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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작가가 괴석을 다루는 법, 황창배의 돌그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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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이어진 황창배 20주기전의 마지막 챕터

전시명 : 황창배의 '돌' 그림전
전시기간 : 2022.5.2~5.31
전시장소 : 황창배미술공간
글/ 김진녕

황창배(1947-2001)의 <돌 그림전>(5.2 – 31)이 황창배미술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황창배의 작고 20주기인 2021년부터 2년에 걸쳐 4개의 챕터로 나뉘어 열리는 20주기 기념 전시의 마지막 챕터다.


1부 전시는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이 기획을 맡은 <의도를 넘어선 회화_숨은 그림 찾기>(2021.3.16 – 4.17), 2부는 김복기(아트인컬쳐 대표)가 기획을 맡은 <황창배의 '혼성HYBRID’>(2021.5.18 – 6.19), 3부는 김상철(동덕여대 교수)가 기획한 <筆의 變, 墨의 革>(2022.2.17 – 3.19)이었다.

매전시마다 대략 15점 안팎의 작품이 소개됐고, 네 명의 기획자가 각자의 안목으로 황창배를 소환하는 전시였다. 2부 기획 글에서 김복기는 “새로운 한국화는 수묵과 채색의 정신을 이어가면서도 사진, 입체,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조형방법론을 동원하는 작품이 나오고 있다. 한국화의 동시대성을 확보하려는 이른바 ‘혼성(hybrid)’의 조형이다. 이 혼성의 숲에서 한국화는 자기 정체성의 죽음을 불사하고 시공간의 층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혼성의 키워드를 황창배 예술의 종단면과 견준다. 황창배야말로 한국화 혼성의 원조”라고 표현했다. 3부의 기획자 김상철은 “황창배는 전통적인 수묵과 서구적인 아크릴의 병치, 혼합을 통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화면을 구축해 내었다. 재료의 확장과 더불어 수묵과 채색의 이분법을 무의미한 것으로 변혁시킨 그의 등장으로 전통과 현대에 대한 논쟁은 일단락이 되었다”라고 기획 글에서 밝혔다. 황창배의 작품이 20세기 후반 현대 한국화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전시로 보여준 셈이다.

 


이번 전시는 ‘돌’이라는 소재를 형상화한 작품만 모았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2년간 이어진 20주기전의 마지막 마디 기획을 맡은 송희경(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은 기획 글에서 “소정 황창배는 20세기 한국화의 변동을 이끌고 창작 영역을 확장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지필묵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조형성 탐구에 매진하면서도 옛 성현의 회화 이론과 예술성을 결코 잊지 않았다. ‘돌’ 그림에도 ‘전통’을 계승하고 소중하게 여긴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뚝 솟은 울퉁불퉁한 괴석에서부터 돌과 돌이 첩첩이 쌓여 형성된 산등성이에 이르기까지, 황창배 ‘돌’ 그림의 시각성은 매우 다양하다. 그는 때로는 과감한 부벽준으로, 때로는 경쾌한 필선으로 돌의 질감을 표현하였고, 농담을 활용한 파필과 발묵으로 산등성이의 입체감을 부여하였다. 황창배의 탁월한 예술성이 그대로 발휘된 창작물인 셈이다”라고 밝혔다.

 


‘돌 그림’의 다른 말은 <괴석도怪石圖>다. 고미술품 경매에서 매화도류나 산수도류 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게 괴석도류일 정도로 전통 회화에서 많이 그려진 게 괴석도다.
한반도에서 <괴석도>류는 18세기 이후 남종화풍의 문인화가 유행하면서 ‘돌’이 불변의 존재, 절개, 지조 등의 의미로 활용되며 널리 그려졌다. 강세황(1713-1791)이 자신과 같은 문인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물을 그린 <청공도>에는 붓과 벼루 등 직접적으로 글쓰기와 연관된 도구와 함께 괴석과 매화 분재가 등장한다. 강세황과 동시대 인물인 이인상(1710-1760)이 동료와의 모임 모습을 그린 <아집도>에는 매화분재와 괴석이 이들 모임의 주요한 장식 요소로 그려져 있다. 19세기 후반의 서화가 정학교(1832-1914)는 괴석이란 단독 소재만으로 장식성이 극대화된 괴석도류를 그려 인기를 누렸고, 정학교 바로 아랫세대인 안중식(1861-1919)과 조석진(1853-1920)은 20세기 초에도 중국 북송시대의 괴석 애호가이자 서화가인 미불(1051-1107)의 일화를 취한 고사인물화인 ‘미불배석도’류를 그렸던 것도 18세기에 불기 시작했던 괴석 완상이란 트렌드가 20세기 초에도 여전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시장에 걸린 황창배의 돌그림은 그가 왜 한국화의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는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1979-81년 사이에 그려진 황창배의 돌 그림에는 18세기 이후 남종화풍의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괴석도 장르의 컨벤션을 따르는 대신 현대 회화에서 자주 시도되는 면과 공간, 물성에 대한 탐구나 거대한 암벽 옆에 벌거벗은 몸이 목욕을 하는 농담을 곁들이는 등 20세기 후반을 살아낸 그만의 세계와 시각이 들어가 있다. 기미년(1979) 오월에 제작된 작품에 황창배는 돌과 물의 대조적인 물성을 화면에 함께 구현하고 그 위에 '나는 믿는다 지구의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예술의 지역성은 존재한다고'라고 썼다. 정학교풍의 장식성이 강한 세로형 괴석도를 연상시키는 길죽한 돌을 묘사한 그림에 황창배는 ‘날마다 넓어지는 무한의 땅’이란 인장을 새겨서 찍어놨다. 그가 전통적인 소재를 채택하면서도 전혀 다른 새로운 한국화의 땅을 만들어 놓았듯이 말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2.07.0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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