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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석운, 곁눈질 대신 정면으로 응시한 불안하고 화려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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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최석운 : 화려한 풍경
장 소 : 강남구 갤러리 나우
기 간 : 2020.3.10-2020.3.30.

-4년 여 만의 신작전 여는 최석운 작가
-누렁이와 먹돼지의 곁눈질 대신 애완견과 애완묘가 함께하는 흔들리는 풍경 


1960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최석운은 부산 외할머니댁에서 자랐다.

“내 마음대로 다 하면서 컸다. 미술실에서 수위가 나가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라는 돌파구가 있어서 다른 것은 다 해소됐다. 나쁜 놈이 안된 것도,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재미를 알아서 딴 길로 안샌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뒤 군대에 갔다. 제대 뒤 부산대 미대 83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원은 홍익대로 다녔다.

92년 8월6일, 최석운은 강원도에 더 바싹 붙은 양평의 빈집을 빌려 이사해 양평군민이 됐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오는 양평의 꽝꽝시골 집은 최석운에게 동네 누렁개와 슬레트 지붕 너머로 보이는 구름과 하늘, 처마 밑에 집짓고 사는 새를 보는 눈을 줬다. 이듬해 가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최석운은 양평에서 작업한 성과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진달래, 112x145cm, Acrylic on canvas, 2019


작가 최석운이 갤러리나우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화려한 풍경>전(~3월30일)은 근 4년 만의 신작전이다. 그가 내민 신작은 최석운에게 명성을 안겨준 누렁이와 먹돼지가 <고사관수도>의 주인공처럼 인간사의 온갖 욕망을 목격하는 해학적인 그림과 결이 달라졌다. 왜 그는 침묵했었고, 그림을 통해 전달하려는 이미지가 변한 것일까.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오랜 만의 개인전이다.
2016년부터 개인전을 안했다. 학교 마치고 계속 그림만 그렸는데 지쳤던 것 같다.
어떨 때는 마음에 드는 그림도 나오지만, 어떨 때는 쫓기듯이, 뭐라고 해야 하나, 밥벌이라고 해야하나, 밥벌이와 내 그림 그리기의 줄다리기 같은 것, 마음에도 없는 그림도 나오고 했다. 계속 그런 것들에 대한 감정이 누적이 되다가 어느 순간 정말 그림 그리기가 싫더라. 그림을 안그리고, 1~2년만 쉬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어떻게 다른 일도 엮이면서 전시를 안하고 1~2년이 지나고, 동화책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다른 일로 호구지책을 삼고 지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주로 2018~19년에 작업한 것이다. 전시 날짜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급할 것 없이 하나하나 그린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매년 몇 차례씩 서른 몇번의 전시를 했다. 정말 소모적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매년 그렇게 가능했는지, 내가 한 짓이지만 기가 막히다. 매년 전시를 몇 번씩 했다는 건, 그만큼 쫓겼다는 걸 수도 있고, 그건 급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기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직업으로서 그림을 그리다가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 기분이 좋지 않은 순간도 많았다.


그런 자기 고백 뒤에 이번 작업이 이뤄졌다.
내가 20대 때인 80년대 초중반에 그린 그림은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그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 그림이 팔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그림에 쏟아냈다. 그때의 그림 그리기와 그때 그린 작품을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주로 18~19년에 그린 것이다. 80년대에 처음 ‘그림 맛’을 보고 나의 그림맛을 찾아서 시작할 때의 열정적으로, 겁없이 부딪혀보자는 결심을 갖고 그린 작업이다.

-신작에 난민 얘기가 들어가 있다.
2018년에 <도착1>을 그렸다. 그때 유럽이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제주도에 난민이도착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 뉴스를 보면서 그네들이 나랑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겠지만, 내 신세와 겹치더라. 한국에서 전업작가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애들 키우면서, 행복한 시간도 있었지만, 힘든 시간도 많았고, 그걸 헤쳐나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그런 감정이 난민을 보면서 떠오르더라.


