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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와 현대를 동시에 살아낸 최욱경의 추상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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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 추상 회화의 또다른 풍경

전시명 : Wook-kyung Choi
장 소 : 국제갤러리
기 간 : 2020.6.18-2020.7.31
글/ 김진녕

1960년대에 미국 유학을 통해 당대 현대 추상회화의 세례를 직접 받았던 최욱경(1940~1985)의 개인전 <최욱경Wook-kyung Choi>(~7월31일)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최욱경의 전시는 2000년대 이후에 열린 것만 해도 2005년 국제갤러리, 2013년 가나아트센터, 2016년 국제갤러리에 이번이 네 번째로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선 1960년대부터 1975년 께 제작된 흑백 잉크 드로잉과 콜라주로 구성된 컬러 작업 등 40 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은 사이즈의 컬러 회화 작업은 유화, 아크릴 물감뿐 아니라 목탄, 콩테, 오일 파스텔, 잉크 등 다양한 재료가 섞여 있다. 갤러리 쪽에선 “작가가 크랜브룩 미술학교에서 수학하던 시절에 작업한 다수의 초기작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윌렘 드 쿠닝의 자유분방한 선과 로버트 마더웰의 추상적이면서도 명상적인 회화면을 상기시키는 반면, 함께 선보이는 콜라주 작품들은 현실의 이슈들을 즉각적으로 반영했던 팝아트나 일상의 물질적 소재를 캔버스 평면에 덧붙여 작업한 컴바인 페인팅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특정 사조를 표방하거나 고집하는 대신 형태와 공간에 관한 연구를 통한 주제의식의 표현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주최측은 컬러 작업과 흑백 드로잉 작업을 따로 배치했다. 두 번째 공간에 전시된 흑백 작품 속에는 두 점의 판화도 포함돼 있다. 특히 인화지처럼 반짝이는 광택지에 그려진 잉크 드로잉은 먹과 금속성의 표면 느낌이 맞물리면서 동양의 수묵과 현대 추상 표현주의가 섞인 새로운 공간으로 안내한다.

재미있는 점은 최욱경이 1940년대 생이지만 서구의 현대를 경험한 1910~1920년대 생 한국 현대 원로 작가와 같은 실질적으로는 같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는 그의 이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미술학도로서 ​최욱경은 1960년대에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경험했다.
한국 앵포르멜 운동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제3회 현대전이 열린 것이 1958년이다. 최욱경이 고3이던 해이다. 후진국 한국에 수출 물자를 생산하는 공단이 생기고,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이 본격화된 것은 1970년 7월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부터다. 실제적으로는 이 무렵부터 현대 사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 한국 사회에도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 미술계에선 한묵(1914~2016)이 1961년 파리로 건너갔고,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김환기는 귀국길에 뉴욕에 눌러앉아 뉴욕 시대를 열었다. 한국 현대회화 그룹의 조직가였던 박서보(b.1931)는 1961년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청년화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지만 일정을 잘못 알아 11개월간의 ‘파리 연수’를 경험했다. 파리에서 귀국한 박서보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원형질 시리즈를 작업했다. 김창열(b.1929)은 1966년 록펠러 재단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미국에서 한 달 동안 연수를 받은 뒤 4년을 버티다 1969년 파리에 정착했다.

1963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최욱경은 그해 바로 현대 문명의 첨단인 미국으로 그림 유학을 떠났다. 1963년은 홍익대 교수였던 김환기가 현대성을 극복하겠다며 교수직을 내려놓고 맨속으로 뉴욕에 정착한 그해였다. 또 1963년은 2차 대전 종전부터 쉼없이 상승 그래프를 그리던 팍스 아메리카나, 근심없는 미국의 시대가 끝나던 시기였다. 그해 11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됐고, 2차 대전 뒤 태어난 백계 베이비 부머는 근심없는 세상에 약물로 자극을 원했고(히피), 흑백 갈등은 마틴 루터 킹(1929~1968)의 암살로 깊은 골을 드러냈고, 수렁 같은 월남전은 팍스 아메리카나 신화를 끝장냈다.


미술계에선 미국 현대 회화의 스타였던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락이 1956년 사망한 뒤였고, 폴락이 사라진 뉴욕의 갤러리에선 추상표현주의의 스타로 떠오른 윌렘 드 쿠닝(1904~1997)이 6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뉴멕시코에서 은둔하고 있었다. 추상표현주의 열풍이 한풀 꺾이고 신사실주의, 팝아트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하던 시기였다.

최욱경이 유학간 크랜브룩 미술학교는 미시건 주에 있었고, 그는 이후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 미술학교로 옮겨 현대미술의 현장을 지켜봤다. 미술학도로서 미국에 유학간 최욱경은 현대 미술을 흡수하는 데 기성 화가보다 더 빨랐을 것이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한 문화 충격도 컸을 것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최욱경은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미국 프랭클린 피어슨 대학의 미술과 조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1971년 귀국했다가 1974년 다시 출국했고, 1978년 영구 귀국한 뒤 1985년 세상을 떴다. 한국에 돌아온 최욱경에게 한국은 다시 낯선 나라였을 것이고, 그가 미국에서 익힌 추상언어가 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 자생했던 추상 그룹인 앵포르멜 진영은 단색화로 넘어간 시기였고 그는 한국 땅에 다시 착근하기 위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전시장을 채운 그의 흑백 드로잉과 색채 소품은 최욱경이 살아간 시대와 그의 삶 속에서 충돌한 한국(동양)과 미국(서양)의 문명이 작품으로 구현된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적인 격차는 물론 물질 문명 발전에 따른 사회적인 담론, 여성성 등 개인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욱경은 남의 나라에서지만 1960년대에 10여 년간 실제적으로 ‘현대’를 살아보고 추상 회화를 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 갤러리에 걸려 있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0.10.2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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