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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불교회화명품선 두 번째, 1310년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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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택, 『고려 1310년 水月觀音圖(수월관음도) - 唐津 鏡神社(가라쓰 가가미진자)』(한국 불교회화명품선2)
      한국미술연구소 CAS, 2021.7.

정우택 교수의 한국 불교회화명품선 시리즈로 혼가쿠지의 <석가탄생도>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된 작품은 일본 가라쓰唐津 시에 위치한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수월관음도>(1310)이다. ‘특별히 정치(精緻)하고 미려한’, ‘완벽하게 숙달된’, ‘섬세하고 유려한’, ‘동아시아 회화사를 웅변하는’ 등의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한 걸작인데다 크기도 크고(419.5x254.2cm) 화기를 통해 제작된 시기가 알려져 현재 남아 있는 기년명 수월관음도 중 시기도 가장 일러서 중요하고 귀한 그림으로 손꼽힌다. 



수월관음도, 고려 1310년 , 견본채색, 419.5x254.2cm, 일본 가라쓰 가가미진자



 
책에는 거대한 화폭에 가득찬 세심한 붓터치를 하나하나 확대 사진으로 담은 본 작품의 이미지만 130쪽 넘게 담겨,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사진과 인쇄)이 다소 버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큰 디스플레이에서 손가락으로 마음껏 확대하며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표현의 정교함에서는 종교적인 신심이 느껴질 정도여서 비단에 박혀 있는 무늬 하나, 장신구 구슬마다의 명암, 드문드문 금박 문양이 있는 반투명의 숄을 투과하여 보이는 살갗과 의복의 오묘한 색변화 하나하나가 눈길을 사로잡고, 710여 년의 세월이 만든 박락이 그 분위기를 더한다. 







도록에서는 이 수월관음도의 백미라고 여겨질 만한 봉황문을 강조, 다른 수십여 점의 불화와 비교해 놓았고, 발받침, 무릎에 걸쳐진 손, 구부린 팔 부분의 표현에 대해서는 같은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는 여러 곳의 수월관음도의 같은 부분 근접촬영 이미지를 나란히 보여주고 있다.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는 화면 왼쪽에 자리잡고 앉아 관음보살이 약간 왼쪽으로 틀어 오른쪽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인데, 현존하는 고려시대 수월관음도 (가부좌 또는 입상인 10여 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40여 점은 반가(半跏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무릎-허벅다리 위에 얹는)를 한 상태로 약간 오른쪽을 향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무릎도 일반적으로 오른다리를 왼쪽 무릎에 얹는데,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은 왼쪽 다리를 오른 무릎에 얹은 모습이기 때문에 다른 불화와 비교하기 쉽게 하기 위해 손,발 부분 등은 좌우반전한 이미지를 사용했다.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는 특히 사이즈가 너무 커서, 그에 걸맞는 전시환경을 갖추기가 어려운 까닭에 일반에 쉽게 공개될 수가 없었다. 후반의 논문에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의 내력을 정리하고 있어 일반에 알려진 상황을 알 수 있다. 

1812년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 『측량일기』에 최초 기록
1954년 실물 공개(가라쓰 시립도서관)
1969년 히라타 유타카(平田寬) 「鏡神社所藏 楊柳觀音画像」최초 소논문
1971년 일본 중요문화재 지정
교토 국립박물관 국보수리송서 수리, 표장
1979년 화기 확인
1995년 호암갤러리 《대고려국보전》 출품
2003년 샌프란시스코 동양미술관《고려시대전》출품
2004년 규슈국립박물관 개관전 출품
2009년 통도사성보박물관 특별 전시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는 기탁처인 사가현립박물관에서 연 1회 공개된다고 한다.)


그림이 자주 나들이를 하지 않으므로 누군가 그대로 복원-모사도를 전통 방식으로 재현하여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모사본이 제작된 바 있다. 1993년 10월 개관한 가라쓰 (사가현립佐賀県立) 나고야성박물관名護屋城博物館 전시를 위해 특별제작된 것이다. 4명의 작가가 1년 정도 작업했으며 손상부위까지도 원본과 동일하게 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도록에 모사도와 원본을 비교한 사진이 실려 있다. 

