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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후 한국 채색화의 변화와 확산

전시명 : 현대 회화에서 살아남은 민화 유전자를 보다 <생의 찬미>전
전시기간 : 2022.6.1 ~ 9.25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글/ 김진녕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9.25)이 열리고 있다. 양화 위주의 전시로 짜여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랜만에 열리는 한국화 전시다.

 

1.

주최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하고, 각 역할별로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 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 80 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시에는 제15대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0여 명이 참여한다. 송규태, 오순경, 문선영, 이영실 등 현대 창작 민화 작가 10 여 명도 참여하는데 그중 3인 작가의 커미션 신작을 포함하여 13점이 최초로 공개된다”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크게 ‘벽사’와 ‘길상’, ‘교훈’과 ‘감상’ 등 네 가지 주제, 6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전시장 안내원이 본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동영상 코너를 꼭 보고 가라고 권했다. 이 코너는 ‘마중’이란 이름이 붙은 코너로 스톤 존스턴 감독의 영상 <승화>를 틀어주고 있다. 처용무는 한국에서 천 년 이상 전해진 문화 유산 중 외부 유입물이란 딱지가 떨어지지 않고 전승되어 온 거의 유일한 전통 문화 유산일 것이다. 문화란 현상이 외부 유입과 토착화-내재화, 전승이란 길을 밟는데 처용무는 유독 처용이 외부인이고, 평범한 이웃이 아닌 금강역사 같은 수호신 역할을 하는 특별한 캐릭터라는 게 희석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 <승화>는 그 처용무를 영상으로 담아냈다. 문화의 외부 유입과 토착화, 전승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2.

본 전시는 <벽사僻邪>로 시작한다. 거의 모든 문명에서 시작되는 미술의 발화점이 ‘채색화’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까. 사람의 힘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든 것이 악으로 규정됐을 것이고, 거기엔 죽음, 재난, 가난, 굶주림, 질병 따위가 포함될 것이다. 그런 악을 이겨내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 채색화에도 담겨 있고, 이는 채색화가 한반도 거주자의 오래된 ‘그림’이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들머리에 놓인 중동에서 발원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봤음직한 신상호 작가의 <Totem>이나 한애규의 <기둥들>을 보면 이 전시가 ‘채색화의 전통’이 아닌 그림(채색화)의 시원에 담겼던 욕망과 그 유전자가 현대에서 어떤 식으로 계속 활용되는지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런 전통 유전자의 변형과 확산에 대한 관심은 <욕불구룡도>나 현대 작가가 제작한 <오방신도>,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의 <수기맹호도>, 민화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매화책거리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한국 채색화는 조선의 부흥기인 18세기에 왕실 행사도와 요지연도나 곽분양행락도, 모란병풍도, 책가도, 고사인물도 등 궁중장식화의 대량 제작으로 붐을 맞이했고, 19세기 이후 조선 전역으로 확산됐다. 미술사에서 18세기 전반은 정선(1676-1759)이 있고, 후반에는 김홍도(1745-1806)라는 두 걸출한 화가가 있다. 둘 다 직업화가였고, 겸재는 영조의 치세에서, 김홍도는 정조의 치세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겸재는 죽을 때까지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다가 말년에 그의 대표작 <인왕제색도>(1751)를 남겼다. 반면 단원은 한때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확인이 안 될 정도로 말년을 곤궁하게 살았고, 생계를 위해 지방을 전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대를 대표하는 조선 화단의 두 슈퍼스타의 말년이 지극히 대조적이었던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성향이나 상황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조선의 당시 상황이 달랐다는 점도 한 몫 했었을 것이다. 조선의 경제적 상황은 영조 치세에서 꼭지점을 쳤고 정조대에는 정체기에서 하강기로 전환됐다. 대신 정조 말년에 신도시 건설(화성) 등 대규모의 재정지출이 수반하는 토목공사를 벌였다.

‘생계를 위해 말년에 지방을 전전했다’는 단원의 에피소드는 중앙 화원의 그림을 받기 위한 수요가 지방에 상당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양의 그림 문화가 지방으로 퍼져나가던 사례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생의 찬미> 전시는 18세기 이후 한국 채색화의 흐름 중 중앙화단의 성과라 할 수 있는 궁중 행사 기록화나 궁중 장식화를 비켜가고 있다. 대신 그 시절 조선의 엘리트 층에서만 누렸던 채색화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면서 등장한 이른바 ‘민화적인 요소’가 섞인 유물이 주로 채택됐다. 그래서일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궁중장식화 계열의 작품은 전시품 리스트에 없다. 대신 여러 기관에서 작품을 빌려왔다. <욕불구룡도>나 <매화책거리도>, <흥천사 감로왕도>, <목단괴석도>가 그런 예이다. 왕실기록화인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고려대박물관 소장품)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화원이 그린 정통 궁중회화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3.

