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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성재휴의 1950년대 산수

1950년대, 전쟁이 끝나고, 한국화 화가들은 전통 회화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할지의 과제 앞에 서 있었다. 방향 모색의 여러 가지 노력을 한 화가들 중에서 김기창, 박래현, 이유태, 천경자 등 새로운 동양화 양식이나 주제를 추구하며 자신의 길을 찾은 화가들도 있고, 자신이 어린 시절 갈고 닭은 수묵담채의 산수화를 좀더 깊게, 현대적으로 다루고자 한 화가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변관식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대가들보다 약간 후배 화가로서 전통적 동양의 산수화를 현대화하려 했던 또 하나의 중요 화가가 풍곡(豊谷) 성재휴(成在烋, 1915-1996)이다. 경남 창녕 출생으로, 구한말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유명한 서예가였던 서병오에게 서예와 사군자를 배우고 열아홉에 광주로 가서 허백련에게 3년 정도 정통 산수를 배웠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른 학습의 결과물은? 그의 작품과 작업 스타일은 장승업의 계보를 잇는 것처럼 보인다. 


성재휴 <강변산수> 1950년 66.5x126.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기증품


강하고, 자유롭고, 대담한 구성과 필묵은 일찌감치 작품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자연 현상을 왜곡하거나 간략화한 산수화/풍경화가 1950년대부터 등장하고, 이응노를 떠올리게 하는 반추상적인 경향도 보였다. 진한 묵선과 운필의 속도감은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그의 프로필에서 눈에 띄는, 뉴욕빌리지미술관 국제공모전 수석 상을 받게끔 하기도 했다. 

1949년(34세)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동양화부 수묵 풍경화 <신청(新晴)> 입선
1957~1962년 조선일보사 주최 『현대작가초대전』 초대
1957년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 『한국현대작가전』 초대 
1958년 샌프란시스코미술관 기획 『아시아미술전』 초대
1958~1978년 백양회(白陽會) 활동. 김기창, 이유태 등과 함께 중심 회원.

위의 1950년작 <강변산수>는 화면 중앙을 바위산이 차지하는 과감한 구성으로, 양쪽에 강과 그 너머의 강변이 보인다. 원산, 강물, 가옥, 나룻배 같은 전통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구성뿐 아니라 거친 필치 또한 전통과는 차이가 있고 그의 개성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원근법이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 이후 진행되는 그의 그림의 평면성 같은 현대적 요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1960년대가 되면서 그의 그림 속에는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추상미술적 요소가 결합되며 현대성을 모색하게 된다. 최소한의 붓질로 감필, 속필을 쓰고, 담채를 활용했다. 1970년대에는 윤곽은 두터워지고 짙은 채색에 경물이 가득 차 여백이 적어진다. 


성재휴 <해안> 1960년, 종이에 먹과 채색, 27x24cm, 국립현대미술관



<귀범(歸帆)> 1982년, 종이에 먹과 채색, 68x69.5cm, 국립현대미술관(이건희 기증)


1960년작 <해안>과 1982년작 <귀범(歸帆)>을 보면 풍곡의 화풍이 완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해안>에서 나타나는 평면적인 구도에 특이한 준법, 다양한 묵법, 필법으로 개성적인 산수를 선보였다. <귀범>에서는 더욱 강렬하고 두터운 흑선, 과감한 채색, 구성적인 화면으로 성재휴의 작품세계를 대표하게 된다. 자연은 소재로만 이용될 뿐, 수묵과 채색이 가지는 회화성을 바닥부터 긁어 보여주려 했다. 
업데이트 2025.04.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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