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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기억하다] 장발의 <작품(作品) 21>

글/ 고금관

작가 : 장발 (1901~2001)
서울 출생.

장발은 190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친이 인천세관 관리직이었기 때문에 인천과 서울 등지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가 화가로서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19년 춘곡 고희동의 고려화회양화연구소에서 서양화 교육을 받은 것이었다. 1920년 일본 도쿄미술학교로 유학을 갔다가 이후 1922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수학하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사실적 풍경과 인물을 다루었는데, 초기의 대표작으로는 1930년 천주교회 부탁으로 제작한 김대건 신부 및 순교자들의 초상화가 있다. 


(참고도판) 장발 <성 김대건안드레아 초상> 1920, 유채, 가톨릭대 전례박물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창립 멤버이며 초대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장발은 서울대에서 1959년까지 재직하면서 후학을 지도했고, 대한민국 미술교육계와 국내 미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제2공화국 총리를 지낸 형 장면(1899-1966)이 5.16 군사 쿠데타로 실각한 뒤에 장발은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머무르며 본인의 새로운 추상미술을 전개하게 된다. 이후 장발은 미국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리하여 화가로서 장발의 작품 세계는 한국에서의 실물 위주 구상 시기와 1960년 이후 미국에서의 추상 시기로 나눠진다. 

1976년에 신세계미술관에서 서울대학교 주최의 장발 전시가 열렸었는데,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성황리에 마무리된 바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할 <작품作品 21>은 당시의 전시작 40 점 중에 포함됐던 그림이다. 1974년작으로 수채화 전용 아트만지 위에 과슈 물감으로 제작되었다. 


장발 <작품(作品) 21> 1974년, 아트만지에 과슈, 88.3 x 56.5 cm


이 시기 장발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된 성향은, 크고 퉁퉁한 붓을 사용해 화면 위에 검은색의 굵은 선으로 획을 긋고 평행 또는 교차하도록 하는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바탕은 우주 배경을 연상케 하는 채색을 화면 가득 채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으로 작가 본인의 심상, 즉 압박감에서 벗어나고픈 몸부림 같은 감정을 일관되게 표현한다.


(참고도판) 장발 <작품> 1975년, 종이에 수채물감, 100x132cm, 국립현대미술관


<作品 21>에서 작가는 종횡으로 그은, 직선이 아닌 유선형의 자유로운 필선을 하나의 조형적 구성물로 중심에 포치하여, 마치 어떤 검고 무거운 금속성 물체가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함으로써 감상자가 그 안에서 격동적인 힘을 느끼게 한다. 밝은 갈색과 연녹색조의 자연스러운 바림 기법 배경 화면은 변화하는 우주적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힘을 조절한 강약의 테크닉으로 전체적으로 생동감을 살아나게 만들어 음과 양의 조합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5.16 군사쿠데타 정국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가족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아픔을 뒤로 한 화가 장발의 미국에서의 생활, 그 여정, 사무치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 뇌리에 담긴 고독한 향수를 작가는 그림으로 달랬고, 화폭에 그려냄으로서 정신적 내면을 표출하였음을 이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업데이트 2024.07.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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