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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편지] 39 - 제 이름은 정희, 자는 추사, 호는 보담재입니다

과천시 소재 추사박물관이 소장한 『추담필담서첩(秋覃筆談書帖)』의 탈초 번역본이 최근 완간되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추사에 관한 내용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본 난에 이 서첩의 주요 내용들을 원문과 함께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그동안 ‘추사(秋史)’는 김정희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관례적으로 김정희의 호로 인식되어 왔으며 그 명칭에 담긴 의미를 두고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본 필담첩에서 김정희가 자신을 소개하는 문장을 보면 ‘추사’는 김정희 자(字)임이 확실히 밝혀졌다. 


“젊은이는 이름과 호와 관직이 어떻게 되십니까?”[중국측 인사] 
“제 이름은 정희, 자는 추사, 호는 보담재(寶覃齋)입니다. 지난해 10월 진사가 됐습니다.”[김정희] 
(“請問少君大名台號官職?”“賤名正喜, 字秋史, 號寶覃齋, 去年十月, 新中進士.”) 

 지금까지 알려진 김정희의 자는 백양(伯養), 원춘(元春) 정도인데, 이에 더하여 ‘추사(秋史)’라는 또 다른 자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원춘’이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春秋)』의 첫 문장 ‘춘왕정왈(春王正月)’의 내용과 연관돼 있듯, ‘추사’ 또한 ‘춘추’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유추된다. 김정희의 ‘정(正)’<=‘정월(正月)’, 원춘(元春)의 ‘춘(春)’<=‘춘왕(春王)’, 추사(秋史)의 ‘추(秋)’<=‘춘추(春秋)’ 형식인 것이다. 

 조선시대에 ‘호’는 관례상 인물에 대한 범칭으로 쓰였는데 김정희의 경우 어떻게 해서 ‘추사’라는 자가 범칭으로 쓰이게 되었는지 궁금한 일이다. 여기서, 중국에서는 자가 범칭으로 쓰인 경우가 종종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젊은 시절의 김정희, 즉 자신의 호가 아직 일반화되기 전의 김정희가 중국 인사들과 교류할 때 불리던 ‘추사’라는 자가 그대로 일반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측 인사들이 김정희에게 편지를 보낼 때 김정희를 ‘추사’로 명명한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請問少君大名台號官職?” 
“賤名正喜, 字秋史, 號寶覃 
齋, 去年十 
月, 新中進士.” 
“先生認翁覃溪否?” “此老在乎?” 
“僕今行, 得拜覃溪, 上蘓齋, 謁坡像而來. 
僕於此老, 大有好緣. 自十年前夢見此老, 
今行見之, 果是夢中人. 再多蓄此老 
書法, 故扁陋室曰寶覃齋, 如此老之寶 
蘓齋, 大是異事.”

“젊은이는 이름과 호와 관직이 어떻게 되십니까?” 
“제 이름은 정희, 자는 추사, 호는 보담재(寶覃齋)입니다. 지난해 10월 진사가 됐습니다.”[김정희] 
“선생께선 옹담계(翁覃溪, 옹방강)를 아십니까?”[김정희] 
“이 어르신이 계시던가요?” 
“제가 이번 길에 담계를 찾아뵙고 소재(蘇齋, 옹방강 서재)로 가서 동파 상(東坡像)을 알현하고 왔습니다. 저는 이 어르신과 큰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10년 전 이 어르신을 꿈에서 뵌 적이 있는데, 이번에 뵈니 정말 꿈속에서 뵈었던 그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어르신의 글씨를 많이 소장해서 제 서재 이름을 보담재(寶覃齋)라 했는데, 이것은 이 어르신이 보소재(寶蘇齋)라 한 것과 같은 것으로,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김정희] 
업데이트 2023.03.0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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