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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김홍도의 풍속도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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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뒤에도 손뼉치며 감탄할 수 밖에 없는 화가 김홍도의 유쾌하고 서늘한 통찰

전시명 : 김홍도의 풍속도첩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서화II실
기 간 : 2020.4.6 - 2021. 3. 28
글 : 김진녕

18세기 영조 시대부터 정조, 순조에 이르기까지 활동했던 화가 김홍도(1745~1806 이후)는 금강산 등 실경산수와 당대 인간의 삶을 들여다본 풍속화, 장식적인 화조화, 불화와 도속화 등 종교화까지 거의 모든 회화 장르를 섭렵하고 뛰어난 완성도의 작품을 남긴 조선 후기의 걸출한 화가다. 그의 그림 중 우표나 각종 전통 이미지에 자주 인용되는 <서당>이나 <무동>, <씨름> 등이 실린 <단원풍속도첩>이 오랜만에 전시실에 등장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5월 6일 재개관을 기념하여 단원壇園 김홍도金弘道의 <단원풍속도첩>을 꺼내 들었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단원풍속도첩>은 ‘국내외 주요전시에 출품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작품의 보존 때문에 한 번에 여러 점을 감상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씨름>, <무동>, <논갈이>, <활쏘기>, <노상 풍경>, <베짜기>, <그림 감상> 등 7점의 작품을 펼쳐놨다. 희소식은 단발성이 아니라 내년 상반기까지 교체 전시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오는 9월 중순에 서당, 빨래터, 담배썰기, 우물, 기와이기, 탁발승이, 내년 1월의 교체 전시에는 타작, 자리짜기, 대장간, 주막, 고누놀이, 행상 등 6점이 등장한다.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25점의 작품중 19점이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셈이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대해 스승격인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김홍도는 사람들이 날마다 하는 수천 가지의 일을 옮겨 그리길 잘했으니, 한번 붓을 대면 사람들이 다들 손뼉을 치면서 신기하다고 외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기록을 남겼다. 김홍도가 남긴 풍속화 중 제작시기가 정확한 작품은 그가 34세인 1778년 그린 8폭의 〈행려풍속도〉 병풍이다. <단원풍속도첩>은 <행려풍속도> 병풍을 그린 뒤 30대 중후반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중 풍속을 그린 작품이지만 두 작품의 차이점이 있다. 비단에 그린 〈행려풍속도〉 병풍에는 8폭 그림마다 꼭 양반이 등장해, ‘양반의 세상 구경’이란 시점을 취하고 있고 실제로 각 폭마다 강세황이 그림을 설명한 평을 써넣었다. 반면 종이에 그린 〈단원풍속도첩〉은 화려한 채색 없이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에 집중하고 있다. 주인공도 더 이상 양반이 아니다. 갓 쓴 양반이 등장하지만 길가에서 수작질하거나 점잔떨면서 훔쳐보기에 열중하는 여러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그림 설명이나 제목도 없다. 오롯이 단원이 본, 단원이 그린 18세기 당대 조선 사람의 삶만이 들어가 있다. 

지배계급이 아닌 서민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18세기 말 중인 계급 주도로 이뤄진 여항문학의 유행과 같은 흐름에 놓고 볼 수도 있다. 블랙 유머 같은 해학과 비판 의식도 들어있다는 점에서 18세기에 발현한 동서양의 어느 해학 소설이나 풍자화에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지닌 성취로 보여진다. 게다가 18세기 후반의 조선 풍경을 전해주는 ‘사진’과도 같은 기록물이란 성격도 더해진다. 


씨름


이를 테면 <씨름>에선 18세기 후반의 조선이 장터 마당이라는 ‘극장’에서 씨름 구경이란 ‘관람형오락’을 즐기는 관중이 존재하고, 엿장수라는 세분화된 직업군이 등장했던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10면에 실린 <시주>에선 장터에 출현한 들병이조차 트레머리를 한 당시 서민사회의 경제력과 풍속을 보여준다. 장마당에서 고깔을 쓰고 목탁을 치고 있다뿐 더부룩한 수염과 매서운 눈이 왈짜에 가까워 보이는 두 남자를 향해 치마를 들어올리고 고쟁이에 달리 돈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술병과 장죽을 들고 있는 어린 짐꾼에게 샐긋 웃어보이는 들병이에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들병이는 돈주고 부적을 사더라도 그 돈을 왈짜에게 술을 팔아 다시 회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듯 하다. 장마당의 생존 투쟁. 

이렇듯 단원이 스케치한 인간군상의 모습은 이야기가 넘친다. 그림을 보는 이에게 단편 소설 같은 이야기 거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단원풍속도첩>은 <행려풍속도>에서 양반을 심판자 또는 목격자로 등장시키며 ‘훈계조’의 이야기를 담아내던 태도와는 좀 다르다. 갓 쓴 양반도 욕망에 허덕이는 풍자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빨래터


14면의 <빨래터>에선 과감히 배경을 생략했지만 치마를 널어놓고 속곳차림으로 빨래를 하는 아낙네를 훔쳐보는 갓 쓴 양반을 묘사했다. 그가 도둑 고양이처럼 높은 바위에 숨어 부감샷으로 훔쳐보기를 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바위를 그렸고 부채로 가린 얼굴에서 빼꼼히 드러난 시선이 머무는 곳이 아낙네의 허벅지임을 강조하기 위해 바위 밑 아낙의 허벅지에 유독 붉은 색을 표나게 올렸다.  

