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규선
추사 나이 69세 때인 1854년에 쓴 편지이다. 발신지는 과천이고, 수신인은 군영이 있는 진(鎭)의 책임자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인명은 미상이다.
자신의 조카(둘째 아우 김명희의 아들)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매우 슬프게 거론하고 있다.
한여름 더위에 글씨를 쓰자니 땀이 먹물을 적신다는 말이 당시의 현장감을 전해준다.
甘注普潤, 雖非民社之責者, 亦當得雨而喜. 夏秋之交, 老熱轉甚, 遠想殊深, 卽承惠椷, 怳若把臂入林. 仍審令鎭起居晏勝, 慰欣無已.
第鎭弊之惱障, 尙得如左右之留心者方便, 何憂於解黏脫膠? 人特心不在耳.
賤狀, 老頑不死, 月前又見永柔家病侄之慘境, 情理絶酷, 與他殊異. 天耶? 人耶? 筆棘棘不下, 無染毫擧似也, 奈何, 奈何!
惠饋諸品, 皆邨家未易有者, 荷此情存, 翹謝如注. 餘汗漬于墨, 艱草不宣.
甲寅七月牽牛之夕, 果老泐具.
단비가 두루 적셔주니, 백성을 돌보는 책임자가 아니라도 의당 그 비에 기뻐할 것입니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즈음에 늦더위가 갈수록 심해 멀리서 매우 궁금했는데, 지금 보내주신 편지를 받으니, 마치 소매 붙잡고 숲속을 들어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진(鎭, 군영)에서의 삶이 편안하시다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그곳 진의 폐해와 장애들은, 귀하처럼 마음을 쓰는 이의 방책을 얻는다면 어찌 그 강고한 고질에서 벗어나는 걸 걱정하겠습니까? 단지 사람들이 마음을 두지 않을 뿐입니다.
저는 늙고 완고한 채 죽지도 않고 있는데, 달포 전에 또다시 영유(永柔, 아우 김명희) 집안 앓던 조카가 참혹한 지경(죽음)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 정황이 너무 가혹하여 여느 상황과 아주 다릅니다. 이것이 하늘이 한 것입니까, 사람이 한 것입니까? 붓끝이 가시처럼 껄끄러워, 차마 그 정경을 거론할 수가 없으니, 어찌해야겠습니까!
보내주신 여러 물품은 모두 시골집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인 바, 그 정성에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럼 땀이 먹물을 적셔, 어렵게 쓰며 이만 줄입니다.
갑인년(1854) 7월 7일 칠석 밤에, 과노(果老) 삼가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