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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작품들 속 서화 몇 장면 -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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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 어느 수집가의 초대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 간 : 2022.04.28-08.28

고 이건희 회장 개인의 미술품 컬렉션을 국내 각지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나누어 기증할 것이라는 삼성전자의 발표가 있었던 것이 작년 4월 28일이다. 별도의 미술관을 만들자는 논의에 전국이 들썩이면서 그 해 여름에 서둘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증 작품 전시를 열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난리 가운데서도 엄청난 성황을 이뤘다. 


아직 두 전시의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1주년을 맞아 이번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주관하는 기념전을 열었다. 두 기관에 기증된 작품뿐만 아니라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등에 갔던 작품들도 불러들여 전시품에 포함시켰다. 컬렉션의 성격도 기증품 내역도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토탈 장르에 걸쳐 있는 것처럼, 이번 전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들 또한 시기와 분야가 방대하다. 

방대한 전시품 영역을 꿰는 기획 의도는 기증자의 뜻을 기려 그 다양성을 살리는 방향이라고 한다. 시대별 또는 지역별, 주제별 전시가 어렵고 어떤 연구 결과를 보여줄 맥락으로 전시가 구성될 수는 없으니 종합적 스토리텔링으로 가야 했다. 전시 공간 전체를 둘로 나눠 앞부분은 관객 자신을 컬렉터의 집에 초대된 손님으로 상상하도록 기물이 있는 정원이며 다실 등으로 꾸몄고, 뒷부분은 수집품들 속에서 ‘인류’의 이야기 네 가지-자연과 교감, 자연의 활용, 생각의 전달, 인류발전의 원동력인 개인의 각성-를 주제로 했다.  




전시의 설계나 주제를 떠나서 역시 볼거리가 많아 잔칫상을 받은 느낌을 받게 된다. 영상이나 사인물 같은 곳에서 기증자에 대한 칭송이 과다하다고 여길 사람들도 있겠지만 평소 삼성전자 제품을 애용했던 사람들은 나름 뿌듯할지도 모르겠다. 이건희라는 인물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역시 대단한 수집품에 대단한 기증이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모네의 <수련>과 <인왕제색도>일지 모르나, 기증품 중 서화 부분만 들여다보아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사실 기증품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서화와 전적 부분이다. 그중 이 회장은 조선시대의 유명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글씨 중 좋은 것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던 터라, 앞으로 이러한 작품들이 각 국립박물관의 서화실을 종종 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전시에도 그 일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약용의 글씨와 율곡 이이의 글씨
전시 초반에 이번 전시로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정약용의 글씨가 있다. 강진 사람 정여주의 부탁을 받고 이른 나이에 죽은 그의 아들의 효와 며느리의 사연을 적은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이다. 정약용의 필치의 특징도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진에 유배가 있던 시절 부탁을 받고 열심히 그들의 이야기를 또박또박 써 주었던 정약용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작품이다. 글의 내용을 알아보지 못해 감동이 떨어질세라, 작품 옆 전자기기 화면을 터치해 한문 이미지를 밀면 그에 대한 내용이 딱 맞게 스크롤되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다. 
친분이 깊었던 세 학자, 율곡 이이, 성혼, 송익필이 주고받은 서신을 모은 삼현수간첩(보물)은 그들이 나누었던 성리학 토론의 내용을 알지 못하더라도 율곡 이이와 친구들의 부드러운 서간 글씨에 담긴 진지함을 상상할 수 있다. 


정약용(1762-1836) <정효자전> 1814년


조선 전기의 계회도, 세년계회첩
귀하디 귀한 조선 전기의 그림 중 상태가 훌륭한 계회도가 나와 있다. 이경엄이라는 이가 1601년 문과 과거에 합격했는데, 자신의 아버지 이호민을 포함, 아홉명의 급제자들 아버지가 23년 전 같은 해 사마시에 합격했었고, 이에 대를 이어 과거시험에 붙은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모임을 열고 1604년 계회도첩을 만들었다.


