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화단에서 1세대 모더니스트이자 대표작가로 꼽히는 김환기와 이중섭, 박수근, 유영국, 장욱진은 88 서울올림픽 이후 서양화 위주의 한국 현대 미술 시장이 형성된 뒤 가장 스테디하게 거래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10여 년간 한국 경매시장의 작품 목록에 늘상 보이고, 2000년대 이후 신설 붐이 일었던 각종 공립미술관의 구매리스트에 첫번째로 올라가는 화가 명단이 이들이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작품 노출 빈도가 많고 각종 국공립미술관 전시에도 이들의 작품이 기본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정작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린 적이 없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지난 9월14일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장욱진을 처음으로 제대로 정리하는 전시다.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60여 년간을 시기별로, 작품 구도로, 기록물을 통해 장욱진의 미술활동을 총 정리하는 전시다. 그동안 다른 국현 전시에서 보였던 출판물 삽화나 표지에 사용됐던 장욱진의 그림, 1970년대 도예가 윤광조와 신상호와 협업해 선보였던 분청 도자화나 백자청화 도자화가 한자리에 모였고, 서예의 비백을 화면에 도입하고 묵화를 선보인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가 쓰던 납작한 서양화용 붓뿐만 아니라 둥그런 동양화용 붓과 전각가가 제작한 그의 낙관용 인장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유화, 먹 그림, 판화, 삽화 등 270여 점으로 구성됐다.
주최측은 장욱진에 대해 “장욱진 그림의 특징은 ‘지속성’과 ‘일관성’ 이다. 그러면서도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현재 알려진 작품만 헤아려도 유화 730여 점, 먹 그림 300여 점이다. 나무와 까치, 해와 달, 집, 가족 등 일상적이고 친근한 몇 가지 제한된 모티프 만을 평생에 걸쳐 그렸지만,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헸다. 또한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하면서도 서로 간 무리 없이 일체(一體)를 이루는 작품 세계를 보여줬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먹그림 병풍, 1981년경, 종이에 먹, 8폭 병풍, 개인소장
전시는 네 개의 큰 틀로 짜여졌는데 크게 보아 연대기적 틀을 썼지만 시대별 구성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각 전시장마다 주제에 맞게 각기 다른 시기의 작품이 등장하며 장욱진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첫 섹션 ‘첫 번째 고백’에는 그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이 나와있다. 장욱진 작품의 전형(典型)이 어떻게 진행되며 완성되었는지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음 섹션은 ‘두 번째 고백’. 그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인 ‘까치’, ‘나무’, ‘해와 달’ 이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 도상적 특징은 어떻게 바뀌고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해와 달과 호랑이> 1987,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닭과 아이> 1990, 캔버스에 유채,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세 번째 고백’ 섹션은 그의 7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작인 <진진묘眞眞妙> 1970년작과 1973년 작을 중심으로 장욱진이 심취했던 불교적 세계관과 묵화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진진묘 자체가 그의 부인 이순경의 법명인 만큼 그의 가족 관계와 생활인 장욱진을 살필 수 있는 작품이 여럿 나와있다. 일본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환수해온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인 <가족>(1955)이 여기에 배치됐다.
<가족> 1955, 캔버스에 유채, 6.8x18cm, 국립현대미술관
<나무와 가족> 1982,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네 번째 고백’은 그의 1970년대 이후, 노년기의 세계를 중점적으로 펼쳐놓고 있다. 장욱진이 평생 남긴 730여 점의 유화 가운데 80퍼센트에 달하는 580여 점이 이 마지막 15년 동안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70년대 초반까지 등장하던 클레를 연상시키는 구성적인 요소, 사람도 새도 조형성 강한 선으로 묘사되고 화면을 채우던 마티에르가 70년대 초반 이후에는 보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수묵화처럼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를 표현하면서 서예의 붓질 흔적인 비백이 대담하게 등장하고 남종화풍의 성근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세계가 펼쳐진다. 70년대 중반 이후 이전의 화면에 등장하던 까치와 나무, 집, 아이가 여전히 등장하지만 캐릭터의 묘사는 서양화 풍의 조형성에서 벗어나 수묵화풍 붓질의 세계로 바뀐다. 19세기-20세기 초까지 유행한 민화풍 산수화의 요소를 장욱진 식으로 소화해낸 작품이 대거 등장한다. 판화 작업을 함께 했던 김철순의 구장품으로 알려진 <무제>(1974>는 19세기 민화에서 보던 굵은 구부러진 선을 중첩시켜 산과 바위를 표현하는 방식이 매개체만 유화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쓰였고 등장인물은 화면 하단에서 물과 산 속에 묻혀있는 고사관수도를 연상시키는 경우가 그런 예다.
전시에 등장하는 수 백 점의 작품을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그가 마지막 시기에 제작한 몇 몇 작품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세계를 반추할 수 있었다.
장욱진의 인물은 대개 방에 앉아 있거나 바닥에 누워 와유하는 모습이다. 메인 캐릭터가 공중을 떠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말년인 1988년 작 <기도>나 <기도하는 여인>은 샤갈의 페르소나처럼 공중을 떠다니고 있다. 그가 세상을 뜨던 해인 1990년에 그린 <밤과 노인> 속의 노인은 창백한 달을 등지고 뒷짐을 진 채 검은 산 위로 떠올라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기도하는 여인> 연도 미상, 종이에 채색, 개인
장욱진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집은 대개는 담이 없고 늘 대청마루나 방문이 열려있다. 1989년에 그가 그린 <가족도>(1989)는 배산임수형으로 집 뒤에는 산이 세 개있고, 앞으로는 물길처럼 감싸 안고 있는 담장이 보인다. 산과 담장의 중간 고리가 화면에 표시되지는 않았지만 원형으로 이어지는 구도이고, 하얗게 표시된 담장에 만든 대문은 열려있다.
<자화상> 1986, 캔버스에 유채, 개인
그가 마지막에 그린 유화 두 점 중 하나인 1990년 작 <안뜰>에는 담장이 완전히 둘러쳐진 폐쇄형 집이 등장한다. 그 집에는 70년대 초에 사라진 선으로만 표시되는 방식의 인물이 방 안에 벽을 바라보고 기대앉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개는 늙은 남자와 함께 낮은 천정의 방안에서 나란히 있던 여성과 아이는 대문을 지키고 서있다. 여인과 아이는 70년대 중반 이후 장욱진 월드에 등장하는 표현법을 따르고 있다.
<안뜰> 1990, 캔버스에 유채, 개인
<밤과 노인> 1990, 캔버스에 유채, 개인
또 한 점의 마지막 유화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에는 두 채의 집이 등장한다. 한 채는 뒷모습인 듯 문이나 창이 없고, 다른 한 채는 봉분에 가까운 모습인데 문이 굳게 닫혀있다. 등장하는 인물도 없고 흐릿한 나무 안에 까치가 있고 해와 달은 여전히 선명하다.
<까치> 1958,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의 말년작은 이미 소식을 듣고 준비하듯 담담히 써내려간 고별사 같았다. 장욱진의 일생을 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