날을
사바(사바) 사바(사바) 사바 우리는 기다려
서기 2000년이 오면 더욱더 편리한 시대
그대의 즐거운 모습 나는 그 어디서나 보리라
그때는 가난도 없고 저마다 행복한 마음
우리가 부르는 노래 소리 온 세상을 수 놓으리
사바(사바) 사바(사바)…

서기 2000년이 오기 18년 전 발표된 노래에는 외환 위기의 징후도, Y2K로 상징되는 전산화 오류로 인한 시스템 셧다운에 대한 비관도 없다. 노래 속의 ‘서기 2000년’은 은하수와 달속의 토끼 전설처럼 흠잡을데 없는 유토피아가 땅 위에 구현될 것이란 낙관이 넘친다.

양혜규도 전시회 간담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노래에서 2000년을 묘사한 모습이 황당하지 않나요. 우리가 사는 현재 2019년은 과거와 크게 다를 게 없는데 가사를 살펴보면, 2000년을 먼 미래라고 생각했구나 싶더라고요. 흥미로운 부분은 노래 속 가사를 보면 많은 시제가 공존해요. 1982년, 1982년에서 바라보는 2000년, 현재 그리고 미래.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과거까지. 이번 전시는 지금의 시점을 돌아보게 하죠. 제 관심사를 많이 풀어놓았어요.”

‘전시장에 풀어놓았다’는 그의 현재형 관심사는 어떤 것일까.


전시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국제갤러리 전시장 3관으로 기둥없는 박스형 공간이다. 이곳에 <솔 르윗 동차> 연작 2점, 방울 조각 신작 4점, 공간 전면 벽지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작가의 블라인드 작업을 솔 르윗의 작업과 결합시킨 <솔 르윗 뒤집기>(2015-) 연작을 좀 더 작은 규모로, 이동가능한 실내용 설치작품으로 만든 두 점의 <솔 르윗 동차>나 <소리 나는 조각>(2013-) 시리즈를 좀 더 매끄럽게 다듬은 네 점의 <소리 나는 운동>(2019)은 기존 작업의 업데이트 버전으로 이해된다.

<보물선>을 빼고는 모두 2018~2019년 작으로 그의 최근작이다. 여기에 향기나는 짐볼 10개가 전시 공간 이곳 저곳에 배치돼 있고, 전시장 내부 벽면을 채운 래핑 작품 <배양과 소진>(2018)에 구현된 마늘이나 고추 이미지를 훑고 지나가는 동그란 조명, 전시장 바닥 밑에 아스라히 깔리는 연무, 벽과 바닥의 부분 부분에 시공된 홀로그램 시트 등 시각과 청각, 후각, 상상의 냄새를 자극하는 요소가 전시장 안을 채우고 있다. 방울조각 4점은 흔들어서 움직임을 얻는 작품이라 촉각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관객에겐 만지는 게 허용되지 않고 전시장 안내 요원이 주기적으로 흔들어준다.

한국이라는 전시 장소를 감안하면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과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대기를 주관적 관점으로 교차 편집한 한글 텍스트 작품인 <융합된 분산의 연대기>(2018)를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은 A4 용지 크기에 글로만 이어진 네 쪽자리 리플렛이라 전시장 안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작품이다.

양혜규 방식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결 고리에 대한 탐구가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융합된 분산의 연대기- 뒤라스와 윤>는 그 한 사례로서 기능한다.


작가는 동시대에 유럽의 파리와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유럽 최고로 꼽혔던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와 윤이상(1917~1995)의 연대기를 1910년부터 2018년까지 텍스트로 정리했다. 사건의 선정과 배열은 물론 작가의 선택과 안목이다.

