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채 <폐림지 근방> 1949, 캔버스에 유채. 93.7x123.8㎝.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계의 대표 행사였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은 전쟁 직전인 1949년에 시작됐다. 문교부가 주관해서 산하에 예술위원회를 두고 고희동, 이종우, 손재형, 노수현, 장발, 이병규, 박영선 등이 위원이 되어 운영을 맡았다. 초기에는 일제강점기의 미술대회인 조선미술전람회 체제를 따라서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부를 두었다가 서예부를 추가했고, 이후 1955년 건축, 1964년 사진부가 추가되었고, 1970년에는 다시 건축과 사진이 제외되고 순수공예 부문이 추가되는 등 변화를 겪었다.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문교부장관상 등의 수상제도가 있었는데, 1949년 제1회 국전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840점, 그중 서양화가 543점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첫 번째 대통령상의 주인공은 류경채(1920-1995)였다.(당시 서울미대 재학생이던 서세옥은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그는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경력이 있었고, 1941년 도쿄의 로쿠인샤화학교(綠陰社畵學校)를 졸업하고 돌아와 26세인 1946년부터 서울교대 전신 경기공립사범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던 중이었다.
수상작인 <폐림지 근방>은 한양대학교 근처에 있었던 폐림지의 모습을 그린 풍경화로 단순화된 형태를 다양한 색조와 리드미컬한 터치와 마티에르로 표현한 현대적 감각의 유화였다. 20대의 류경채는 황량한 대지와 나무들을 비구상화하면서 쓸쓸한 정서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던 국전에서 과감하게 추상에 가까운 작품이 대통령상을 받았다는 것이 변화를 추구하는 당시 미술계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수상에 대해 남관과 강창원은 ‘국전’이 아카데미인데 이 그림의 수상이 적절치 않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그림에 대해 부인인 강성희 씨는 남편의 결혼선물이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1949년에 결혼해 신부에게 뭔가 보여주겠다며 몰두해 완성한 작품인데, 바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그들이 일하고 있던 사범학교 둘레의 삭막한 왕십리 들판에서 봄기운이 감돌아 계절의 훈기를 캔버스에 담은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구상과 추상을 막론하고 감각적이고 서정적이며 자연의 숭고함을 다루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후 화가는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운영위원장 등을 두루 거친 국전의 산 역사가 됐고, 이화여대, 서울대 등에서 교편을 잡으며 서양화 교육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1979년 예술원 회원으로 임명되었고, 1986년 서울대학교 퇴임 후에도 전시를 계속하는 등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벌였다. 한국적 현대미술을 지향하면서 창작미술협회 등의 활동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