이 그림책에서 단원은 계급 차이와 경제적 신분, 남녀간의 은밀한 성적 긴장감까지 단 한장의 스케치로 그 모든 스토리를 담아내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우물가


15면의 <우물가>에는 굳이 트레머리를 한 젊은 여인에게 물을 얻어 마시며 눈은 뚫어져라 여인을 쳐다보는 저고리를 풀어헤친 남자를 그렸다. 남자는 상투를 틀고 뒷춤에 대충 갓을 매달아 신분을 암시하고 있다. 대낮에 술에 취할만큼 술값 걱정안하는 한량. 반면 어쩐 일인지 트레머리를 한 반반한 여인은 낯선 사내에게 건넨 두레박 끈을 꼭쥐고 있다. 내외하는 사이라면 그 줄을 놓고 외면하고 돌아서도 될일일터. 사내 뒤에는 이미 사단이 난 것을 직감한 중년 여인이 입을 꾹다물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동이를 인채 채근하듯 서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은 모두 세 명이고, 이중 왈짜가 대놓고 쳐다보는 젊은 여인의 물동이와 중년 여인의 물동이만 옹기라 이 둘이 일행임을 알 수 있다. 나머지 한 여인의 물동이는 나무로 만든 것이라 두 여인과 신분이나 경제력에서 차이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9면 <노상파안>에서는 양반 사이의 경제력 차이와 남녀간에 발생할 수 있는 일탈심리를 다루고 있다.
견마잡힌 말에 탄 남자는 번듯한 집안의 한량인듯 가죽 안장까지 달린 말 위에 앉아서 내외하듯 부채로 얼굴을 가린채 반대쪽에서 오는 소를 탄 여인을 번개처럼 스캔하고 있다. 여인은 쓰개치마를 만지며 얼굴을 가리는 제스춰를 취하는듯 하지만 실상은 전혀 가리지 않고 살짝 시선을 치켜 뜨고 ‘반대 차선’의 말 탄 한량을 감별하고 있다. 여인의 뒤를 따르는 남편은 전방의 상황을 몰라 불안한 표정으로 애를 업고 입꼬리가 올라간 사회적인 제스춰를 취하고 있다. 남편 또한 양반인지 넓은 테두리의 갓을 쓰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지 닭까지 들춰메고 길을 나섰지만 처자식을 소를 태워야 하는 형편이다. 두 사내의 복잡한 심정은 한량이 탄 말과 여인이 탄 소의 눈동자가 보충 설명해준다.  한량이 탄 말은 대놓고 도발적으로 여인을 쳐다보고 있고, 여인이 탄 소는 억울한 표정으로 뒤따르는 사내쪽으로 눈동자를 돌리고 있다. 모파상이나 루쉰의 소설 한대목 같은 밀도의 서늘한 유머가 느껴진다. 

어떤 계급을, 어떤 직업군을 향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관찰과 풍자를 하는 단원의 이런 태도는 17면 <자리짜기>와 19면 <그림감상>에서 멈칫거리게 만든다. 

<단원풍속도첩>에서 단원은 기와이기나 벼타작, 말발굽 달기, 담배썰기 등 몸을 써서 일을 해야 하는 평민 계급의 삶을 주로 다루고 양반은 훔쳐보거나 수작질하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자리짜기


그런데 <자리짜기>에선 어머니는 물레질을 하고 아버지는 자리를 짜고 아들은 글을 읽는 세식구를 다뤘다. 단원은 그림 속에서 머리 모양으로 신분을 나타냈다. 평민 남자는 대충 잡아맨 민상투로 그렸고 양반 계급은 갓이나 망건을 쓴 모습으로 그렸다. 이 그림에서 자리를 짜는 남자는 얌전하게 탕건을 쓴 양반이다. 부부가 물레질을 하고 자리를 짜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양반은 끈떨어진 잔반일 것이다. 단원은 돈벌이에 나서지도 못하는 잔반의 현실을 그림에 담고 이들이 소망하는 벼슬길에 대한 소망을 글공부하는 아들을 그려넣어 형상화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잔반의 아들은 과거에 급제해 집안을 일으켜 세웠을 것이라고 단원은 믿었을까. 조선 후기 중인과 잔반층을 중심으로 여항문학이 유행하는 등 조선 자체 변혁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정조는 집권 후반부로 갈수록 변혁 운동을 막는 쪽으로 움직였다. 문체반정이 그 사례다. 김홍도는 누구보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조대부터 세도 정치가 시작되고, 정조 사후 매관매직에 불이 붙었다. 

부부 모두 열심히 일하고 아이는 공부해서 성공한다,고 해석하면 17면의 <자리짜기>는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그림 중 가장 모범적인 그림이 된다. 반면 풍자와 해학 속에 시대에 대한 비판까지 등장시켰던 전반적인 <단원풍속도첩>의 톤에서는 멀어진다. 


그림감상


19면의 <그림감상>은 단원의 그림을 흉내낸 모작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 작품은 탕건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지배계층 남자 7명이 큰 종이를 같이 붙들고 웅성거리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박물관쪽에선 이 작품의 안내판에 “다른 작품에 비해 필력이 떨어지고 구불거리는 옷주름 표현이 어색하여 김홍도의 원본을 묘사한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써놨다. 아울러 <단원풍속도첩>에서 다루고 있는 풍자나 해학성과도 거리가 멀다. 물론 지금은 공백으로 남아있는 텅 빈 종이 위에 대형 춘화(?)라도 그려져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단원이 금강산 그림을 통해 한반도의 실경을 그렸다면 <단원풍속도첩>을 통해 한반도에 사는 인간군상의 실경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국박의 이번 전시는 <단원풍속도첩>이 조선 후기의 어떤 문학적 성과물보다 더 직접적으로 밀도 있게 당대의 삶을 기록한 이야기 그림책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0.08.1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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