이신흠(1570-1631) <세년계회도> 1604년


이신흠 <사천장팔경도> 1617이전


세년계회 모임의 모습은 송현동(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근처) 이경엄의 집 후원에서 모인 장면이다. 같은 화첩 안에 그 이후 이호민-이경엄 부자가 자신들 집안의 별서인 양평의 사천장 주변 경관을 그린 그림과 주변인들에게 요청했던 시를 함께 실었다. 두 폭의 그림을 그린 이는 도화서 화원 이신흠(1570-1631)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유명 화원 이징과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근역서화징』에는 『이씨가보(李氏家譜)』를 인용하여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는데, 특히 초상을 잘 그려 붓을 들고 한번 그리면 거의 터럭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세년계회도 부분


신명연-이하응-김응원의 난초
전시장 한 켠 벽면 유리장 안에 세 폭의 난초 그림이 걸려 있다. 선비의 지조와 기개를 나타낸다는 난초나 대나무 그림을 알아보고 이해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난초의 성격을 고아한 선비의 인품에 부여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수없이 전해지는 난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명쾌한 설명은 어렵다. 20여 년의 간격으로 난을 솜씨 좋게 그린 세 사람은 각 시대의 미감을 조금씩 반영한다. 자하 신위의 아들 신명연(1809-1886)은 물가 바위에 피어난 난을 단아하면서 명쾌하게 그렸고, 난의 대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긴 다리 좌대 위의 생기 돋보이는 난초와 바위화분에 괴석 장식물로 화면의 무게중심을 조정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후배인 소호 김응원(1855-1921)은 엷은 채색의 영지를 곁들인 난초 그림으로 길상의 의미를 넣은 난화의 방향선회를 보여주었다. 


우로부터 신명연(1809-1886), 이하응(1820-1898), 김응원(1855-1921)의 난초. 제작연도는 각각 1862년, 1887년, 20세기 초반.



리움이 소장하고 있던 진재해 등 18세기 초 화원들의 채색인물화가 포함된 화첩도 마음껏 감상하고, 윤제홍의 손가락 그림 구담봉, 조선 말 색다른 화풍을 보여주었던 홍세섭의 물새, 남계우의 나비그림도 눈여겨 볼 만하고, 김규진의 대형 채색 대나무 그림도 멋지다. 채용신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 <채용신 평생도>를 통해 전통적으로 전해내려오던 평생도 양식이 대한제국시절 어떻게 변화하고 있었는지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홍세섭(1832-1884) <가마우지> <기러기> 



남계욱(1811-1890) <나비>




미상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일부. 


김규진(1864-1933) <난초, 대나무와 바위> 1922년


4개월간 진행되는 전시 기간 중 주요 서화작품은 1개월마다 교체된다. 작년 기증 직후 열렸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실에서는 <인왕제색도>와 <추성부도>가 나란히 걸린 모습을 보는 호사를 누렸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다. 두 작품 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이지만 1달 씩만, 번갈아서 걸린다. 두 작품에 이어서 대체 전시되는 작품은 박대성의 <불국설경>(1996)과 이경승의 <나비>(1919)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등장했던 수월관음도/천수관음보살도, 십장생도 병풍/해학반도도 병풍도 2개월씩 전시 후 바톤터치된다.

<추성부도>는 6월이 되어서야 나오니 현재는 김홍도도 없고, 이인문, 이인상, 김득신, 장승업의 작품도 한 점씩만 올라와 있다. 기증기념전이라서인지 전시의 전체 디자인에서 수집가의 존재감이 상당히 큰데, 그 때문에 각 명작들이 다소 위축되는 면 또한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너무 넓은 분야와 많은 양이다. 사람들의 궁금증과 관심에 부응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 이후에, 그것을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알리는 박물관 미술관의 활동들이 이어져야 기증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다.


이인문(1745-1824) <소나무 아래에서 폭포를 보다(송하관폭)>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의 근현대 기증품 전시실에서 “이 방에 있는 작품 값을 다 더하면 얼마인지 아냐”는 말을 흘깃 들었다.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람조차 일단은 유명하고 값비싼 그림에 한번 더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은 이해하지만 공공 미술관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는 조금 부끄러운 것 아닌가. 기증품에 대한 뜨거운 관심 중 일부는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된다는 옛 그림에 대한 새로운 애호가 생겨나는 데에도 나누어졌으면 좋겠다. 


이인상(1710-1760) <나무 아래 한가로운 담소(수하한담)>


이인상의 <수하한담>, 이인문의 <송하관폭> 같은 아름다운 그림들, 궁중채색화와 책거리 그림, 5월에 전시중인 교체작  <인왕제색도>와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에 대해서는 여기에 쓰지 못했다. 어렵게 얻은 관람의 기회이니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나만의 관람 공간을 잘 확보해 이 작품들의 감상에 시간을 쏟아야만 한다.  


* 본관 서화실과 기증관에도 이건희 기증품과 연관 전시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함께 감상하면 더욱 이해를 높일 수 있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2.05.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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