양혜규의 교차 텍스트 속에서 뒤라스는 스스로 공산주의자임을 선언하고 알제리 독립운동을 지지했음에도 프랑스의 시스템에서 추방되지 않았다. 반면 윤이상은 1967년 서베를린에서 한국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된 뒤 한국 법원에서 간첩죄를 선고받고 2년 간 복역한 뒤 유럽의 학계와 문화예술계의 인사들이 구명운동을 한 끝에 1969년 석방됐다. 서베를린으로 돌아온 윤이상은 1971년 서독 시민권을 얻었다. 두 사람의 연대기는 2018년 윤이상이 타계한지 23년만에 그의 유해가 베를린에서 고향 통영에 귀향하는 것으로 끝난다. 20세기 중반, 유럽 문학계와 음악계의 중심인물이었던 두 사람 중, 뒤라스는 시스템 내에서 끝없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고 그것이 국가라는 시스템 안에서 수용되고 문제 해결을 도출했다. 반면 윤이상은 ‘평화’와 ‘화해’를 내세운 작품을 냈음에도 ‘이적 행위자’와 ‘간첩’으로 몰려 경계 밖으로 추방됐고 다른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야했다. 60년대의 독일과 한국은 물리적인 시간만 같았다. 독일은 현대, 한국은 국가 주도로 근대에서 현대로 진입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사회주의식 경제 발전을 추진하던 전혀 다른 시대의 나라였고, 윤이상은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살아야 했다. 지금도 많은 지구촌의 사람들이 이런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제도적 폭력의 기록이기도 한 <뒤라스와 윤>, 국가폭력을 앞세운 국민총화의 시대에 7살짜리가 꿈꿨던 <보물선>, 광주학살이 일어나고 국풍과 프로야구, 컬러TV가 송출되기 시작한 시대에 나온 ‘서기 2000년이 오면’은 2019년 9월 ‘과거의 시간’으로 국제갤러리 제3전시장 안에 양혜규가 모아놨다. 양혜규는 자신의 기억과 기준으로 이 시간대가 상징하는 여러 충돌과 갈등을 시각화한 듯 보인다.

전시 작품 중에서 가장 크게 자리잡은 것은 전시장 내부 벽면에 벽지처럼 처리된 <배양과 소진>이다. 이 작품은 2018년 프랑스 몽펠리에 라 파나세 현대예술센터에서 첫 공개한 작품으로 독일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누엘 래더(Manuel Raeder)와의 협업 작품이다.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 지역을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시각화한 이 작품은 양파와 마늘, 고추, 수술 로봇, 짚풀, 무지개와 번개 등 과거와 현대의 첨단 과학을 상징하는듯한 기물의 이미지가 프린트돼 있다.


양파와 마늘, 고추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낯익다. 이 세 요소가 섞이면 김치가 된다. 김치는 한국인임을 분별/차별하는 강력한 후각 요소다. 물론 한국인도 김치 대신 고기나 치즈류를 상복하는 종족이나 남방계 향채 상복 종족에 대한 구별/차별도 엄격하다.

지역에 따라서 강력한 차별기호로 쓰이기도 하는 향신채 이미지를 왜 작가는 고른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갤러리측은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Occitania) 지역은 이교도적 전승문화의 흔적과 근현대 이후 융성한 교육, 하이테크 산업 문화가 공존한다. 이 지역에 대한 일차적 조사를 바탕으로 지역적 경계를 넘어 과거와 현재, 기술과 문화, 자연과 문명이 융합된 <배양과 소진>은 이번 전시 공간에서도 유기적이고도 입체적인 환경을 구축하며 문화와 민속에 대한 기존 분류법에 반하는 양혜규의 관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여기에 21세기 초반의 유럽은 정치적인 억압은 없는 편이지만 대신 ‘난민의 유입’이라는 인종/부족적인 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어른거린다.


작가는 오프닝 간담회에서 이런 모든 궁금증에 대해 "작품이 무슨 뜻이냐, 관람객은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신비로운 건 신비롭게 남겨놔야 한다. 시간이 지나가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쌓여서 보일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캉거리는 짐볼에 앉아서 흔들리는 소리 조각을 오감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도, 마늘과 양파와 고추 이미지를 프린팅한 벽지를 보면서 머리 속에서 김치 냄새를 합성할 수도, 차별과 구별, 폭력과 이성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전시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19.10.1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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