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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기억하다] 구로 김영환의 초현실적 꿈의 세계

글/ 고금관

구로 김영환(久路 金永煥, 1928-2011)
함경남도 안변군 출생

1956년 5월 16일, 서울 명동의 동방문화회관 3층 화랑에서는 홍익대 출신의 네 화가, 즉 김영환, 김충선, 문우식, 박서보 4명이 《사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가 주목됐던 것은 이들이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반대하는 청년 작가들로 전시장 입구에 ‘반국전 선언’을 붙이는 등 적극적인 반대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1949년 시작된 국전은 한국 미술 문화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심사위원 선정, 그 심사위원들의 편파적 심사 등 제도의 남용 때문에 부작용이 많았다. (이들의 저항 이후에도 국전은 1981년까지 살아남는다.) 


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김영환은 당시 막 대학을 졸업한 신인 작가였다. 박서보(1931-2023)보다 나이는 많지만 1950년 월남한 이후 늦은 나이에 대학을 가 박서보의 2년 후배가 되었다. 그러나 김영환의 그림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그 독창성이 눈길을 끌었던 듯하다. 이경성은 당시 신문에 쓴 전시 평에서 김영환에 대해 현대의 불안의식을 표현했다는 등 꽤 좋은 평가를 내렸다. 각 작품에 대한 평가와 함께 젊은이들의 발언이 의미 있었으나 《사인전》 자체는  아쉬움이 많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신인이란 적어도 기존의 상식이나 권위를 일단 부정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시대의식이나 감각으로 모든 것을 느끼고 보고 그리고 말하는 것이라 보고 싶다.... 
영환의 경우에 있어서는 더한 층강한 생활의욕으로 덤벼들어 조형효과를 도외시하는 선까지 그 감정을 끌고가고 있으나 “촌길” 같은 데서는 어느 심리적 조건반사에까지 표현을 녹화시킨 점 매우 호감이 간다. 특히 그의 ‘렛상’은 현대의 불안을 그것도 현대문명이 조성한 “메카닉”한 불안의식을 방불케 한 점, 그의 힘찬 렛상력과 아울러 상당히 평가하여도 좋지 않을까....
충선, 영환, 서보, 우식 그들은 확실히 젊다. 그리고 그들은 발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은 너무나 소극적이었으며 불행히도 시야가 좁았다. 그들의 “젊음”으로 마땅히 좀더 강한 것을 큰 것을 말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경성 「신인의 발언 : 홍대 출신 4인전 評」 『동아일보』 1956년 5월 26일자

이후 김영환은 50년대 후반 신조형파, 70년대 한국미술가협회, 80년대 시현전 그리고 상형전에 참여하였고, 국전에 참여하지 않은 비국전파로서 여타 단체 그룹전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김영환의 작품 세계는 초현실주의를 떠올리게 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꾸준히 탐구했다. 작품에서의 구조 양식은 실존적이거나 사실적이지 않고,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오브제화한 가상세계를 다룬 구상으로 구상회화 영역을 확대해 현존하는 실재인 듯한 구체성을 정립시키는 표현 방식을 추구해 나갔다. 

김영환의 작품은 흑채를 많이 사용해 어두운 화면이 주가 되는 초기와 달리, 80년대를 전후로 밝고 몽환적인 채색으로 변모함을 알 수 있는데, 이때 환상적인 꿈의 세계가 담긴 그의 온화한 색조는 작품 전체를 포근한 감성으로 채운다. 


구로 김영환, 무제, 1980년대, 캔버스에 유채, 145.5×112.2 cm


제작년도와 작품의 명제가 전해지지 않는 이 작품은 80호 크기로 선생의 보기 드문 대작에 속한다. 캔버스와 액자의 프레임과 작품 경향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작가의 1990년대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화가로서 전성기를 가늠하는 초현실주의 주제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배경이 되는 무대는 마치 유토피아를 연상시키며 푸른 하늘 아래 바위산, 청색조의 잔잔한 바다, 그리고 고운 모래사장은 부드러운 곡선미로 온화함을 더하였다. 붉은 융단 같은 바닥에 앉아 물고기를 품고 있는 나체의 여인을 중심으로 기쁜 소식과 평화를 상징하는 흰 비둘기 등을 안정감 있게 배치했다. 전체화면을 구성하는 요소 각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수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참고도판 <폐허의 오후> 1973, 캔버스에 유채, 97×130cm, 국립현대미술관



참고도판 <생각하는 소년> 1977, 캔버스에 유채, 42.8×54.9cm, 개인



참고도판 <지구놀이> 1989, 캔버스에 유채, 72×60cm, 개인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초현실적 세계가 작가 자신을 대변하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상 속의 신세계, 그가 생각한 유토피아는 이러한 몽환적인 분위기였을 것이다. 한국 화단의 주된 흐름과 관계 없이 뚝심있게 추구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필자의 최애작 100선 중 하나이다. 



업데이트 2024.12.2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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