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추사의 ‘판전(板殿)’ 글씨 원본을 반으로 축소해서 걸어놓고 보니, 전혀 맛이 안 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추사가 어떤 글씨를 어떤 방법으로 쓸 때는 다 이유가 있고 그 목적에 맞게 쓰는 것입니다. 커다란 추상화를 실물로 보지 않고 작게 인쇄된 것을 보면 전혀 느낌이 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추사...
추사의 글씨는 너무나 유명하고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만큼 또 많은 사람들을 좌절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1978년, 우연히 추사 글씨 대련을 보게 됐습니다. 그 때 돈으로 2, 3백 만원 정도라 했으니 이삼 년 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꽤 가격이 있던 셈인데, 사도 괜찮은 것인지 어떤지 ...
경전을 연구하거나 문장을 지을 때 지켜야 할 기본 지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재능이나 기개를 앞세워 자신의 설을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걸 강조하며 이는 소동파나, 구양수도 모면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전 연구나 문장 작성에 대한 추사의 기본 입장이 무엇인 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서체의 흐...
추사가 자기보다 46세 어린 오경석(吳慶錫, 1831~1879)에게 보낸 편지이다. 『완당전집』 권 4 「여오생-경석(與吳生 慶錫)」에 실려있는데, 본 편지에 견주어 일부 글자에 출입이 있다.대대로 한역관을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난 오경석은 청나라를 오가며 많은 문물을 접하였고,우선 이상적의 제자로 시·서...
조선시대에 글씨 잘 쓴다 하는 사람에게는 비문 글씨를 부탁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당대에 어떤 글씨를 가장 높게 평가했는지는 비석의 글씨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요. 설정 조문수 또한 석봉체의 느낌이 강한 비석 글씨를 많이 남겼습니다. 조문수가 쓴 이기(李巙)의 묘비 글씨『근역서화징』 조문수 항목...
추사가 노년기에 척질(戚姪)*이자 제자인 이당 조면호에게 보낸 것으로, 『완당전집(阮堂全集)』 「답조이당(答趙怡堂)」의 첫 번째 편지로 실려 있다.조면호가 선친[조기항(趙基恒)]의 비문을 부탁한 것에 대한 답신으로 보이는데 실제 비문을 지어주었는지는 미상이다.그리고 편지 심부를 한 시초(詩樵)는 이수민...
『완당전집』 제4권 「여김군[與金君, 奭準]」 네 번째 편지의 일부이다. 글씨를 쓸 때 허화(虛和, 비움 속 조화)가 중요하며 악착(齷齪, 집착)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편지 오른쪽에 [怡堂所藏]이라는 소장인이 있는데, 김석준에게 보낸 편지를 이당 조면호가 소장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조선 말에 동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도 다녀온 조인승(曺寅承, 1842~1896)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사헌까지 올라간 사람으로 일본이 내정간섭을 하려고 하던 때, 일본측과 협상테이블에 앉기도 하고 조선의 독자개혁 대신으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의병이 봉기했을 때 의병부대에 의...
앞에 소개한 편지와 같이 수신은 해남에 있는 김찬성이다. 발신지는 노서(鷺西, 노량진 서쪽)이고 발신일은 1849년 11월 10일인데,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 용산 쪽 한강 주변에서 지낼 때 쓴 것으로 보인다.수신인의 아들 몽(夢)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보이고, 해남 지역에 집안 소유의 농장이 있었는지 관...
제주 유배시절에 쓴 편지로 수신인은 전라도 해남의 김찬성(金贊聲)이다.김찬성에 대한 내력은 미상인데 그의 아들로 보이는 몽(夢)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아보인다.겉봉에 찍힌 봉인은 추사 편지 겉봉에 곧잘 보이는 인장이다.[겉봉]海南金贊聲家回傳靜浦 椷寄頃付一書, 卽收...
옥수 조면호가 한대(漢代)의 인장 등 중국의 인장에 대한 여러 가지 물음에 답신 형식으로 쓴 편지이다.(『옥수선생집(玉垂先生集)』 권28 「상김추사, 정희(上金秋史, 正喜)」 계해 참조)* 『완당전집』에 실려 있지 않은 귀한 자료이다. 역대의 인장사를 개괄하며 구체적인 내용까지 상세하게 언급한 데에...
이당 조면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완당전집』 제2권 「답조이당, 면호([答趙怡堂 冕鎬]」 제 3신 참조) 원나라 4대 화가의 한 사람인 왕몽의 작품에 대한 감정평이다. 추사는 청나라로부터 수입된 많은 서화 작품을 보고 관련 평을 남겼는데, 이 글 또한 그 가운데 하나로, 감정가로서의 추사의 면...
한 때 전서 글씨를 수집하기 위해 애쓴 적이 있는데,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하면서 말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전서 글씨가 인기가 없습니다. 구한말까지 전서나 예서를 쓰고 전각을 한 서예가가 꽤 있으나 지금은 많이 잊혀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구한말 전서를 가장 잘 쓴 사람으로 오세창(1864~195...
유한지의 전서와 예서이한진 이야기를 했으니, 전서로 유명했던 사람으로 당시에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 1760~1834)도 함께 언급해야겠네요. 유한지는 이한진보다 28살 어려 세대 차이가 있지만 연결고리가 꽤 있는데, 성대중(1732~1809) 등 두 사람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꽤 있어서 이한진과...
연도 표기가 없어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자신을 '누상(累狀)'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 제주 또는 북청 시절에 쓴 것으로 보인다. 보내준 음식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 내용이 남다르고, 수신인의 아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한 것이 눈길을 끈다. 歲新月圓, 懷耿尤深. 卽承良椷, 從審春正動履迓吉多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