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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기억하다] 김세용의 <念> (1970년대)

글/ 고금관

김세용(1922~1992)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

화가 동암(東岩) 김세용(金世湧, 1922-1992)은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으로, 중학교 재학시절 일본 현대미술 전에 출품했던 <대지의 거리> 가 입선을 하게 되면서 일찍이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졸업 후 동경제국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던 1943년에는 현지 일본인들과 불화를 겪기도 했고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반감과 투쟁심, 여러 가지 불합리한 여건 등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면서 이후 중국에서 방랑 생활을 하게 되었다.

8.15 해방을 맞아 남한으로 들어와 1947년 동화백화점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해마다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며 기반을 다져갔다. 당시 김세용의 화면은 정열적인 손끝에서 시작된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붓놀림으로 영감 가득한 캔버스를 펼쳐 관객들을 압도했다. 마치 원로 서예가의 초서에서 느낄 수 있는 일필휘지(一筆揮之)와 대응되는 천부적인 필력을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김세용은 인물이나 정물, 풍경 등 모든 사물의 형태를 기교 넘치는 테크닉과 에너지로 화면 안에 펼치는데, 작품 안에서 발현된 활력 가득한 표현 능력은 그의 그림을 격조 높게 완성되도록 만든다. 그의 독창적인 예술혼은 "한국의 피카소"라는 별명이 합당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김세용은 왕성한 활동을 펼쳐, 1967년에는 해마다 가졌던 22회 동안의 개인전 자료를 기반으로 작품 중 85점을 선별하여 <김세용 화집>을 발간했다. 그 도록에 실린 작품 한 점 한 점은 모두 그를 거장이라고 여기도록 할 만한 매력으로 가득했다. 


김세용 <념念> 캔버스에 유채, 72.7x50 cm


해당 작품 <念>의 경우 1967년의 화집에 실린 작품들과의 기법 비교, 그리고 캔버스의 제작 연대로 비추어 1970년대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인 화면 바탕은 노랑 색조로 간결하게 채색하여 고요함과 포근한 안정감을 주었고, 태아를 품은 여인의 형태를 암시하는 검정색 윤곽 안에는 짙은 농도의 다채로운 색깔들을 중붓으로 내려 칠함으로써 단조로운 화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김세용의 다양하고 폭넓은 작품 세계를 온전히 감상하고 느끼려면 실물을 마주 보는 기회 안에서 가능한 것이나, 사실 화랑가와 시중에서는 김세용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작품이 거래된 예도 거의 없다. 사망하자 연고자가 아무도 없어 650점의 유품은 정부에 귀속되어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작가 사후 국립현대미술관에 간 작품들은 아직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이 일반인들에 선보일 날을 기대해 본다.

업데이트 2024.08.1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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