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미술 전시리뷰
  • 공예 전시리뷰
  • 한국미술 도서리뷰
  • 미술계 이야기
  • On View
  • 학술논문 브리핑
타이틀
  • 서예와 추상미술을 잇다 <우석 최규명 기획전 꿈틀대는 산>
  • 415      

전시명 : 우석 최규명 기획전 : 꿈틀대는 산
장 소 : 아트레온 우석뮤지엄
기 간 : 2022.8.27.~9.7

붓이 위에서 춤을 춘 듯한 무채색의 강렬한 추상화 같은 그림들이 전시장에 가득하다. 아주 굵고 큰 붓에 물기 없는 짙은 먹을 이용해 거칠게 그린 산, 그리고 산 위에 빙글빙글 돌려 칠해진 것은 구름일 것이다. 구름과 산. 들여다볼수록 ‘구름 운’[雲]자와 ‘뫼 산’(山)자이다. 이것은 그림인가 글씨인가. 높이 솟아오른 절벽같은 산 아래 굽이쳐 흐르는 물이 있다. 이 또한 山과 水자이다. 



<雲山> 125x63cm, 종이에 먹


<山水> 125x63cm, 종이에 먹


문자, 글자 속에 이미 담겨져 있는 뜻을 확장시키고, 글자의 생김새와 인지 구조 속에서 사물의 모양과 의미를 담은 새로운 모티브를 연결해 사용한다. 

한자의 생성 원리를 가르쳐주는 학습지 그림 같기도 하면서, 원시적인 힘이 느껴지는 화폭에서 현대 모더니즘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떠올릴 수도 있다. 시각에 몰입하며 감상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아마도 어떤 이들은 숨은그림 찾듯 글자를 찾아내어 그 문자와 일대일대응하는 사물의 이미지와는 얼마나 닮았는지, 그 의미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슈빙(b.1955)을, 누군가는 마더웰(1915-1991)을, 누군가는 이응노(1904-1989)를 머리 속 작가 폴더에서 꺼내 비교하며 감상할 수도 있다. 

작가 최규명(1919-1999)은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주는 의외의 작가다. 한국 미술의 계보 안에 자신의 자리를 아직 찾지 못했는데, 이는 현대 추상미술에서 한국적인 것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 것도 아니고 근현대 서화가 중 한 문하에서 배워나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이동국 큐레이터의 말처럼 “우석 스스로 전통과 현대, 내재와 외래의 이분법적인 편가르기 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우석 최규명은 전통의 서예와 전각을 깊이 있게 오랜 시간 수많은 종이와 먹을 써서 연구하고 소화하며 자신의 것을 찾아갔다. 상형문자, 비문을 비롯해 과거 명필의 글씨를 스승으로 삼아 탄탄한 기초를 닦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는 중국의 유명한 시들을 행서로 써 내려간 전형적인 서예 작품도 포함되어 있으나, 작가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했던 문자 그림같은 작품들, 즉 갑골문, 종정문과 같은 고대문자의 필획과 구조를 행서나 초서로 전환시킨 그림이 가장 주목된다. 


<범 호虎> 64x375cm


글의 대소, 어구의 순서는 이미지의 구성에서 잠시 자리를 내줄 때도 많다. 굵고 가는 필세, 강한 힘과 속도로 뻗은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의 획, 먹의 농담으로 조절하는 까칠하거나 부드러운 관계가 다이나믹하게 이뤄지는 공간이 그의 화면이다. 틀림없이 많은 시도 끝에 성취한 이 필묵의 문자 그림 세계는 동시대의 어느 작가와 비교해도 자신의 얼굴과 성격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다. 


<청산백운인> 전각


우석이 직접 새긴 전각을 이용한 작품 속 인장들


아래 층에서 전시되고 있는 가로 7미터의 대표작 <산홍산山虹山>은 글자 그대로 ‘산-무지개-산’의 조형을 일필휘지로 과감하게 그려냈다. 백두산과 한라산을 무지개다리로 이어 분단의 현실과 통일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산홍산>처럼 페인트로 그려낸 또 하나의 작품 <인내천 천내심人乃天 天乃心>은 ‘사람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바로 마음’이라는 천도교 중심 사상을 형상화 한 것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산홍산山虹山> 100x700cm, 광목에 페인트(oil pigment)



<인내천 천내심人乃天 天乃心> 200x110cm 목판에 페인트(oil pigment)



문자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용되면서 그들의 문화가 그 안에 쌓여 의미가 더해진다. 한반도에 살아 온 사람들과 한자는 과거와 지금의 관계가 다르고 기능이 다르다. 하지만 무시하거나 잊을 수는 없다. 시각 예술 활동의 모티브로서 한글과 함께 표의문자 한자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서예가, 미술 작가들이 많이 있을까. 혹시 한국에서 한자 서(書) 예술은 스러져가는 것일까. 우석 최규명의 작품은 서예사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 서화의 전통이 예술 카테고리의 희망적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현대미술에서 카테고리는 의미 없을까.)

서화 예술이 사라져간 옛 것이 될지 우리의 것으로 새로이 이어질지의 갈림길에서 독자적인 길을 걷던 한 예술가의 흔적을 잊기에는 너무 아쉽다.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촌 로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이 전시장에 들러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며 즐길 만한 컨텐츠가 되는 데 우석의 흥미로운 붓글씨 그림이 부족하지는 않아 보인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2.12.04 02:41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