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무렵, 조선에는 일본인 사진관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1904년 일본인 중심으로 사진동호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사진이라는 매체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1910년쯤이 되면 신문에서 인물이나 거리 풍경 같은 모습을 사진으로 등장시키는 것도 일반적인 일이 됐다. 조선인 중에서는 서화가 김규진(1868-1933)이 상업적으로 사진을 찍고 영업을 했는데, 그는 천연당사진관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진가로 나섰다.
사진이 보급되면서 초상화의 제작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초상화 제작에 사진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은 고종 황제의 어진을 그리는 등 초상화가로 명성을 떨쳤던 석지 채용신(1850-1941)이었다.
채용신 <황현 초상> 1911, 비단에 색, 95.0x66.0cm, 보물 1494호, 개인.
채용신의 매천 황현(1855-1910) 초상은 전통적인 초상화에 비해 선묘보다 명암을 사용해 입체감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는데, 족자 표구에 사진을 임모했다는 기록이 있다. 김규진이 천연당사진관에서 1909년에 찍은 황현의 사진과 비교했을 때 갓이나 책 등의 차이는 있으나 얼굴과 자세가 유사해 이 사진이 임모의 대상이 된 사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채용신은 사진보다 더 질감이 잘 느껴지도록 섬세하게 얼굴을 표현해 생동감있는 초상화를 완성했다.
김규진 <황현> 1909년, 사진 인화, 15.0x10.0cm.
우측 상단에 ‘매천 55세 소영(小影)’이라 적혀 있다. 초상과 사진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고, 매천 선생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90년대 수묵화운동에 참여했던 김호석(b.1957)의 작품 중에도 매천 황현의 초상이 있다.
김호석 <매천 황현> 1986, 종이에 먹, 109x90cm, 횃불선교회
1996년 개인전에서 최익현, 김옥균, 전봉준, 신채호, 홍범도, 안창호, 한용운, 김구, 여운형 등구한말 일제강점기와 유신독재시대를 걸어온 인물 20인의 초상화를 전시했는데 그중 매천 황현의 초상이 포함됐다. 망국에 자결한 매천 황현의 정신을 수묵으로 표현하고자 했을까, 정신성을 드러내고자 노력했던 초상화가들의 고민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