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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회복, 반추하는 역사에의 꿈”-고궁연화(古宮年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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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고궁연화(古宮年華)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 특별전
전시기간: 2021.12.01(수) - 2022.02.27.(일)
전시장소: 국립고궁박물관
글/ 이강근(서울시립대학 건축학부 교수)

서울에는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 조선왕조의 궁궐 다섯 곳이 남아있다. 경복궁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태조가 처음 세운 궁궐이어서, 조선시대에는 특별히 정궁으로 불렸다. 고종 중건 당시인 1868년에 7,800여 칸 규모의 건물로 가득 차 있었던 경복궁은  일제강점 36년간 야만적인 철거, 훼손, 개조 등을 겪으면서 원형을 크게 상실하였고, 그 결과 근정전과 사정전, 자경전과 제수합, 경회루와 향원정, 궁성과 건춘문, 신무문만이 남게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전경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일제가 세운 총독부 청사와 시설물들을 40 여 년 이상 재활용하는 바람에 궁궐의 복원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발굴과 복원을 거쳐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회복시킨 것이 기폭제가 되어, 경복궁 중장기 복원계획이 수립되었다. 1990년 마침내 침전 영역 발굴조사가 시작되었고, 이후 30 여 년간 경복궁 전역에 대하여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직후에 침전, 동궁, 혼전, 건청궁, 흥례문과 영제교, 소주방, 영추문, 광화문, 취향교 등 건물, 다리, 물길 등이 차례로 복원되었다.   

경주, 부여, 익산 등지에서 실행된 신라와 백제 유적지의 발굴은 복원을 전제로 실행된 적이 거의 없었고,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의 복원 시도는 번번이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서울의 조선 궁궐에서는 주목할 만한 반발 없이 복원공사가 속행되었다. 범정부 차원의 목표인 ‘일제강점기의 피해 극복’이라는 명제를 거부하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고궁연화 전시실 입구


국립고궁박물관의 이번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 특별전’은 발굴과 복원이 현실에서 언제나 양립할 수 있는 명제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경복궁 건물지 발굴 성과는 그동안 발굴조사보고서 형태로 간행되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주요 소재로 다룬 소주방 터와 흥복전 터의 발굴조사 내용은 『경복궁 발굴조사보고서 1, 2, 3』(2008)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그런데 경복궁과 관련하여 발굴조사 내용은 물론이고 복원 과정을 전시 주제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건물 복원은 성급하게 실행에 옮겨져 온 반면, 학술적인 정리를 통해 학계에 자료를 제공하고 연구에 활용하도록 하는 노력은 그만큼 소홀했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고궁연화(古宮年華)’라는 제목 아래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Ⅰ. 바람이 문을 쳐도, Ⅱ. 진흙 속에 묻혀 누운, Ⅲ. 오백 년 거룩한 공, Ⅳ.봄 얼음 처음 녹고”  등 문학적 줄거리 안에 각각 흥복전의 복원, 소주방터의 발굴, 강녕전의 복원, 근정전의 수리를 내용으로 삼고 있다. 


흥복전 수인문 현판


흥복전은 왕대비 철인왕후(철종 비)의 침소로 아미산을 경계로 교태전 뒤쪽에 마련된 침전이다. 다만 1873년(고종 10)과 1876년 두 차례의 화재로 대왕대비전인 자경전, 왕과 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 영역이 모두 불타버린 뒤 창덕궁으로 옮겨갔던 왕실이 1885년(고종 22) 복구하지 못한 경복궁으로 서둘러 돌아오게 되자 궁궐 뒤편에 머무르게 되면서, 5년간 임금이 정치를 하는 장소로 적극 활용되기도 하였다. 현판이 전시된 수인문은 1888년 7월부터 11월 사이에 11차례 임금의 행차시 출입문으로 사용된 사실이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전시 설명문에서 흥복전을 ‘내전 영역의 편전’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한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일 것이다.


