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나 기개를 앞세워 자신의 설을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걸 강조하며 이는 소동파나, 구양수도 모면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전 연구나 문장 작성에 대한 추사의 기본 입장이 무엇인 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서체의 흐름으로 볼 때 대략 30~40대 무렵이 아닐까 싶다.
大槩說經之道, 不可自立己說, 不可使才, 不可聘氣. 人不可以無才而才爲大患, 人不可以無氣而氣爲大病. 不使才騁氣, 則己說亦不敢自立也. 不徒說經而已, 爲文章亦然. 使才聘氣之作, 雖千言萬語, 不足稱也. 如蘇之論策, 有新奇可喜處, 便無一語可稱, 適足以嚇得婦人小兒者, 所以大不及於曾·王耳. 雖以歐陽公之典雅, 說經處, 便不足稱. 宋之說經, 皆不免於自立己說之一大病耳.
무릇 경전(經傳) 해설의 원칙은 자신의 설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주를 함부로 부려서도 안 되고, 기운을 멋대로 펼쳐서도 안 된다. 사람이 재주가 없을 수 없지만 재주는 큰 우환거리이고, 사람이 기운이 없을 수 없지만 기운은 큰 문제거리이다. 재주를 함부로 부리거나 기운을 멋대로 펼치지 않는다면 자신의 설을 감히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
경전 해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문장 짓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재주와 기운을 함부로 부려 지은 작품은 수천, 수만 자의 내용이라 해도 거론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예컨대 소동파의 ‘논(論)’과 ‘책(策)’이 새롭고 기특하여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다 해도 한마디도 거론할 만한 것이 없다. 그저 아녀자들이나 어린아이들만 놀라게 하는 데에 그치니, 이것이 증공(曾鞏, 송나라 문학가)과 왕안석(王安石, 송나라 문학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이유이다. 구양공(歐陽公, 구양수, 송나라 문학가)처럼 전아(典雅)하게 경전을 설명한 경우도 특별히 거론할 만한 것이 없다. 송나라 학자들의 경전 해설은 모두 자신의 설을 내세우는 큰 병폐를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