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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큐레이터와의 대화] 이동국 :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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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연행 이후 210년 만에 베이징을 찾은 추사가 환대받은 이유

글/ 김진녕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전(~3월15일)이 열리고 있다.


같은 제목으로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의 귀국전이다. 1809년 연행네 나섰던 추사는 연행에서 옹방강과 완원을 통해 비파의 금석학을 배우고 뒷날 그만의 추사체를 확립했다. 2019년 추사의 유묵은 현대 중국관람객과 ‘대화’를 했고 이제 돌아와 현대 한국 관객과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서울전 전시작품과 베이징 전시 작품이 같나?
베이징전이나 서울전이나 기본은 학예일치, 해동통유, 유희삼매 등 세 섹션이 주가 된다.
다만 베이징전은 ‘중국과의 대화’였다면, 한국 전시는 ‘현대와의 대화’ 섹션을 하나 만들었다. 추사라는 존재가 과거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 우리 미래, 한국 예술, 서화 미술의 모델이다.
이 섹션에 소개되고 있는 김종영 윤형근 등 한국 현대미술에서 독자적 자기세계를 열었던 작가의 토대가 추사의 정신세계나 조형의식을 직접적으로 본받고 새롭게 해석해낸 작가다.
김충현이나 손재형 등 전통 서단에 속한 인물 역시 추사의 전통이나 조형의식, 공간 경영의 현대성에서 뚜렸하게 영향을 받고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전통 서단에서 배제되고, 미술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자기 세계를 열었던 사람, 김광업이나 최규명 같은 작가도 포함시켰다.


- 윤형근이나 김종영은 추사와 어떻게 이어지나.
윤형근이나 김종영이 추사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데, 윤형근이나 김종영은 그 스스로가 추사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밝혔다. “내 조각의 토대가 추사의 글씨에서 나왔다, 세잔의 원통건축, 기하학적 표현, 추사의 글씨에서 큐비즘이 연상된다”고 김종영은 말했다. 평면이든 입체든 원리는 같은 것. 김종영의 초각은 서書의 3차원적 해석이고, 윤형근의 키워드는 획도 아니고 면도 아닌 획면 추상이다. 그게 추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윤형근은 작업실에 늘 걸려있던 추사가 말년에 쓴 <소루유아정 대지임인망 小樓惟我靜 大地任人忙>이란 현판을 걸어놓고 작업했다. 윤형근이 추사를 사숙한 역사는 길다.
윤형근은 조형적으로 정신적으로 추사에 이어져있다. 윤형근이 70~80년대에 공권력으로부터 고통을 많이 당했다. 윤형근은 그런 실존적 고민을 획면 추상에 담아냈다. 그런 맥락에서 전통과 현대는 단절된 게 아니다. 윤형근이나 김종영 같은 작가를 통해 이어져있다. 현대는 전통없이는 안 된다.


그는 현대 작가를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 추사가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를 예로 들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권돈인이 경기도 광주 퇴촌(退村)에 집을 짓자 추사는 ‘退村’이라는 편액을 써서 보내고 이를 편지로 남겼다.

"退村. 두 큰 예자(隸字)를 팔을 억지로 놀려 써서 바치오니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필획의 사이에 굴신(屈伸)의 뜻을 붙였으니, 이해하여 받아들여 주시고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일반적인 사소한 문자일지라도 군자가 서로 주고 보답하는 데에나 친구 사이에 서로 경계를 하는 데에 모두가 반드시 경계를 붙이는 것이 있었으니, 옛사람들은 원래 맹목적으로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바로 하나의 노리개를 완상하는 일이며 하나의 천박한 선생(俗師), 글자쟁이(字匠)에 불과한 것이니 어찌 억지로 꾸미겠습니까? (왕희지가 글씨 하나와 거위 한 마리를 바꾸었다는데) 비록 거위 백 마리와 바꾼다 하더라도 또한 속서(俗書)일 뿐입니다. 제 글씨가 매우 졸렬하기만 하더니 이제야 속서는 면했음을 알겠습니다."(전집 권3, 권돈인에게 제27신)

이동국은 “추사가 ‘필획지간의 굴신 뜻을 담아낸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요즘 현대미술 언어로 말하면 ‘추상 표현주의’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추사전에 대한 중국 사람의 반응은 어땠나.
전시의 키워드는 ‘대화’이고, 베이징전은 ‘중국과의 대화’였다.
추사 중국전을 한다고 했을 때, 국내에선 추사를 중국인이 알까 싶어서 걱정을 많이 하더라. 그런데 가서 펼쳐놓아 보니 중국 사람이 추사를 훨씬 더 잘아보더라.
중국은 전통이 강한 측면이 있다. 여전히 왕희지류가 중심에 있다. 그럼에도 추사야말로 현대 중국 서예가 어디로 가야 될지를 150년 전에 제시해놓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중국국가미술관 부관장이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고 우궈바오 같은 연구자도 “추사는 왕희지와 같은 성인”이라고 했다. 서법과 관련한 교과서(경전), 역사에 남을 서법의 경전을 남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인이 인사치레로 이런 말을 할 이유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 베이징에서는 어떤 얘기를 많이 들었나.
‘왜 이런 작가를 이제야 알았느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당신들 잘못 아니다. 잘잘못 따질 일도 아니다. 우리 역시 식민, 남북분단으로 힘들었고, 중국도 공산화 등 큰 일을 겪었다. 한국과 중국은 친구다, 역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은 많이 했지만, 실제로 마음과 마음으로 필묵을 갖고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잘못도, 당신들 잘못도 아니다. 지난 백년 동안 (중국과 한국이)문화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추사를 통해서 일시에 백 년의 간극을 허문 계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210년 만에 추사가 중국에 간 것이다. 그의 연행이 1809년이고 베이징전이 2019년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역시 추사구나, 추사에 관한한 중국 사람의 인식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현대 서예가 고민하는 문제를 추사는 이미 그때 제시했다.
추사가 전통 서예를 넘어서 현대서예의 문을 열었다. 그때 ‘서書’는 서화 미술, 예술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서예와 미술을 나눠서 본다. 우리가 지금 추사를 서예가로만 좁혀서 보는데, 그런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 한국 전시 키워드로 ‘괴怪’를 내세웠다.
우리 시대에 추사만큼 자주 소환되는 작가가 없다. 추사전이 50회가 넘는다. 자주 소환된다는 것은 현대와 호흡한다는 것이다. 다만 왜 추사가 현대와 어떻게 호흡하는지 키워드를 못찾아낼 뿐이다.
추사의 괴는 그냥 괴상하고 이상한 게 아니다. 추사의 괴는 가장 전통적인 것이다. 추사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이 괴였다. 그 지점을 보자는 의도다.
서구미학에서 추醜도 미가 되는 게 고전주의 시대와 현대를 구분하는 기준선 중 하나다. 이건 추사가 이미 실행에 옮긴 것이다. 왕희지라고 하는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추사가 괴로 뒤집었다. 그게 현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제대로 보자는 의미에서 괴를 꼽고 전시를 꾸몄다.