흥복전과 수인문의 위치(경복궁 배치도_ 부분,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소주방터 발굴조사 야장


소주방터 발굴 유물


이번 전시에서 발굴 과정과 성과를 집중해서 드러낸 부분은 소주방 터의 발굴과정에서 생산된 야장, 슬라이드 필름, 발굴평면도, 유물 등을 전시한 두 번째 방이다. 여러 형태의 진열장에 도자기편, 기와편, 철물 등을 전시하고 특별히 궁중에서 사용한 그릇임을 알리는 글씨를 새긴 백자편을 따로 전시해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룬 소주방은 강녕전 동편의 내소주방, 외소주방, 생물방으로 구성되어 임금의 식생활을 담당했던 장소만을 가리킨다. 경복궁 안에는 중궁전, 대비전, 동궁을 위한 소주방이 각기 다른 영역에 따로 존재하였으며, 경회루 뒤편 태원전과 문경전 영역에는 상례를 치를 때 사용된 소주방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은 지나치고 있어서 아쉽다.



강녕전 복원도 청사진과 달빛. 별빛


제목에서 ‘오백 년의 거룩한 공’을 내세운 3번째 방은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의 복원을 주요 소재로 삼되, 어두운 방에 빛바랜 청사진 도면을 바닥에 눕힌 대신 좌우의 긴 벽면 전체와 천정 일부에 영상을 투사하여 달빛과 별빛이 쏟아지는 밤 시간의 침전을 시각화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조화를 시공간적으로 담아내려고 애썼던 선인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건물 복구 이후에 추구해야 할 진정한 역사 회복에 대한 염원을 시적 영상으로 담으려고 한 것일까.


향원정과 근정전 옛 부재


복원공사에 쓴 연장과 기와. 취두 제작


조회를 비롯하여 비중 있는 정치 활동을 펼치던 근정전은 “얼음이 처음 녹아 봄을 알리는 것처럼”이라는 제목 아래 네 번째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굳건하게 살아남은 근정전은 사실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중건한 지 140 여 년이 지난 2000년대 문화재청이 실시한 실측조사에서 건물 동남쪽 귀고주 2층 부분이 부러져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구조안전 진단 결과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해졌고, 2층 전체와 1층 일부분이 해체수리라는 대수술을 받고 복구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이 과정에서 폐기된 부재 가운데 주두 1점만이 전시되었다. 2층 지붕 속에서 나온 상량문을 비롯한 여러 유물은 상설전시실에 이미 전시되어 있기 때문일까. 전시를 마련한 이는 근정전의 수리에 기대어 궁궐의 회복과 경복궁의 찬란한 봄을 기원하고 있지만, 그러한 기원이 이유 있는 바람이라는 판단은 오히려 맨 끝 방의 초대형 진열장을 보고 난 뒤에야 내릴 수 있다. 복원공사에 참여한 장인들의 손때가 묻은 자귀, 톱, 대패와 같은 연장들, 기와를 만들던 와통과 제작된 기와들, 근정전을 수리하며 용마루 끝에 올리려고 제작한 거대한 취두, 향원정을 수리하면서 거둔 옛 부재 등이 책꽂이에 가득 꽂힌 책처럼 진열되어 있다.


경복궁의 사계(입체 다면 영상)


침전 마당의 밤하늘을 표현한 동영상과 궁 안에서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도록 제작한 마지막 방의 입체 다면 영상은 기획자가 생각하는 ‘경복궁의 찬란한 봄’을 아름답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발굴조사 31주년 말에야 비로소 열린 ‘30주년 기념 특별전’에 부족한 게 있다면 「경복궁배치도」(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각종 발굴조사보고서, 근정전 수리 당시 사진 등 기록물 전시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점과 일제강점기의 야만적인 훼손의 실상을 공진회니 박람회니 하는 명칭 속에 박제해 버리고 만 점 그리고 전시도록을 발간하지 않은 점 정도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2.05.1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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