도착1, 97x130.3cm, Acrylic on canvas, 2018

난민을 소재로 했지만 나의 현재의 처지를 그린 것이다. 자화상 같은 그림이다.
어떤 곳에 도착을 했지만, 안정적이거나 편한 게 아니라, 또 헤쳐나가야 하는 삶, 그런 삶에 대한 걱정, 여기 도착한 안도, 그런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정면을 바라보며 응시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눈빛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누렁이나 돼지의 곁눈질 같은 해학적인 관찰자의 시선이 신작에서 좀 바뀐 것 같다.
눈빛이 바뀐 게 맞다.
전에는 훔쳐보기 같은 정면을 쳐다보지 못하는 시선이나 위선에 대한 것을 재미나게 그렸다.
사실 좀 공허했다. 내가 그림 그리는 게 이렇게 무력한 것이었나, 싶어서 심각한 그림에서 해학적 그림으로 넘어갔다. 소통하기 쉬운 방법을 찾다가 그리 넘어간 것이다.


돼지를 안은 남자, 76x55cm, Acrylic on canvas, 2015


내가 가진 유일한 잡기가 술 마시기, 떠들고 노래 부르기다. 복잡하고 심각한 놈이 아니다. 낙천적인 체질이다. 그게 나하고도 합이 맞고, 나다운 모습이다.
내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서양화 교과서를 덮으면서 ‘나는 이런 그림은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우리 미술을 지켜봤다. 김홍도나 신윤복에게 완전히 빠졌다. 나중에 대학원 가서도 조선 후기 풍자와 해학에 대해 공부했다. 우리의 정신이랄까, 미감이랄까,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그런 것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걸 길게 찾아가다가 이번에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 (지난 5년이)나에게는 약이 되는 시간이었다.
습관적으로 찍어내는 느낌이 계속 들어서, 반복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리는 것 같아서 이번엔 정면을 보는 것을 그렸다.
<도착1>이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런 불안과 두려움, 안도가 동시에 드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기 위해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눈동자의 방향은 양쪽이 각기 미세하게 다르게 처리했다. 이번 전시가 전환점이 될 것 같다.
4년 여의 시간을 가지면서 흔들리지 않는 무장이 된 것 같다. 누가 무슨 얘기를 해도 흔들리지 않고, 80년대의 내가 그랬듯이.

-작가 생활 중 언제가 힘들었나.
92년 8월6일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강원도와 가장 가까운 빈집을 빌린 뒤 부산에서 양평으로 이사했다. 거길 갔을 때가 30대 초반으로 제일 힘들었다. 그때 경제적으로 전혀 뒷받침이 안됐다. 양동면의 그 마을은 다 60대가 넘는 노인네만 있는 산골이었다. 그때 2년을 숨도 못쉬는 침묵을 겪으며 작업했다. 그 작업으로 93년 가을에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 전시가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젊은 놈이 거기서 할 일도 없고, 안에서만 6년을 보내며 작업을 했다. 그때가 내 작업의 발판이 됐고, 지금까지 올 수 있는 힘을 거기서 비축했다.


휴식, 84.5x104.5cm, Acrylic on canvas


나중에 서른 여섯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 안했으면 못그렸을 그림도 있다. 물론 처자식 생기면서 힘들어지고.(웃음) 애들이 학교 다닐 나이가 되자 사는 집은 양평 역 근처로 옮겼다.
93년 전시 준비할 때만큼, 이번 전시 준비에도 고민과 노력을 했다. 출발선에 다시 선 것 같다.
침묵이 약이다. 나에겐 그게 약이다. 지난 5년 여 간 내 작가 이력 중 가장 긴 준비를 한 것 같다. 

