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이라 하면 사람마다 떠오르는 것이 여러 가지이겠지만, 야구팬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교야구대회 청룡기 쟁탈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46년 자유신문사는 야심찬 프로젝트 ‘청룡기쟁탈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를 개최했고 이 대회는 80년대 프로야구가 출범되기 전까지 가장 인기가 좋은 야구 대회였다.
전국의 까까머리 야구선수들이 갖고 싶어해야 할 바로 그 청룡기 또한 대충 준비하지 않았다. 자유신문사 측은 깃발에 자수로 새길 하늘을 나는 청룡의 바탕 그림을 이십대에 선전 추천작가에 올랐던 당대의 유명화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에게서 받았다. 그림 아래에 새겨질 휘호 ‘全國中等學校野球選手權大會 / 主催 自由新聞社’ 또한 당대의 명필이라 할, 후에 대한민국 국새 1호 인고를 쓴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1874~1951)에게 맡겼다.
성재 김태석의 글씨. 204.4x52.8cm, 남가람박물관
이 깃발은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직전 제 5회 대회의 우승팀 대구상업의 감독 김종경이 피난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집 마당에 묻어 보존될 수 있었고, 종전 후 1953년 10월 조선일보 주최로 대회가 재개되면서 땅 속에 묻혀 있던 청룡기가 몇 가지 수정을 거쳐(주최 조선일보사 등) 다시 세상에 나왔다.
동산고 3연패 후 행진 (동산고 홍보관)
3연패의 주역들(동산고 홍보관)
청룡기는 3연패를 했을 경우 해당 깃발을 영구 소장하토록 규정했는데 1955~57년 첫 3연패를 한 인천의 동산고등학교가 이 깃발을 영구히 가져갔다, 현재 동산고에 전시되고 있는 청룡기가 현재 가장 오래된 것이다. 자유신문사는 처음 청룡기를 만들 때 원화를 두 폭 수를 놓아 이를 겹쳐 양면 모두 그림이 보이는 깃발을 만들었다. 그런데 현재는 동산고가 두 폭으로 해체해 동산고 이사장실과 홍보실 등에서 각각 액자로 보관-전시한다고 한다.
김기창이 그렸다는 청룡 원화는 찾을 수 없지만, 그 모양새는 강서대묘 사신도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강서대묘 묘실의 네 벽은 사신이 지키고 있고 동쪽 벽을 지키는 것이 청룡이다. 남쪽의 문 양쪽에 있는 주작도 마찬가지고 백호와 청룡이 남쪽의 문을 향하고 있으므로 청룡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얼굴/머리가 오른쪽을 향하게 된다. (링크의 VR 참조) 그러니 청룡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면이 김기창이 그린 원본의 모습이라 추정해 본다.
강서대묘 청룡
깃발에서 볼 수 있는 청룡의 대표는 조선시대의 홍문대기(紅門大旗)라 할 수 있다. 홍문대기는 행렬에 쓰이는 의장기 중 하나로 붉은색 바탕에 청룡 문양이 들어간다(고궁박물관 소장품은 주황색에 가깝다). 왕의 의장 행렬 선두에서 좌우에 하나씩 배치되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고 왕의 상징 의장이 시작됨을 나타냈다. 홍문대기는 왕의 행차에만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홍문대기. 견. 253.2x188.8cm
직물 바탕 중앙에는 5개의 발톱을 갖춘 청룡이 똑바로 서서 위엄을 드러내고, 주위에 다양한 색의 구름문양과 여의주문을 둘러싸게 해 신비로움을 더했다. 홍문대기는 조선 전기 의장 행렬에서는 가장 앞에 서는 깃발이었고, 조선 후기에도 둑과 교룡기 다음에 세우는 중요한 깃발이었다. 이름은 홍문대기이지만 글자 ‘門’을 크게 쓰거나 문의 문양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중국에서는 비슷한 용도로 門이라는 글자를 적은 문기(門旗)를 사용했다.
용이 왕을 상징했든 어쨌든 기본적으로 용은 신성한 동물로 복을 불러온다고 했다.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행운만을 바라는 것은 좀 그렇고, 힘차게 열심히 바르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복 또한 찾아와 주길 기원해야겠다.
2014년 3연패로 덕수고가 영구소장하게 된 청룡기(©김영서)
용이 왕을 상징했든 어쨌든 기본적으로 용은 신성한 동물로 복을 불러온다고 했다.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행운만을 바라는 것은 좀 그렇고, 힘차게 열심히 바르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복 또한 찾아와 주길 기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