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노년기에 척질(戚姪)*이자 제자인 이당 조면호에게 보낸 것으로, 『완당전집(阮堂全集)』 「답조이당(答趙怡堂)」의 첫 번째 편지로 실려 있다.조면호가 선친[조기항(趙基恒)]의 비문을 부탁한 것에 대한 답신으로 보이는데 실제 비문을 지어주었는지는 미상이다.그리고 편지 심부를 한 시초(詩樵)는 이수민...
『완당전집』 제4권 「여김군[與金君, 奭準]」 네 번째 편지의 일부이다. 글씨를 쓸 때 허화(虛和, 비움 속 조화)가 중요하며 악착(齷齪, 집착)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편지 오른쪽에 [怡堂所藏]이라는 소장인이 있는데, 김석준에게 보낸 편지를 이당 조면호가 소장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조선 말에 동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도 다녀온 조인승(曺寅承, 1842~1896)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사헌까지 올라간 사람으로 일본이 내정간섭을 하려고 하던 때, 일본측과 협상테이블에 앉기도 하고 조선의 독자개혁 대신으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의병이 봉기했을 때 의병부대에 의...
앞에 소개한 편지와 같이 수신은 해남에 있는 김찬성이다. 발신지는 노서(鷺西, 노량진 서쪽)이고 발신일은 1849년 11월 10일인데,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 용산 쪽 한강 주변에서 지낼 때 쓴 것으로 보인다.수신인의 아들 몽(夢)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보이고, 해남 지역에 집안 소유의 농장이 있었는지 관...
제주 유배시절에 쓴 편지로 수신인은 전라도 해남의 김찬성(金贊聲)이다.김찬성에 대한 내력은 미상인데 그의 아들로 보이는 몽(夢)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아보인다.겉봉에 찍힌 봉인은 추사 편지 겉봉에 곧잘 보이는 인장이다.[겉봉]海南金贊聲家回傳靜浦 椷寄頃付一書, 卽收...
옥수 조면호가 한대(漢代)의 인장 등 중국의 인장에 대한 여러 가지 물음에 답신 형식으로 쓴 편지이다.(『옥수선생집(玉垂先生集)』 권28 「상김추사, 정희(上金秋史, 正喜)」 계해 참조)* 『완당전집』에 실려 있지 않은 귀한 자료이다. 역대의 인장사를 개괄하며 구체적인 내용까지 상세하게 언급한 데에...
이당 조면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완당전집』 제2권 「답조이당, 면호([答趙怡堂 冕鎬]」 제 3신 참조) 원나라 4대 화가의 한 사람인 왕몽의 작품에 대한 감정평이다. 추사는 청나라로부터 수입된 많은 서화 작품을 보고 관련 평을 남겼는데, 이 글 또한 그 가운데 하나로, 감정가로서의 추사의 면...
한 때 전서 글씨를 수집하기 위해 애쓴 적이 있는데,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하면서 말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전서 글씨가 인기가 없습니다. 구한말까지 전서나 예서를 쓰고 전각을 한 서예가가 꽤 있으나 지금은 많이 잊혀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구한말 전서를 가장 잘 쓴 사람으로 오세창(1864~195...
추사가 노년기 유배지에서 쓴 편지이다. 누상(累狀)은 ‘묶여있는 몸’이라는 뜻으로, 유배된 상태를 나타내는데, 이 편지 또한 누상이라는 표기가 있어 제주(또는 북청) 유배 시절에 쓴 것으로 확인된다. 아들 안부까지 묻는 것으로 보아 수신인은 평소 가까이 지낸 사람일 것으로 추측된다. 보내준 음식물에 대...
유한지의 전서와 예서이한진 이야기를 했으니, 전서로 유명했던 사람으로 당시에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 1760~1834)도 함께 언급해야겠네요. 유한지는 이한진보다 28살 어려 세대 차이가 있지만 연결고리가 꽤 있는데, 성대중(1732~1809) 등 두 사람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꽤 있어서 이한진과...
연도 표기가 없어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자신을 '누상(累狀)'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 제주 또는 북청 시절에 쓴 것으로 보인다. 보내준 음식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 내용이 남다르고, 수신인의 아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한 것이 눈길을 끈다. 歲新月圓, 懷耿尤深. 卽承良椷, 從審春正動履迓吉多祉...
조선 후기의 실학자 중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글씨는 크게 돋보이지 않지만 그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중 서예가라고 할 만한 사람으로 이한진(李漢鎭, 1732~?), 조윤형(曺允亨, 1725~1799), 유한지(兪漢芝, 1760~1834) 등이 있고 이덕무(李德懋, 1741~1...
추사 김정희가 노년기 과천 시절에 쓴 편지이다. 아석(我石)이란 사람에게 보낸 것인데, 그가 누구인지는 미상이다. 내용으로 보아 자신보다 한창 어린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 행간에 가득하다. 노년기 추사 글씨의 전형을 보여준다. [겉봉] 我石回見. 果答. 把我身心, 爲你煩惱. ...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노인이 되어서야 벼슬을 할 수 있었죠. 영조 때 기로과를 특별히 설치해 합격해서 평생의 한을 풀었을 겁니다. 이 때 또다른 기로과 출신으로 유명한 시인 석북 신광수(石北 申光洙, 1712-1775)가 있습니다. 신광수는 1772년 61세에 기로과 장원, ...
조영석(1686~1761) 또한 노론 중심부에서 이병연, 정선과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조영석의 형 조영복은 김창협의 제자로 도승지, 개성유수, 한성부우윤 등을 지냈지만, 조영석 본인은 대과 급제에 실패해 지방 현감 같은 낮은 자리를 전전하다 70이 넘어서야 당상에 오릅니다. 조영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