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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한을 이겨낸 추사의 세한도 1844-2020 -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 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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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울의 혹독함에서 탄생해 중인 계급의 보호 속에 지켜온 세한도의 176년

전시명 :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 / 김정희와 그의 벗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 본관 특별전시실
기 간 : ~2021.1.31 / ~2021.2.14.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2021.1.31)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손창근孫昌根(b.1929) 선생이 2020년 기증한 <세한도>을 비롯하여 2018년 기증한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와 <김정희 초상화> 등 15점과 <세한도>의 제작 배경과 전래 과정을 담은 영상 5건으로 이뤄져 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당분간 박물관 문이 닫혀서 실관람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해서인지 주최측은 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열어놨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세한도 두루마리에 함께 장황된 청나라 문인의 글과 한국 근대인의 글을 원문과 한글 해설로 공개하고, <세한도>와 관련된 지난 200년 동안의 인물 관련도를 공개하는 한편, 유튜브 등을 통해 전시 관련 영상과 전문가인 유홍준 명지대 석좌 교수, 최완수 간송미술관 실장 등의 강연 영상 공개 등 전시의 세세한 면을 전해주는 다양한 접근 경로를 열어놨다.


정조 10년에 태어나 순조와 헌종을 거쳐 철종 7년에 세상을 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세도정치가 득세하며 조선이 완연히 쇠락기에 접어든 19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그가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그린 것은 제주 유배 중이던 1844년. 김정희는 헌종 6년(1840년) 풍양조씨와 안동김씨의 세싸움에 휘말려 고문을 당하고 곤장을 맞은 뒤 관직이 박탈되고 제주에 유배됐다. 조선 왕실의 외척 출신으로 비교적 평탄한 벼슬길을 밟으며 젊은 시절 외국 여행(청나라)도 다녀온 고급한 취향의 김정희가 인생 말년인 50대 중반에 고문과 곤장세례를 받고 ‘세상의 끝’에 유배됐을 때 느낀 심정은 어땠을까.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장 줄리앙 푸스의 7분짜리 영상 <세한의 시간>은 이 추사가 느꼈을 당혹스럽고 혹독한 시간에 대한 시각적 번안으로 보인다. 프랑스 출신인 장 줄리앙 푸스(Jean-Julien Pous)는 이미 제주 해녀를 다룬 중편 다큐 영화 <울림>(2016)으로 제주와 구면이다. 줄리앙 푸스가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한 제주도 풍경에 김정희의 고통과 절망, 성찰에 이르는 과정을 녹여냈다. 이 영상은 유투브에 전체 분량이 공개돼 있기도 하다.


함께 열리고 있는 <평안>전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동원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의 기획이다. 주최측에선 <세한도>의 모티프인 <논어論語>의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凋’, 즉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구절의 의미를 ‘세한의 시간’과 ‘송백의 마음’으로 나누어 감성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영상을 보고 나서 전시장에 들어서면 세한도 두루마리가 기다린다.

김정희의 <세한도>와 청나라 문인 16인과 한국인 4인의 감상 글로 이루어진 세한도 두루마리(전체 크기 33.5×1,469.5cm) 전체가 두루마리 앞쪽의 바깥 비단 장식 부분에 있는 청나라 문인 장목張穆(1805~1849)이 쓴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 제목부터 두루마리 끄트머리의 정인보의 글까지 다 펼쳐져 있다.

<세한도>를 초고화질 디지털 스캐너로 스캔하여 그림 세부를 자세히 보여주는 영상도 눈여겨볼만한 코너다. 물기 없는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그어 내려간, 그래서 앙마른 겨울나무의 황량함과 쓸쓸함을 전해주는 추사의 필력을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송백의 마음’ 공간에서는 세한 시기 송백과 같이 변치 않은 마음을 지닌 김정희의 벗과 후학의 이야기를 다룬다. 8년 4개월의 제주 유배 기간 동안 편지와 물품을 주고받으며 김정희에게 위로가 되어준 동갑내기 친구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 역관이자 제자 이상적李尙迪(1804-1865), 애제자 허련許鍊(1808-1893)과의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김정희는 초의선사에게 쓴 편지를 통해 서화를 제작해달라는 허련의 청에 시달리고 있는 소소한 일상을 전했다. 이처럼 김정희는 제주에서 허련, 전각가 오규일吳圭一 등을 통해 서화 주문 요청을 받아 많은 작품을 제작했고, 이상적을 통해 전달받은 최신 청나라 신간을 통해 세한의 시간을 견뎌냈고 유배가 끝난 뒤 돌아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서 한때 평가절하했던 이광사를 인정하는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다.