-신작에도 개가 등장하지만 2016년 이전에 발표한 그림 속의 똥개는 아니다.
내가 서툴고 모자란 사람이다. 그림 속의 강아지는 내 분신이다. 부산에 살 때, 90년 무렵, <개장수>라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그때 도시에는 술에 취해서 거리에 널부러진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거리에 자빠진 사람을, 대각선 너머 똥개가 바라보는 그림을 그린 적도 있다.
양평으로 터전을 옮긴 뒤에는 자연의 것들이 많이 등장했다.
농가 주택에 하루 종일 정적 속에 지내다보면 옆집 누렁이 한마리가 어슬렁 거리면서 대문으로 들어와 나를 힐끗 보고 나가고, 처마 밑의 무당새가 집을 짓고 알을 까서 새끼와 먹이를 나누고, 마루에 앉아서 앞을 쳐다보면 맞은편 슬레트 지붕 위로 흩날리는 나무, 구름, 저너머 산. 전봇대와 줄, 이런 걸 매일 본다. 그 시절 내 그림에도 이런 게 많이 등장했다.


Horse Riding, 259.1x193.9cm, Acrylic on canvas, 2019


양평 시대에 그림 속에 자주 나오는 개는 인간의 내면을 설명하는 보조 역할이다.
신작 <도착1>에 보면 목선이 있다. 가족 네 명을 그렸다. 사실은 개가 없는 상태로 완성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도록 사인을 못했다. 내 그림 같지 않아서. 그러다가 그 개를 그려 넣고서야 사인을 할 수 있었다. 그 개는 누렁이는 아니다. 내가 읍내로 이사 나온 뒤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는 사람을 서울에서 만났다. 그리고 나서보니 그 개를 그린 것이었다. 내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시골에서 골든 리트리버를 그리면 이상한 것이 되지만 서울을 오가며 본 것이니.

-곁눈질 하며 은근히 인간을 놀리던 똥개나 먹돼지가 사라진 대신 도시에서 키우는 애완용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면서 서늘해진 것 같다. 비관적이 된 것인가?
그동안 일상의 삶을 다뤘다. 밥먹는 것, 온갖 장면을 다 소재로 다뤘다. 소재가 고갈될 무렵에 양평으로 갔다. 양평이 끝날 무렵 제주도에 가서 제주도를 그렸다. 경쾌하고 재미있는 것에 포커싱을 했다.
내가 80년대에 전시했을 때는 관람객이 오지 않았다. 전시장 분위기도 무겁고, 들어온 관람객도 눈치를 보면서 감상하더라. 그런게 너무 싫었다.


휴식, 60.6x72.7cm, Acrylic on canvas, 2015


나에게 붙는 ‘해학적’이라는 평가의 시작은 쥐와 바퀴벌레부터였다.
어느날 바퀴벌레와 쥐를 그렸더니 사람들이 웃더라. 내겐 그게 충격이었다. 내가 ‘섬뜩한 쥐가 왜웃기냐’고 관람객에게 물어봤다. 그들은 ‘그림에 쥐와 바뀌벌레가 나올 줄 몰랐다’며 웃었다. .
거기서부터 소통이 시작됐고, 나는 해방감을 느꼈고, 대중과의 소통이 신났다.
그때부터 무지하게 그려 나갔다.
80년대 후반은 엄청난 격동기였다. 미술도 사회성 짙은 그림이 나오고, 거대 담론의 시절이었는데 내가 개인의 일상적인 사사로운 그림만 그린다고 또 한마디씩 하더라. 하지만 나는 그런 소통이 너무 신났다. 어느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던 내 방식으로 달렸다. 그런 재미에 치중했다.
2014~15년까지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 너무 재미에 빠진 것 아닌가, ‘너는 이게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냐’는 회의가 조금씩 들기 시작했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모색을 다시 시작했고 그 결과가 이번 전시다. 마냥 재미있기만 한 요소는 빠진 것 같다. 조금 진지하게 묘사한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번 전시에서 내가 달라지 모습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러한 것이 내 몸에 다 세팅돼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런 그림을 그릴 것 같다.


“내가 80년대 중반부터 그림 발표를 했는데, 벌써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급하게 오다 보니까 어느새 60이 됐다. (60이란 게)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다. 철없고 어리고 할 게 많은데, 원하는 게 많은데, 나이가 벌써 60이라는 게 안믿어진다. 지금 다시 정신차려서 시작하면 한 30년은 더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하는 기분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인터뷰/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0.09.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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