- 이번 전시에 비판적인 쪽에선 <계산무진 谿山無盡>의 진위를 문제삼는다.
추사와 관련한 크고 작은 전시가 50여 회 있었지만, 늘 관심사는 진위 여부나, 최초 공개 여부, 작품값이 얼마냐 등으로 쏠렸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런 쪽으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
추사의 전 생애에 걸쳐 그가 남긴 다양한 필법을 유물을 통해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는 드물었다. 지금 당장 가짜냐 진짜냐를 따지기 전에 일단 실물을 먼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실사없이 구시는 없다.
계산무진의 경우, 작품에 추사의 도장과 수장인의 도장 색깔이 다르다며 진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김용진의 수장인은 후낙이니 당연히 색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김용진은 추사가 글씨를 써준 계산 김수근의 증손자다. 장동 김씨 4대가 이어오면서 대대로 지켜온 진장품이다. 그런데 도장 색깔이 다르다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

- <계산무진>(간송미술관 소장품)을 서울 전시에서 무척 강조했다.
계산무진은 추사가 왜 현대냐를 이야기하는 결정적인 작품이다. 계(谿)의 谷 부분을 360도로 돌아가듯 쓴 것, 무진無盡을 상하로 배열하고, 진盡에서 한 일자를 켜켜이 쌓아올리는 방식은 조형적으로나 공간 경영이라는 측면에서나 대단한 현대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추사는 21세기 한국 미술계에서 여전히 엄청나게 큰 벽이다. 그를 넘어야 새로운 21세기, 새로운 현대미술이 가능해진다.


- 향후에도 계속 추사라는 주제로 중국과 교류전을 하나.
오는 12월에 20세기 중국 근현대 서예작가가 온다. 내년 겨울에 20세기 한국 현대 작가의 작품이 베이징으로 간다.
한국의 현대에도 서와 화를 제대로 구사한 작가가 있다. 이응노, 김종영, 윤형근, 이우환, 백남준 등. 백남준은 시서화 삼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가다. 그를 도구 측면에서 비디오 아트로만 분류하는데 사상이나 발상이 전통을 토대로 그걸 뒤집어 엎어서 작품 속에 풀어냈다.
유희강이나 손재형, 김충현 등의 작가는 현대 미술과 함께 했던 작가다. 자꾸 서단이라는 좁은 시각으로 재단하니까 현대 서예의 자리가 쪼그라든다.

- 같은 전시에 대한 한국 관객과 중국 관객의 반응이 다른가.
중국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전시장에 와서 자유롭게 본다. 심리적인 거리감 없이 작품을 친숙하게 읽어내고 감상한다. 중국에선 작품 설명을 달지 않았다. 한국에서 한자 서예 전시는 우리말로 한자를 다 풀어줘야 한다. 전시작품 보다 이를 풀이한 한글 텍스트가 더 큰 경우도 많다.

- 한국인의 실생활에서 한자가 영어보다 낯선 글자가 된 터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세종대왕이 한글만 쓰라고 한글을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가 20세기 초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민족의식이 강조되면서 한자도 남의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한글은 이 세상 모든 소리, 모든 언어를 담을 수 있는 문자다. 한자도 영어도 다 담을 수 있다. 한자를 배제할 필요가 없다.

- 다음 전시는 뭘 준비하고 있나.
5월에 한글 테마로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ㄱ(기역)의 순간’. 글자는 청각 언어를 시각 언어로 바꾸는 수단이다. 그 바뀌는 순간. 그 지점을 주목해서 현대미술과 음악을 모두 아우르는 전시를 준비 중이다. 한글만의 전시는 아니다. 한글의 조성 원리나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전시라고 보면 된다.

- 시각적 기호로서의 글자, 글자의 조형성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한글을 말을 기록하는 수단이나 도구로만 보는 것 같다. 기역의 순간은 코페르니쿠스의 전환 같은 창조, 발견되는 순간을 주목하자는 것이다. 글자는 말을 기록하는 도구로만 쓰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書가 동아시아 예술의 토대라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서를 현대에서 그런 자리에 돌려놓고 싶다.



정리/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0.04.0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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