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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여성 최초 선전 동양화부 특선 작가의 그림은?

이 화가는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 동양화부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특선을 받았다. 


제10회 선전 특선작 <여광>의 초본, 1931. 종이에 먹, 207.5x90.5cm. 국립현대미술관.


몇 년 후 1935년 제14회의 선전은 규정을 새롭게 바꾼다. 추천제를 실시, 분야별로 작가를 미리 추천해 출품하도록 했고, 또 1~4부에서 특선을 받게 되는 16명 중 창덕궁상과 총독상을 3인씩 수여하도록 했다. 이때 그 여성화가는 특선과 함께 14회 선전의 최고 상이라고 할 수 있는 창덕궁상마저 받게 된다. 

다음 다섯 점의 그림은 모두 1935년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 출품되어 입선 이상의 성과를 얻은 작품들이다.
다섯 그림 중에서 이 여성 작가가 그린, 특선 창덕궁상을 수상한 작품은 몇 번일까? 
또 그 여성 화가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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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여성 최초로 선전 동양화부에서 특선을 받은 작가는 화가 정찬영(1906-1988). 그녀는 이영일에게서 그림을 배우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만인 1929년 만 23세 때 제 8회 선전에 입선해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여광>이라는 작품으로 특선을 차지해 한국미술사에 “여성 최초의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 특선 작가”라는 발자국을 남겼다(1931년에는 서양화부의 나혜석도 특선을 받았다). 그러다 1935년 14회 선전에서는 기라성 같은 남성 화가들을 제치고 창덕궁상까지 수상한 것이다.

위의 보기 (1)~(5)에 있는 그림들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1) 운보 김기창 <엽귀饁歸> 1935, 비단에 채색, 170.5x109cm


1931년 이후 계속 선전에 등장하며 주목받고 있었던 김기창은, 1935년 14회 선전에 <금운> <엽귀> 두 작품을 출품했는데, <금운>은 특선을 받았으나 <엽귀>는 입선에 머물렀다.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그러했지만 한국인들은 <엽귀>를 더 높게 평가했다. 같은 해 같은 동양화부에 출품한 가타야마 탄(堅山坦)의 <구(丘)>와 유사한 제재와 구도이다. ※가타야마 탄 또한 <구>가 아니라 <풍경>이라는 또다른 작품으로 1935년 14회 특선을 받았다. 


14회 선전 도록 중 김기창의 <엽귀>



14회 선전 도록 중 가타야마 탄의 <丘>


(2) 향당 백윤문(1906-1979) <분노> 1935,  비단에 채색, 191x151cm, 국립현대미술관


조선인과 일본인이 장기를 두다 다투는 장면을 그린 <분노>는 1935년 제14회 선전 특선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반일 감정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입선으로 강등.


14회 선전 도록 중 <분노>


(3) 월전 장우성(1912-2005) <귀목歸牧> 1935, 비단에 수묵채색, 120×240cm, 국립현대미술관


긴 작품 활동 기간 동안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보여 주었던 장우성은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 스승의 채색 인물화법을 가장 잘 계승했던 대표적 화가였고 특히 인물화가 유명했다. 1935년 제14회 선전 입선작 <귀목>에서 스승의 기법을 충실히 따랐던 장우성의 초기 화풍을 볼 수 있다. 


14회 선전 도록 중 <귀목>


(4) 정찬영 <소녀> 1935. 제14회 선전 특선 창덕궁상 수상. (원본은 남아 있지 않음)



잔머리가 많이 삐져나왔으나 단정히 땋음머리를 한 한복 입은 어린 소녀. 들꽃, 대바구니 등을 보면 봄나물을 캐러 나온 듯한데 머리 옆을 날아가는 나비도 알아채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인지 어느 곳을 보는지, 슬픔이나 즐거움 같은 감정이 지워진 것 같은, 향토색조차도 분명하지 않은 오묘한 그림이다. 


14회 선전 도록 중 <소녀>


1935년 5월 21일 조선일보에는 김복진의 선전 관람 리뷰가 실려 있는데, 그중 정찬영의 작품에 대한 평이 짤막하게 포함되었다.
 
"제1부(동양화) 74점 중 조선사람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선명히 남은 것은 정찬영 씨의 '소녀'이나 만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심사 추천하는 자격을 허여한다면 '야시(夜市)'를 장중 가작으로 나는 채점하고 싶었다. 정찬영씨의 작품은 근대적인 동양화의 약속을 지키고 동심을 붙잡아 무괴히 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야시>는 경성여사범학교의 미술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던 일본인 에구치 게이시로(江口敬四郞)의 작품이다. 박래현이 그때 그에게서 수채화와 동양화를 배웠다.)







(5) 난사(蘭史) 이옥순(李玉順) <석화채녀> 1935, 147×160㎝ 


이옥순은 현재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젊은 여성으로 1933년 12회 선전에서 특선을 받으면서 당시 주목 받았던 화가이다. 이옥순은 건강 문제로 학교를 중퇴하고 쉬다가 미술 공부를 하면서 조선에서 활동한 일본인 화가 가토 쇼린(1898-1983)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미술을 배운지 1년 만인 1931년에 선전에 출품해 입선을 하고, 1933년에는 특선의 영광을 안았다. 이 작품은 2년 후인 1935년 14회 선전의 입선작으로 굴 캐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얼마 전(2012년) 대구에서 열린 옥션에 추정가 1500만~3000만원으로 등장한 바 있다. 


14회 선전 도록 중 <석화채녀>


12회 선전 도록 중 이옥순의 <외출제>. 1933. 147×160㎝. 12회 특선작.



1935년의 선전 동양화부 그림은 이렇듯 다채로운 결과물이 있었는데 그 중 정찬영의 <소녀>가 최고의 상을 받았던 만큼 대중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정찬영은 1939년 둘째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전람회 출품이나 인터뷰 등의 공개적인 활동을 중단했다. 다만 식물학자인 남편을 돕기 위한 식물 세밀화를 그려 지금도 전시에 그 때의 세밀화 작품들이 출품되곤 한다. 
한국전쟁 때 남편이 납북된 이후 절필하고 이후 고등학교 등지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조용히 살다 82세인 1988년 생을 마감했다. 

정답은 4번. 정찬영. 


정찬영 <공작도 4폭 병풍> 1937, 비단에 채색, 154x232.4cm, 국립현대미술관

업데이트 2024.11.1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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