전시 작품의 수량면에서 봐도 19세기나 20세기 초반의 유물로 보이는 작품보다는 현대의 작가명이 확실한 작품이 압도적이다. 세 번째 섹션인 ‘정원에서: 십장생과 화조화’에서는 전통적인 길상화인 십장생도와 모란도 등 19세기 작품과 오승우의 유화 <십장생도>와 소치의 묵모란을 연상시키는 김은주의 <가만히 꽃을 그려보다> 등 전통 채색화와 전통의 길상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그림이 함께 전시됐다. 높은 층고의 열린 공간 중앙홀에 설치된 네 번째 ‘오방색’ 코너에는 김신일이 폴리카보네이트와 에폭시로 만든 반원형의 설치작품 <오색사이>(2020)와 이정교의 거대한 네 마리 호랑이 작품 <사·방·호>가 놓여있다. 두 작품 모두 오방색을 활용한 작품이지만 온도는 현대적으로 차갑게 세팅된 작품이다. 다섯 번째 ‘서가에서: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에서는 <매화 책거리도>(8폭 병풍)와 동영상 작품, 현대적인 타이포 등 예상 가능한 문자도의 모든 종류가 나와 있다.

 


4.

아카이브 코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시절 조자용과 이우환의 성과다. 특히 이우환의 1970-80년대 민화컬렉터이자 연구자로 이름이 높았던 이우환의 관점을 아카이브 코너와 도록을 통해 길게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아카이브 코너에 그가 민화연구자 조자용과 함께 편저자로 나섰던 일본 고단샤 발행의 <이조의 민화>(1982) 등 여러 책자를 소개하고 그가 민화론을 시각적으로 투영한 <관계항> 소품 한 점도 걸었다. 또 도록에는 서윤정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논문 <민화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 이우환의 민화론과 민화컬렉션>을 실었다. 이 논문에선 1977년 그가 펴낸 <이조의 민화: 구조로서의 회화>에 담긴 민화를 바라보는 이우환의 시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이우환)에 따르면 조선의 민화는 ‘생활에의 미술’이요. ‘지방의 무명 방랑화가’가 ‘생활공간’을 위해 제작한 ‘구조적 역할’을 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우환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민화의 회화성에 주목하여 민화에 나타난 구조적인 특징과 조형적인 요소를 보다 분석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특히 민화의 무명성과 생활공간과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이우환의 분석은 실상 그의 미술이론에서 종종 사용되는 관념적인 용어들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주창된 민화의 무명성이 신선하고 자유로움의 발로로서 강조된 반면, 이우환에게 있어 민화의 무명성은 근대적 개념의 자아 중심적인 환영에 대해 거부인 동시에 공간과의 상호 관계를 성립하게 해 주는 투명한 틀로서 기능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조선의 그림은 그 자체는 결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거나 상품적 가치를 지닌, 귀중하고도 특별한 존재로는 생각되지 않았고, 항상 방의 일부분으로서 일상생활의 장면에 몸을 드러낸다. 화가가 개성을 드러내거나 환영적인 재현을 거부함으로써 민화는 생활의 공간으로 스며들어 공간의 일부가 되며, ‘보는 이의 시선을 투명, 무화시키고 안도감과 해방감을 북돋게 하는’ 것이 된다. 불완전하고 존재감이 빈약한 미완성품인 민화는 생활의 공간으로 돌아올 때, 그 상호관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며 그 조그만 방을 열려진 장소로 느끼게 하는 ‘투명한 구조적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시각의 투명화와 오브제 사상의 해체로 발전된다. 이는 그림이 자기 완결성을 포기하면 ‘시선을 통과시키는 안경과 같은 단순 명쾌한 매체로 전환되고, 이는 표상 작용에 의해 조작된 ‘대상’의 윤곽에 사로잡히게 되는 근대적 의미의 ‘작품의 세계’를 넘어서는 것, 세계를 외부성에서 떼어내 작가의 구상 비전으로 추상화하고 물상화하는 근대 미술의 오브제주의적 사고를 극복하여 대상 자체를 투명케 하는 언저리의 퍼짐을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이우환 예술의 지향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민화에 보이는 불완전한 요소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도형은 그림 자체를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당장에 투명화되고 그 주변까지도 무화되며 그것을 뚫고 헛나간 시선은 허공에 떠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지양했던 근대적 표상으로서의 허구세계와 오브제적 사고가 사라지는 지점에 민화가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중후반 민화를 모으고 연구했던 이우환은 2001년 소장품 127점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기탁했다. 그리고 그는 민화의 미학을 내재화시켜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을 장식하는 현대미술의 대가가 됐다. 민화의 유산을 어떻게 현대화시키고 내재화시켰는지에 대한 성공사례이자 민화가 여전히 현재형의 문화 현상인 이유이다.

 

5.

전시의 시작과 끝을 현직 종교인이자 작가인 성파의 대형 작품으로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첫번째 섹션의 가장 큰 작품은 <대호도>를 옻칠 그림으로 번안한 <수기맹호도>였고, 마지막 섹션에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사람으로 해석한 성파의 <금강전도>가 걸려 있다. 전통 채색화(민화) 진영의 생존 화가 중 송규태 작가도 스케치격인 <호작도 하도>(1980)와 <서궐도>(2014) 등 두 점을 출품했지만 전시의 시작점과 종점에 놓인 것은 성파의 작품이란 눈에 띄었다. 

 

<생의 찬미>는 제목에 ‘채색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채색화의 한 갈래라 할 수 있는 ‘민화’에 방점이 찍힌 전시이고, 전체적인 작품 비중을 따지면 ‘전통 민화’에 집중했다기 보다는 민화에 등장하던 시각 기호와 아이디어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현대 작가의 전시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2.12.04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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