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한 편지의 수신인과 동일 인물인 전라도 해남의 김찬성(金贊聲)에게 보낸 편지로 보인다. 이는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몽(夢)에 대한 안부 언급에서 확인된다. 추사 집안이 해남 쪽에 도지로 내놓은 전답이 있다는 건 여타 편지에서 일부 확인되는데 여기에서도 관련 언급이 보인다. ‘후미진 강촌의 삶[江...
이재 권돈인추사의 주변인을 살펴볼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 1783-1859)입니다. 김정희가 1786년생이니 세 살 차이가 나는데 집안의 당색도 같고, 학문과 글씨에서 모두 추사의 친구라 할 수 있습니다. 권돈인은 높은 자리까지 빠르게 올라 영의정까지 지냈...
앞서 소개한 편지와 같이 이른바 강상시절에 전라도 해남의 김찬성(金贊聲)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전히 김찬성의 아들 몽(夢)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찬성으로부터 부탁받은 일에 처리 상황, 믿을 만한 인편을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특별했음을 짐작케 한다. 더워지는 계절...
65세 때인 경술년(1850) 3월, 이른바 강상 시절에 쓴 편지이다. 수신인의 친속으로 보이는 몽(夢, 미상)에 대해 거론하고 있는데, 전라도 해남의 김찬성(金贊聲)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서도 같은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보아 이 편지 역시 김찬성에게 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무렵 초의에게 쓴 편지...
예전에 추사의 ‘판전(板殿)’ 글씨 원본을 반으로 축소해서 걸어놓고 보니, 전혀 맛이 안 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추사가 어떤 글씨를 어떤 방법으로 쓸 때는 다 이유가 있고 그 목적에 맞게 쓰는 것입니다. 커다란 추상화를 실물로 보지 않고 작게 인쇄된 것을 보면 전혀 느낌이 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추사...
추사의 글씨는 너무나 유명하고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만큼 또 많은 사람들을 좌절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1978년, 우연히 추사 글씨 대련을 보게 됐습니다. 그 때 돈으로 2, 3백 만원 정도라 했으니 이삼 년 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꽤 가격이 있던 셈인데, 사도 괜찮은 것인지 어떤지 ...
경전을 연구하거나 문장을 지을 때 지켜야 할 기본 지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재능이나 기개를 앞세워 자신의 설을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걸 강조하며 이는 소동파나, 구양수도 모면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전 연구나 문장 작성에 대한 추사의 기본 입장이 무엇인 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서체의 흐...
추사가 자기보다 46세 어린 오경석(吳慶錫, 1831~1879)에게 보낸 편지이다. 『완당전집』 권 4 「여오생-경석(與吳生 慶錫)」에 실려있는데, 본 편지에 견주어 일부 글자에 출입이 있다.대대로 한역관을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난 오경석은 청나라를 오가며 많은 문물을 접하였고,우선 이상적의 제자로 시·서...
조선시대에 글씨 잘 쓴다 하는 사람에게는 비문 글씨를 부탁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당대에 어떤 글씨를 가장 높게 평가했는지는 비석의 글씨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요. 설정 조문수 또한 석봉체의 느낌이 강한 비석 글씨를 많이 남겼습니다. 조문수가 쓴 이기(李巙)의 묘비 글씨『근역서화징』 조문수 항목...
추사가 노년기에 척질(戚姪)*이자 제자인 이당 조면호에게 보낸 것으로, 『완당전집(阮堂全集)』 「답조이당(答趙怡堂)」의 첫 번째 편지로 실려 있다.조면호가 선친[조기항(趙基恒)]의 비문을 부탁한 것에 대한 답신으로 보이는데 실제 비문을 지어주었는지는 미상이다.그리고 편지 심부를 한 시초(詩樵)는 이수민...
『완당전집』 제4권 「여김군[與金君, 奭準]」 네 번째 편지의 일부이다. 글씨를 쓸 때 허화(虛和, 비움 속 조화)가 중요하며 악착(齷齪, 집착)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편지 오른쪽에 [怡堂所藏]이라는 소장인이 있는데, 김석준에게 보낸 편지를 이당 조면호가 소장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조선 말에 동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도 다녀온 조인승(曺寅承, 1842~1896)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사헌까지 올라간 사람으로 일본이 내정간섭을 하려고 하던 때, 일본측과 협상테이블에 앉기도 하고 조선의 독자개혁 대신으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의병이 봉기했을 때 의병부대에 의...
앞에 소개한 편지와 같이 수신은 해남에 있는 김찬성이다. 발신지는 노서(鷺西, 노량진 서쪽)이고 발신일은 1849년 11월 10일인데,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 용산 쪽 한강 주변에서 지낼 때 쓴 것으로 보인다.수신인의 아들 몽(夢)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보이고, 해남 지역에 집안 소유의 농장이 있었는지 관...
제주 유배시절에 쓴 편지로 수신인은 전라도 해남의 김찬성(金贊聲)이다.김찬성에 대한 내력은 미상인데 그의 아들로 보이는 몽(夢)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아보인다.겉봉에 찍힌 봉인은 추사 편지 겉봉에 곧잘 보이는 인장이다.[겉봉]海南金贊聲家回傳靜浦 椷寄頃付一書, 卽收...
옥수 조면호가 한대(漢代)의 인장 등 중국의 인장에 대한 여러 가지 물음에 답신 형식으로 쓴 편지이다.(『옥수선생집(玉垂先生集)』 권28 「상김추사, 정희(上金秋史, 正喜)」 계해 참조)* 『완당전집』에 실려 있지 않은 귀한 자료이다. 역대의 인장사를 개괄하며 구체적인 내용까지 상세하게 언급한 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