시리즈 첫 번째 책과 마찬가지로 확대 도판의 질과 양에 압도된다. 도록 후반부에는 두 편의 논문, 「唐津 鏡神社 水月觀音圖의 歷程」(정우택), 「14세기 고려 불화 속의 산수표현」(홍선표)과  최초로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에 대해 쓰여진 소논문으로 히라타 유타카(平田寬, 1931-2013)의「鏡神社所藏 楊柳觀音画像」(1969년)이 실려 있다.  『Elegant Gathering I a Scholar's Garden』(Berlin, 2015) 도록에 실린 영문 소개글(정우택)을 덧붙였다. 논문의 분량은 많지 않지만 가가미진자 관음보살도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최초의 소개 논문인 히라타 유타카(平田寬)의 「鏡神社所藏 楊柳觀音画像」(1969)에서는 표현기법과 전래사정이 면밀하게 제시됐고 이 때 화풍상으로 제작시기를 14세기로 추정했었는데, 이후 1979년에 1310년이라는 화기가 밝혀졌으니 놀라운 탁견이라 할 수 있다. (화기 발견은 기쿠타케 준이치菊竹淳一의 「高麗仏画にみる中国と日本」에서 소개) 

주 논문인「唐津 鏡神社 水月觀音圖의 歷程」은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가 공개된 이후 제작 배경과 표현 기법, 일본에 유입된 경위, 연구 성과 등에 대해 정리한 글이다. 1978년 일본 나라(奈良)의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에서 《고려불화 특별전》이 열린 것으로 대중에 그 모습을 알리기 시작한 고려의 불화는 그 이전에는 중국의 것으로 분류되는 등 제대로 된 연구와 가치 평가가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이 전시를 통해 고려불화가 독자 학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일본에만 상당수 전해지고 있음도 드러났다. 이후 국내의 관심이 높아져 1993년 호암미술관에서 《고려, 영원한 미-고려불화특별전》이 열리고 1995년 다시 호암미술관에서 《대고려국보전-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 I》에서 앞선 전시에서 출품되지 않았던 다수의 해외 소장 고려불화가 공개됐다. 여기에서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가 처음으로 신사를 떠나, 그것도 바다 건너 한국에서 공개된 것이다. 이후 일본과 국내에서 열렸던 고려불화 전시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논문, 출판을 통해 고려 불화가 일반에 소개된 예도 짚어 주었다. 최초의 소개글인 노부오 쿠마가이(熊谷宣夫)의 「朝鮮佛畵徵」(1967년),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에서 발행한 『高麗仏画』(1981년 2월), 중앙일보 “한국의 미”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高麗佛畵』(1981년 6월), 기쿠타케 준이치菊竹淳一, 정우택 공편 『高麗時代의 佛畵』(시공사, 1997) 등으로 차차 집대성되었다. 그 외에 베일에 표현된 봉황문에 집중한 연구, 화기에 등징하는 화사와 관직에 대한 견해, 화기에 근거해 화업을 담당한 조직에 대한 연구, 일본 전래 및 수용태도 등의 연구가 있다.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은 환경 등 때문에 이후 연구는 작품의 객관적 분석 의지가 엿보이지 않음을 지적했다. 

화기의 내용에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질이 뛰어난 당대 대표적 불화라서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연구 성과가 유달리 많은 편인데, 성과와 함께 오류도 지적했다. 괘불화의 시원을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에 둘 수 있음을 주장한 연구(문명대)에 대해서는 이 논문이 왜곡되고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음과, 이미 밝혀진 화가의 이름 김우(金祐)가 아닌 김우문(金祐文)이라고 서술한 점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외에 일본 연구자의 이름을 잘못 표기한 논문, 용어의 개념을 잘못 사용한 글, 일관성과 출처 없이 사진을 도용한 논문 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덧붙였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2.07.0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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