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미술 전시리뷰
  • 공예 전시리뷰
  • 한국미술 도서리뷰
  • 미술계 이야기
  • On View
  • 학술논문 브리핑
타이틀
  •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 이기봉 개인전 'Where You Stand'
  • 179      

전시명 : WHERE YOU STAND
장 소 : 국제갤러리 K1, K2
기 간 : 2022년 11월 17일~12월 31일
글/ 김진녕

국제갤러리에서 이기봉(b.1957)의 개인전 Where You Stand(2022.11.17- 12.31)가 열리고 있다이기봉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고려대 미대 교수를 지냈고 2016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갤러리 K1, K2를 채우고 있는 50여 점의 그의 근작은 얼핏 수묵화로 그린 풍경화(산수화)를 연상시킨다화면 가득 안개가 끼어있고그 사이 어슴푸레하게 모습을 드러낸 나뭇가지는 먹물의 번짐을 이용해 습윤하게 표현된 산수화를 연상할 수도 있다회색톤으로 일관하며 희미한 명도차로 실루엣을 표현한 사진작가 민병헌의 두물머리 시리즈가 떠오를 수도 있다.

물론 이기봉은 수묵화가도사진작가도 아니다그는 서양화를 전공했다이번 전시에 몽환적으로 보이는마치 안개가 낀 물가 풍경으로 보이는 작품은 회화이자 설치작품이기도 하다화면이 담고 있는 흐릿한 질감과 경계는 안개가 피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이는 캔버스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플렉시글라스(얇은 아크릴 판또는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겹쳐 올려 두 개의 이미지를 덧댄 결과이다.



이기봉의 본질과 환상캔버스의 기능(역할)에 대한 주목환상성을 인지하는 태도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가생활 내내 이어지는 주제다지난해 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시대를 보는 눈>전의 1980년대를 다룬 섹션에는 레알리떼서울의 일원으로 활동한 이기봉을 소개하면서 이런 설명글을 달았다.


이기봉은 존재의 본질과 환상물질과 정신기억의 생성과 소멸 등의 문제를 작품에서 다루는데그 중에서도 날 것에 대한 개념에 천착해 왔다. ‘날 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원초적인 것마지막까지 변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이에 따라 초기에는 회화의 날 것즉 캔버스의 성질에 주목하는 작품을 제작했으나 이후에는 회화의 재료에 주목하기 보다는 작가 내면의 본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걸린 안개 낀 풍경을 아무리 쳐다봐도 또렷한 시각적 이미지를 얻을 수는 없다그가 제시한 것이 안개낀 듯한 풍경 속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기봉은 이번 전시회를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회화는 일종의 기계다나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회로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내가 만든 회로를 통해 환영이 만들어질 때 뭔가 좀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는 말을 했다그는 전시회 제목인 ‘너는 어디에 있는가’(WHERE YOU STAND)가 무엇을 가지고 인식하는가’, ‘제대로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이어진다며 결국 그림자를 가지고 인식하는 것이다내가 서 있는 곳의 그림자내가 서 있는 곳의 파편을 보는 것이다예술가는 팬텀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내 작품이 팬텀을 만들어내는 기계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작가 스스로는 미술가보다는 ‘몽상적인 이미지의 예술을 만들어낸 공학자(engineer)’라 생각한다고팬텀이나 안개 속의 풍경이 그의 오랜 관심사인 것이다.



그는 환영의 회화유령 이야기’(아트인컬처 2014 12월호)라는 글을 통해 이에 대해 직접 쓰기도 했다.


누군가 말했던가, '사실적 환각을 다루는 화가는 세계의 살을 가공하는 자'라고(이 말 또한 매우 공학적이다). 그의 말을 빌어 내가 생각하는 회화적 속성을 '입자적 가공', '주름적 가공'이라는 다소간 즉흥적인 개념으로 분류하는 것이 유용한 방식이 될 것이다입자적 가공으로서의 그것은 조르주 쇠라를 연상하면 될 텐데그것은 사물과 공간의 경계를 흩트리고 주체의 시야를 흐리는 '모든 것이 입자로 분쇄되기', '대기와 심연으로 산포되기'와 같은 파노라마적 특징 때문에 필연적으로 풍경적이다또한 그 풍경적 배치로 인해 연극적(혹은 시학적)이며유동적 속성으로 인한 시간성은 부수적이다이 세 가지 속성의 회전은 선풍기의 그것처럼 환영을 낳게 되는데나는 그것을 유령(ghost)이라 부른다.”


어디에도 없지만그걸 꿈꾸는/설계하는 사람의 눈에는 어디에도 보이는 게 환영이다동아시아권에서 근대 이전에 그려진 수묵 산수화도 일종의 환영이자 이상향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표출로 볼 수 있다전시를 주최한 국제갤러리 쪽에선 '이기봉은 회화와 설치를 넘나들며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구조 및 흐름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실험해왔다지나간 시간과거에 대한 향수와 함께 덧없는 순간에 대한 갈망을 역설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업은 무의식과 실재 및 환상 간의 언캐니(uncanny)한 균형을 생성한다많은 경우 몽환적이라 묘사되는 작가의 화면에 그려지는 풍경은 시간을 초월한 또 다른 차원의 풍경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선보인 작품 중 ‘Where You Stand’ 시리즈가 안개 낀 물가 풍경을 구상화풍으로 다뤘다면 ‘stand on shadow’ 시리즈나 ‘black mirror’시리즈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가져온 글귀를 보이지 않는질감으로 드러나는 배경으로 깔거나 형체를 거의 없애고 점화처럼 묘사하는 추상 단계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갤러리 쪽에선 이기봉이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하는 것에 대해 '캔버스 뒷면으로부터 밀어낸 듯한 모양새로 쌓아 올린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는 모호한 형체의 풍경 뒤에 숨어 또 다른 형태의 막으로 기능하며 우리를 둘러싼 불확정성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안개가 낀 물가 풍경이나 물비늘에 일렁거리는 나무 그림자는 순간에 존재하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현상이다전시장을 채운 이기봉의 회화는 이 덧없는 순간을 그만의 방식으로 미분해 들어가 심상과 환상추상과 구상 사이의 순간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3.01.31 07:15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