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인 미상의 편지인데, 자신을 제(弟)라 표현한 것으로 보아 동료이거나 비슷한 나이의 사람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청나라 학자 9인의 문집 정황에 대해 질문한 것에 대해 답신 형식으로 보낸 것인데, 추사의 청나라 학계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고 넓었음을 보여준다.
필체로 보아 제주 유배 이전에 쓴 것으로 보인다.
班聯暫展, 經時耿懸. 卽伏承審至暖, 續候晏重, 仰慰. 第癤苦, 貢慮不淺.
弟嗽一味無減, 自憐.
示詢九人文字, 似當具有全集. 程徵君『通藝錄』, 曾見於故斗閣藏中. 江歲貢書無另集, 盡入於『經解』中. 王·錢著述等身, 『經解』所收, 撮其槩而已. 惠·沈·焦·臧亦於『經解』盡其長. 王尙書引之書, 『經義述聞』·『釋詞』之外, 他作未見刻成矣. 臧明經之祖玉林之書, 亦在『經解』中. 此是明末人, 而近代說經之家, 皆以此人爲開山耳.
餘姑不備.
卽, 弟拜.
모임 자리에서 잠시 뵌 뒤 시간이 지나서도 몹시 그리웠는데, 지금 보내신 편지를 받고 따스한 동지에 잘 지내신다 하니 위안이 됩니다. 다만 부스럼의 고통에 대해서는 염려가 얕지 않습니다.
저는 기침이 줄곧 사그라지지 않아 걱정입니다.
말씀하신 아홉 사람의 글은 의당 전집(全集)이 있을 듯합니다. 정징군(程徵君, 정요전程瑤田1725~1814)의 『통예록(通藝錄)』은 고(故) 두실(斗室, 심상규沈象奎) 대감의 장서에서 본 적이 있고, 강세공(江歲貢, 강영江永1681~1762)의 책은 별도의 문집 없이 『황청경해(皇淸經解)』에 모두 들어 있으며, 왕명성(王鳴盛1722~1797)·전대흔(錢大昕1728~1804)의 저술은 사람 키만큼 많지만 『황청경해』의 수록은 그 대략을 추렸을 뿐이고, 혜사기(惠士奇1671~1741)·심동(沈彤1688~1752)·초순(焦循1763~1820)·장용(臧庸1767~1811)도 『황청경해』에서 그 장점을 모두 수록하였습니다. 상서(尙書) 왕인지(王引之1766~1834)의 글은 『경의술문(經義述聞)』과 『경전석사(經傳釋詞)』에 수록된 것 외에 다른 출간본을 보지 못했습니다. 장명경(臧明經, 장용臧庸)의 선조 장옥림(臧玉林, 장림臧琳1650~1713)의 글도 『황청경해』에 있는데, 이 사람은 명나라 말기 사람으로, 근대에 경학(經學)을 논하는 이들이 모두 개산조(開山祖)로 간주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편지 받은 날 아우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