김정희의 예술과 학문은 20세기에 역관 집안 출신 서예가 오세창吳世昌(1864-1953)과 서예가이자 국회의원을 역임한 손재형孫在馨(1903-1981), 김정희 연구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1879-1948)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후지쓰카가 1940년 일본으로 가져간 <세한도>를 1944년 손재형이 폭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무사히 되찾아온 일화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 한켠에는 이번 전시를 가능케한 기증자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덕을 기리는 코너가 있다. 손세기孫世基(1903-1983)•손창근 부자는 추사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세한도>와 <불이선란도>를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분이다.


재미있는 점은 19세기부터 한국 미술사의 주류로 자리잡은 추사류의 전통이 중인 그룹의 물질적후원으로 지켜지고 보존됐다는 점이다. 추사 작품은 21세기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거래되는 고미술품 중 언제나 최고가일 정도로 주류 중의 주류다.


추사가 조선조 후기 세도가끼리 벌어진 패권싸움의 유탄을 맞고 세상과 강제로 분리된 상황에서<세한도>가 탄생했다. 추사를 잊지않고 물질적 후원을 하고 청나라의 소식과 책을 전하는 등 세상과의 통로가 되 준 중인 출신 역관 이상적이 있기에 나올 수 있었고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던 작품이다.


정치적 패권과는 별개로 역관 계급은 조선 후기에 연행사를 통한 국경 무역을 통해 부침없이 재산을 모았다. 이상적 이후 세한도를 소장한 김병석-김준학 부자도 역관이었고, 일제강점기에 추사의 가치를 옹립한 오창석도 부친 오경석이 역관이었던 유복한 집안이었다. 손재형이 일본에서 회수한 세한도를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저당잡혔을 때 이를 손에 넣어 흩어지지 않게 지켜낸 손세기 선생은 개성 출신으로 가업이던 인삼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1844년에 탄생한 <세한도>가 2020년 초 국가에 기증되기 까지 양반 계급의 손이 아닌 중인 계급의 활약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지켜진 것이다.



이런 과정은 본관 상설전시관 2층 ‘손세기•손창근 기증실’에서 열리고 있는 테마전 <김정희와 그의 벗>(~2021.2.14.)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테마전에는 추사와 교류한 섭지선과 이상적에게 보낸 정조경의 편지, 추사가 관여한 금석학 도서, 권돈인, 이하응, 허련 등 추사의 영향을 받았던 인물의 서화 등이 나와있다. 특히 추사가 제주 유배에서 돌아와 용산에서 중인에게 그림과 글을 가르치던 ‘강상시대’에 추사에게 배웠던 전기, 유숙, 유재소의 그림은 당대 중인 계급의 활약상을 짐작케한다.

약재상으로 큰 돈을 벌었던 전기는 홍지문 부근의 약재창고를 그린 그림을 남겼고, 유숙은 안경을 낀 채 화가로서 스케치하는 전기의 모습을 초상화로 남겼다. 중인이 단순히 기술자가 아니라 글과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부자,라는 자신감이 넘친 모습이자 19세기 중인 계급의 부흥을 알리는 풍경이다. 이 중인 계급의 경제적 부흥 뒤에는 청나라 연행사와 역관을 끼고 벌어진 국경무역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전시에선 세한도의 청나라행을 가능케하고, 세한도를 지켜낸 물적 토대인 19세기 국경무역의 경제사에 대한 분야는 본전시에도, 연계 전시에도 빠져있다.

영상

[특별전:한겨울 지나 봄 오듯 - 세한歲寒 평안平安] 세한의 시간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1.04.13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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