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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적 난민’ 아이웨이웨이의 세계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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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기간 : 2021.12.11-2022.4.17
글/ 김진녕

- 2년 여 만에 국현에서 펼쳐진 해외 작가 개인전
- ‘내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정치적 난민' 아이 웨이웨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래간만에 외국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중국 출신의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동가인 아이웨이웨이의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4.17)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2019년 안톤 비도클과 아스거 욘의 전시를 끝으로 국현에서 사라졌던 당대 해외 작가의 개인전이 2년 여 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문화가 주고 받고 흐르며 성장하는 현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시 열리게 된 것은 다행이다.

이번 전시는 2015년 중국 땅에서 벗어난 뒤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온 아이웨이웨이(艾未未, 1957~)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이다. 첫 개인전이지만 기시감이 든다. 2020년 하반기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해 국현에서 기획한 <낯선 전쟁> 전에 아이웨이웨이의 대형 설치 작품 <여행의 법칙>(2017), 벽지형 작품 (2019), 지중해 난민 기록 필름 <바다에서>(2016), <이도메니>(2016) 등을 선보였었다. 그때 보여줬던 주제와 이번에 선보인 작품의 주제는 크게 달라진 게 없고 다만 그의 이름 아래 두 개의 전시실에서 그가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게된 계기가 된 작품을 더해 좀 더 많은 가짓 수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이 다르다.



아이웨이웨이는 작품 구현을 위해 회화와 사진, 다큐멘터리(영화), 도자, 건축, 레고 블록, 유리공예, 대리석, 옥 같은 물리적인 매체는 물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3종 세트까지 그의 퍼포먼스를 알리고 결과물을 판매하거나 감상하는 통로로 동원하고 있다. 중국 정부라는 거대 공권력과 맞붙어 매력적인 작품 소비처를 제발로 등지고 나와 사실상 망명 생활 중인 그가 국경이 없는 디지털 미디어에 가장 적극적인 현대미술작가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자 그의 왕성한 창작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물로 보인다. .

서울관 6,7 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 중 6 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그의 출세작이기도 한 <원근법 연구>(1995)와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1995)를 확장시킨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 원근법의 시그니처인 치켜든 가운데 손가락을 인간의 해골과 결합시킨 <검은 샹들리에>(2017-2021), <검은 샹들리에>를 다시 흑백 프린트로 뽑아낸 흑요석 시리즈, 1995년의 <한대 도자기 떨어뜨리기>의 퍼포먼스 사진을 레고 블록 부조로 만든 2016년 버전의 <한대 도자기 떨어뜨리기>, 그리고 그가 깨뜨린 도기 모양을 한 도자기에 플라스틱 느낌의 페인팅을 한 <색을 입힌 화병>이다. 현대 미술 시장에서 그를 상징하는 작품을 재활용해 현재의 그를 보여준 것이다.


1989년 6월의 천안문 사태 이후 천안문은 중국의 권력과 통제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1995년 아이웨이웨이가 원근을 가늠하기 위해 가운데 손가락을 펴고 사진을 찍었는데 하필 그 끝에 천안문이 있었다. 그게 1995년이고, 이 작품으로 아이웨이웨이는 중국 현대 미술의 스타가 됐지만 중국 정부와 불화를 겪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중국 정부의 발표와 다른, 사망자수와 희생자 이름을 기록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당국과의 불화를 전면화시켰고 그의 중국내 활동에 족쇄가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할 정도였지만 정작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부터 그는 중국 내에서 기피인사가 됐다. 2011년 탈세혐의로 81일간 독방에 구금당한 그는 여권도 빼앗겼다. 2015년 여권을 되찾은 그는 독일로 갔고 요즘은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다. 조국에 돌아갈 수 없는, 유럽의 난민이 된 것이다.


그가 2015년 이후 지중해를 건너 서구 유럽으로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난민을 주제로 작품을 계속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6 전시실에 마련된 영상실에서 틀어주고 있는 <부유>(2016), <칼레>(2018), <유랑하는 사람들>(2017), <바퀴벌레>(2020), <2003년 베이징>(2003), <남겨진 사람들>(2019), <코로네이션>(2020), <로힝야>(2021), <살아있는 자>(2020)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옷으로 만든 설치작품 <빨래방>(2016)과 필름 <이도메니>, 지중해에서 수거한 구명조끼 140벌로 만든 <구명조끼 뱀>(2019)까지 더하면 어떤 재난 상황에서도 작품을 구성해내는 그의 창작 의욕에 감탄하는 한편, 아이웨이웨이가 세계의 거의 모든 난민 이슈와 국경 분쟁을 담으려고 하는 ‘난민 재난 전문 리포터’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의 필름 창작물에 홍콩의 우산 시위와 지중해의 난민, 남아시아의 국경분쟁과 난민, 남미의 테러조직까지 전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과 연관된 분쟁/난민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웨이웨이는 자신을 위협하던 공권력의 위협에서 벗어난 뒤 ‘안전한 거리에서 멀리서 벌어지는 큰 불’을 중계하는 ‘반사체’가 되려고 작심한 것일까.


아이웨이웨이는 이번 전시에 직접 한국을 오는 대신 인터뷰 자료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국제이슈를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 스스로가 국제이슈다. 내 생명, 생명에 대한 이해, 내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분”이라고 대답했다.

국현에서는 이번 전시의 제목인 ‘인간미래’가 아이웨이웨이 예술세계의 화두인 ‘인간’과 그의 예술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며, 인권을 다룬 인류사의 중요 발언을 모은 작가의 작품 <인용문>(2019)에 소크라테스의 “나는 아테네인도 아니요, 그리스인도 아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는 말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소크라테스처럼 아이웨이웨이는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책임감과 휴머니즘(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해왔고 그 고민이 작업에 반영돼 있다는 얘기다.


전시장에 국경분쟁과 그로 인한 난민의 비명과 불행만 넘치고 있지는 않다.
무라노 유리로 만들어 장식적 효과를 더한 <검은 샹들리에>처럼, 중국 청화백자의 대표적 산지인 징더전(景德鎭)의 공방과 협업해 난민의 ‘실상’을 고급스러운 청화백자 무늬로 구현한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2017)과 접시 시리즈, 자신의 강제연금 시절을 상징하는 자전거 꽃바구니 퍼포먼스를 재료로 한 <자기 꽃이 담긴 자전거 바구니>(2014), 쓰촨의 참상을 연상케 하는 헬멧을 대리석으로 제작한 <헬멧>(2015), ‘중국식 아재 개그’(동음이의어)를 활용하고 전통적인 중국 화제(畵題)인 게를 도자기로 제작한 <민물 게>(2011) 등 상업화랑에서도 팔릴 수 있는 소품도 다수 등장했다.


권위적인 정권에 대한 도전자이자, 자유로운 창작의 옹호자인 아이웨이웨이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 과정을 감독하고 ‘기술적인 전문가’를 고용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대량 생산해 내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서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런 복합적인 면모를 띤 2010년대의 아이웨이웨이의 세계가 국현 서울관에 펼쳐져 있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2.09.2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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